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암살 사건의 용의자로 추정되는 인물들이 잇따라 체포되면서 사건의 진실 규명이 급물살을 타고 있는 가운데 북한 공작원으로 추정되는 리정철(46)의 정체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19일 현지 신문인 '더 스타'와 중국보(中國報), 성주일보(星洲日報)는 리정철이 항암제 등을 만드는 제약업체에서 근무하면서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대사관 직원과 접촉해왔다고 보도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리정철은 북한에서 과학·약학 분야를 전공하고 2000년 졸업 이후에는 인도로 유학을 가서 화학을 공부했다. 2010년 쯤에는 1년여간 인도 동부 콜카타의 연구소에서 일했으며 이후 북한으로 잠시 귀국했다가 말레이시아에 있는 제약회사에 취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언론은 확인되지 않았음을 전제하며, 리정철과 영문 이름이 같은 남성이 자신을 '평양직할시' 출신으로 김일성대학교를 졸업했다고 소개하며 과학실험실로 보이는 곳에서 찍은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다고 보도했다.
현지 당국 관계자는 "리정철이 김정남 살해에 사용된 액체 독극물 제조에 관여했다고 결론짓기는 이르지만, 이 부분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리정철의 화학분야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 이번 독살과 상당한 연관성이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리정철이 일반적인 북한 해외노동자와 달리 가족과 함께 독립된 생활을 누리고 있었다는 점도 신분을 위장한 북한 공작원이라는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리정철은 외국인 노동자 신분증(i-KAD)을 갖고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 도심에서 불과 15분 정도 떨어진 쿠차이 라마 지역의 '다이너스티 가든 아파트'에서 40대 아내와 17살짜리 아들, 10살짜리 딸과 살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대개 북한 해외근로자들이 가족 없이 단체생활을 하며 감시를 받거나 홀로 현지에 파견되는 반면 고위급이나 신분 위장 공작원들은 독립적인 생활을 허용해준다. 만약 리정철이 단순 노동자였다면 이같은 혜택을 누릴 수 없는 만큼 특수 임무를 부여받은 공작원일 가능성이 높다.
다만 다른 남성 용의자 3명이 범행 직후 말레이시아를 떠난 반면 리정철은 도주하지 않고 자신의 주거지로 돌아왔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의 핵심 인물이 아닐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말레이시아 중문매체인 중국보는 4명의 암살 주모자들이 1년 전부터 김정남의 출입국 동태와 생활 방식 등을 감시하며 이번 암살작전을 준비했다고 전했다. 도주한 남성 3명이 계획 전반을 짜고 실행하는 임무를 맡고 리정철은 이번 사건에 사용된 독극물만 제공했을 가능성도 있다.
리정철은 또 체포 당시 큰 저항없이 검거된 것으로 본지 기자가 리정철이 머물던 아파트 이웃 주민들을 취재한 결과 나타났다.
리정철과 같은 아파트 같은 층(4층)에 살았던 한 이웃 주민은 "리정철은 어젯밤 체포 당시 어떠한 저항도 하지 않았다"며 "고성은 들렸지만 총성은 없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은 "사복을 입은 경찰이 자신의 집으로 찾아와 어떤 소리가 나도 절대 문을 열지 말라고 했다"며 "그 후 경찰들이 리정철로 추정되는 50대 한국 남성의 집을 박차고 들어가는 소리를 들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일본
[쿠알라룸푸르 = 박태인 기자/ 서울 = 안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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