문재인 대통령이 2주간 숨가쁜 해외 순방 일정을 마치고 10일 귀국하면서 '대통령의 첫 여름휴가'에 대한 관가(官街)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대통령의 여름휴가가 향후 공직사회의 휴가 풍속도를 바꿀 바로미터가 될 수 있어서다. 관가에선 자유롭게 연차를 사용하며 재충전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길 바라는 모습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10일 "문 대통령이 7월 말, 8월 초에 여름휴가를 낼 예정"이라며 "휴가지는 양산 사저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휴가 중 경남 거제 저도를 갈 수도 있다"면서 "국민들께 저도 반환을 약속한 만큼 반환 전 대통령이 저도를 방문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청와대 측은 이번 문 대통령의 첫 여름휴가를 두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 중이다. 그동안 역대 대통령들은 여름 휴가로 연차 5일을 사용했지만 문 대통령의 경우 파격적으로 7~8일 정도 연차를 사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어서다.
또다른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대통령께서 연차를 모두 사용하겠다고 하신 만큼 여름휴가를 길게 다녀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면서 "여름휴가 때 몰아서 연차를 쓰지 않으면 이후 연차를 자주 사용해야 해 국민들 눈에 대통령이 너무 자주 쉬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고 말했다.
역대 대통령들은 통상 7월말, 8월초 즈음에 연차 5일을 사용해 4박5일간 여름휴가를 다녀오는 게 관례였다. 하지만 현재 청와대가 검토하는데로 여름휴가로 7~8일 연차를 사용할 경우 주말을 포함하면 열흘 이상 쉴 수 있게 된다. 청와대 측은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청와대 직원들도 이번 여름휴가로 최소 5일 휴가를 보장한다는 방침이다.
대통령이 장기 여름휴가를 떠나는 것은 해외에선 일반적이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통상 2주 이상 여름휴가를 쓰면서 고급휴양지에서 골프 라운딩을 즐기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8년 임기 동안 무려 436일간 휴가를 가기도 했다. 연평균 55일 연차를 쓴 셈이다.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도 2014년 2주간 여름휴가를 즐겼다.
문 대통령은 지난 대선 기간 중 노동자들의 휴식권을 보장하는 '휴가가 있는 삶' 공약을 내놓을 정도로 휴가에 관심을 가져왔다. 그는 당시 "우리 노동자들은 법정유급 휴가 15일 중 6일 정도만 쉬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연차유급휴가를 연속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 여름휴가를 2주일 이상 즐길 수 있게 하겠다"고 공약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자신의 휴가 공약을 몸소 실천해 공직사회에서부터 '휴가가 있는 삶'을 현실화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실제 그는 대통령 취임 후 2주가 채 안된 지난 5월 22일 하루 연차 휴가를 내고 경남 양산 사저에서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대통령의 연차는 모두 21일로 문 대통령은 20일 연차가 남아있다. 이 때문에 청와대 내부에선 문 대통령 임기가 5월 10일부터 시작한 만큼 1년치 연차의 절반 가량만 사용하는 게 합리적이지 않겠느냐는 얘기도 나온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의 이번 여름휴가로 그동안 휴가 눈치보기가 만연했던 공직사회에 변화를 주겠다는 방침이지만 정부 부처 일선 공무원들은 여전히 반신반의하는 모습이다. 그동안 정부 부처에선 연차 소진은 꿈도 꾸지 못하고, 여름휴가를 채 일주일도 다녀오지 못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올해 10년차인 한 사무관은 "그나마 여름휴가로 연차 5일을 쓴다는 금융위원회도 앞뒤 주말을 다 붙이진 못한다"며 "국방부의 경우 여름휴가 3일이 일반적이고, 외교부도 의외로 눈치보기가 심해 여름휴가로 연차 5일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정 2인자인 이낙연 국무총리가 올 여름휴가를 가지 않겠다는 취지로 얘기한 점도 문 대통령의 여름휴가 독려에 대한 공무원들의 회의적인 반응을 부추기고 있다. 이 총리는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올 여름휴가에 대해 "서울에서 일을 하면 세종에서는 쉬는 셈이고, 세종에서 집무를 보면 서울에서는 휴가 중인 것"이라며 여름휴가를 따로 가지 않겠다는 의중을 내비쳤다.
한 경제부처 소속 과장급 인사는 "결국 청와대에선 연차를 쓰라고 하고, 소속 부처에선 눈치를 주니 부처별 연차소진을 채우기 위해 연차는 사용하는 걸로 하고 출근하게 될 것 같다"며 "결국 연가 보상비만
이런 가운데 인사혁신처는 7~8월 공무원의 여름휴가를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나섰다. 인사처는 최장 10일까지 하계휴가도 보장할 방침이다. 지난해 국가공무원 1인당 평균 연가부여일수는 20.4일이고 사용일수는 10.3일(50.3%)로 집계됐다.
[오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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