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김정남 독살 관련 억지 주장과 음모론을 들고 나온 것은 과거에 즐겨 쓰던 수법이었다. 테러를 저지른 뒤 책임을 남쪽에 뒤집어씌우는 것도 북한의 전형적인 대응 방식으로 파악된다.
강철 주말레이시아 북한 대사는 주재국 경찰의 공식발표 내용마저 부인하는 억지 주장을 펼쳤다. 그는 지난 20일 "말레이 측이 무언가 우리를 속이려는 것"이라며 "말레이 경찰의 수사 결과를 믿을 수 없다"고 기자들 앞에서 말했다. 심지어 사망자가 김정남이 아니라는 궤변까지 서슴지 않았다. 북한의 주장은 결국엔 한국 정부를 향한 비난으로 이어졌다. 강 대사는 "말레이 정부가 한국 정부와 결탁해 북한이 배후라고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시절 대표적인 북한 소행 테러 사건을 돌이켜보면 지금 북한 대사의 행태는 판박이처럼 유사하다.
북한은 공작원들의 소행이 명백한 경우에도 일단 침묵하고, 증거가 하나씩 드러나도 강력히 반발하는 식으로 책임을 회피해왔다. 오히려 한국 소행이라며 한국내 국론 분열까지 조장한 바 있다.
1983년 10월 9일 발생한 아웅산 폭발테러사고 때는 한국과 미얀마(당시 국가명 버마)의 외교관계 수립으로 북한의 외교적 고립이 가속화되던 시기였다.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이 양곤의 아웅산 국립묘소에 도착하기 직전 북한은 미리 설치해둔 폭발물을 폭파해 서석준 부총리 등 16명을 숨지게 했다. 북한은 사건발생 직후 여러차례 자신과는 무관하고 "독재자 전두환을 제거하려던 남조선 인민 스스로의 의거"라고 억지 주장을 폈다. 그러나 미얀마 정부수사를 통해 북한공작원 3명이 체포되면서 북한 소행임이 드러났다. 공작원 중 한명이었던 강민철은 미얀마의 교도수에 수감됐지만 북한은 끝까지 강씨를 자국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귀국시키지 않았다. 강씨는 결국 미얀마에서 옥사했다.
1987년 11월 KAL기 폭파로 인해 승객 115명이 사망한 사건 역시 김현희 등 북한 테러리스트들의 소행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북한 당국은 극구 부인하면서 '남조선과 일본이 내놓은 허위 날조'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사건 이후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했다.
김정남 살해 사건은 1997년 탈북자 이한영씨 총격피살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김정일의 처조카(김정일 전처인 성혜림의 언니 성혜랑의 아들)인 이한영씨는 1997년 2월 15일 경기도 성남의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서 괴한 두명의 총격을 받고 쓰러져 열흘 뒤 사망했다. 이씨는 책을 발간해서 북한의 실상을 외부에 공개적으로 알려왔는데, 피살현장에서는 북한제 권총에서 나오는 탄피가 발견됐다. 이에 따라 이한영 피살사건은 황장엽 당시 북한노동당 비서의 망명사태 직후 북한 보복테러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진범이 잡히지 않다. 이와 관련해 9개월이 지난 그 해 11월 국정원에 검거된 부부간첩이 '이한영 피살사건은 북의 지령을 받은 특수공작조 2명이 일으켰다"고 진술하면서 공식확인됐다.
가장 최근 사건으로는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이다. 국방부는 제3국 조사인원을 포함시켜 원인 조사를 벌였고 북한제 중어뢰로 인한 피격사건으로 결론내렸다. 그러나 북한은 남측이 조작한 사건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이는 남남분열의 단초를 제공했다.
이처럼 폭파 및 테러를 실제로 실행에 옮긴 조직으로 지목된 조직은 북한의 정찰총국이다. KAL기 테러 사건의 김현희는 현재 정찰총국으로 흡수된 노동당 35호실 소속으로 알려졌다. 35호실은 해외정보수집 및 국제 테러를 담당한 조직이었다. 이번 김정남 독살은 요인암살, 대남 무장공비 파견 등 정찰국이 맡았던 역할에 해당된다. 북한으로 귀국해버린 용의자들은 정찰국 소속으로 추정된다. 이밖에 작전국은 남파간첩을 훈련시키고 침투시키는 곳으로 알려져있다. 정찰총국에는 이밖에 사이버 전을 수행하는 기술국 등도 있다.
북한이 배후인 것으로 추정되지만 미궁에 빠져 끝내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사건도 있다. 1996년 10월 블라디보스톡에서 피살된 고 최덕근 영사 사건이 대표적이다.
고 최 영사는 국정원 요원으로 주 블라디보스톡 영사관에서 '화이트'로 일하다 자신이 거주하던 아파트 계단에서 피살됐다. 무차별 폭행으로 숨졌지만 부검 결과 독극물 성분도 검출됐다. 당시 남북관계는 북한의 강릉 잠수함 침투 사건으로 매우 경색돼 있었고, 최 영사는 북한의 마약 밀매를 추적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측은 범인 몽타주까지 작성해 수사에 착수했으나 20년이 흐른 지금도 진척이 없다. 다만 공소시효만 가까스로 중단시켜 놓은 상태다. 2000년 1월 중국에서 탈북자를 돕다 납치된 김동식 목사도 북한 여성 공작원
[신헌철 기자 / 안두원 기자 / 강계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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