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이(Shy) 보수 표가 10~15% 숨어 있다." "샤이 보수에 대한 기대는 희망 고문이 될 수 있다."
대통령 탄핵심판 국면에서 위기에 봉착한 보수 진영이 '숨은 표' 찾기에 나섰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등 보수진영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과가 나온 뒤에는 대선 구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고 있다. 박근혜정권에 대한 실망감으로 잠시 돌아섰던 보수 표와 여전히 보수정당을 지지하지만 속내를 드러내지 않던 보수 표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올 것이란 얘기다.
유력 대선주자가 없는 자유한국당은 물론 지지율 부진에 고전하는 바른정당 내에서도 탄핵 후 유권자의 기류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가 부쩍 늘어난 상태다.
자유한국당은 22일 '샤이 보수'를 주제로 토론회까지 열고 보수의 재응집 가능성을 타진했다.
토론회를 주최한 유기준 한국당 의원은 "(최순실 사태가 불거진)작년 10월 이전과 이후의 대선 여론조사 응답률에서 야권 응답자는 10%P 정도 오르고, 여권 응답자는 10%P 하락했다는 분석이 있다"며 "최근 여론조사는 응답자의 60%가 좌파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시행되고 있다고 한다"고 말했다.
대선이 펼쳐지는 운동장 자체가 야권으로 기운 것이 아니라 진보성향 유권자들이 주로 여론조사에 참여해 여론의 왜곡이 발생하고 있다는 주장인 셈이다.
이날 토론회에 나온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의 이택수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과 탄핵 반대여론의 차이를 고려할 때 10∼15%가량은 숨은 보수표심이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탄핵 직전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이 5% 수준이었던 것에 비해 탄핵 반대 여론이 20% 안팎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얘기다.
또 2012년 대선에서 박 대통령의 최종 득표율은 51.6%였으나 최근 여론조사에서 박 대통령에게 투표했다는 응답자가 37.3%에 불과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약 14%P에 달하는 응답자가 박근혜 지지 사실을 숨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이날 2012년 대선 득표율 가중치를 부여해 현재 대선후보들의 3자구도 지지율을 보정한 결과를 최초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문재인-황교안-안철수 3자 구도'에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지지율이 48.1%에서 42.3%로 낮아지는 반면 황교안 권한대행의 지지율은 25.6%에서 30%로 상승한다.
다만 샤이 보수가 존재하더라도 실제 파괴력은 크지 않고, 샤이 보수에 기댄 채 변화를 거부해선 '필패'라는 자성론도 나왔다.
이 대표는 "샤이 보수가 있다고 해도 (여야간)격차를 이겨낼 수 있을지 회의적"이라고 했다.
장욱 여의도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날 "샤이 보수는 패배의식에 사로잡혀선 안된다는 희망을 주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면서도 "샤이 보수층이 대거 존재한다는 분석이 보수정당에게 일종의 '희망 고문'이 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장 위원은 "자유한국당이 보수혁신을 끊임없이 이어가지 않는 한 샤이 보수는 고통을 외면하기 위한 모르핀이 될 수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황장수 미래경영연구소장도 "민주당 지지율이 40% 후반대에 접근하고 있는데 자유한국당, 바른정당 지지율 합계가 20%를 조금 넘는다"며 "보수 성향 유권자가 대답을 회피하고 있다"고 샤이 보수의 존재는 긍정했다. 그러나 황 소장은 "(한국당이)형식적 개혁, 퇴행적 선동으로 회귀하면 보수 궤멸과 평생 야당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경고한 뒤 "안보 불안세력 집권을 막기 위해 이제 기득권과 패배의식을 버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현재 한국당 정책위의장은 "초심으로 돌아가 보수 세력의 흐트러진 전열을 재정비한다면 숨죽이며 외면하고 있는 보수세력에게 새 희망을
■ <용어 설명>
▷ 샤이 보수 = 지난 해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후보를 지지율이 여론조사에서 덜 반영된 현상인 '샤이(shy) 트럼프'에서 유래. 보수성향의 유권자들이 조사에 응답하지 않거나 응답시에도 성향을 숨기는 현상을 가리킴.
[신헌철 기자 / 안병준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