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의 시신 인도를 두고 말레이시아와 북한 간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말레이시아 정부의 규정에 따르면 유가족이라고 주장하는 측의 입장이 엇갈리면 북한 대사관이 최종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 이에 따라 북한 측이 가공의 인물을 내세워 시신 확보에 나설 가능성이 제기된다.
매일경제는 21일 말레이시아 정부의 '외국인 시신 인도'에 관한 내부 규정을 단독 입수했다. 이에 따르면 외국인 시신의 유가족이 나타나지 않을 경우 친구, 상사, 동료, 시신 국적의 대사관 관계자를 통한 신원 확인을 허용하고 있다. 규정만으로 보면 김정남의 장남 김한솔이 말레이시아에 입국해 유족임을 확인받아도 시신 인수가 가능할지 미지수다. 북한이 김정남의 유가족이라며 제3의 인물을 내세우고 DNA를 제출해 유가족끼리 분쟁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중재를 북한 대사관이 하게 돼있다.
말레이시아 경찰과 병원의 부검 관계자는 매일경제와의 통화에서 "국내 시신을 둘러싼 유가족의 분쟁은 경찰이 결정하지만 외국인 시신은 시신이 속한 국적의 대사관이 결정한다"고 전했다. 이는 김정남 시신에 대한 북한 대사관이 상당한 재량권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규정에는 유가족이 반드시 직접 나타나야 한다는 내용은 없다. 시신의 신원 확인은 DNA 채취가 가능한 머리카락 등만 제공하면 된다. 북한 대사관이 김정남의 신원을 확인하면 시신은 북한 대사관으로 인도된다.
김정남의 유가족이 나타나지 않을 경우 그의 시신은 북한 대사관에 인도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북한 대사관이 김정남의 유가족이 북한에 있다며 그의 신원 확인에 필요한 DNA를 제출할 수 있다. 다만 관련 규정에서는 경찰이 수사 중인 사건의 경우 시신 인도는 경찰 당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나와 있다. 그러나 현지 소식통은 "시신을 내주지 않는 조건은 경찰 수사 증거 수집을 위해 시신이 필요할 때만이다"며 "경찰이 무작정 승인을 거부할 수는 없다"고 전했다. 지난 19일 누르 라시드 이브라힘 말레이 경찰 부청장이 기자회견에서 "유가족이 나타날 때까지 2주 정도를 기다리겠다"고 밝힌 배경으로 추정된다.
말레이시아 보건부 고위 당국자는 이날 매일경제와의 통화에서 "이번 사건은 명백한 살인사건"이라며 "직접 유가족이 시신을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라고 전했다. 다투크 세리 수브라마니암 보건 장관은 "김정남 시신 보관 기한은 경찰이 필요 여부에 따라 결정할 것"이라며 김정남 시신의 인도 기한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시신 인도를 둘러싸고 중국의 개입 여부도 관심이다. 사실 중국은 화교가 경제적인 주도권을 쥔 말레이시아에 큰 영향력을 갖고 있고, 국제사회의 제재로 고립무원인 북한에 유일한 생명줄이라는 점에서 이번 북한과 말레이시아 간 대치를 풀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우선 중국이 보호 중인 김한솔과 그 가족을 말레이시아로 데리고 가서 친자 확인을 하는 것인데 북한의 반발이 거셀 것으로 예상돼 중국으로선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서로 등을 돌린 말레이시아와 북한을 중재하는 역할을 중국이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김한솔 등 가족의 방문을 중국이 '지원'하더라도 비공개로 하면서 친자확인을 통해 진실 규명은 하되 말레이시아와 북한이 접점을 찾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한편 말레이시아 경찰은 김정남의 시신을 요구한 유가족이 아직 없다고 밝혔다. 싱가포
[쿠알라룸푸르 = 박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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