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혈통'의 장자였던 김정남이 독극물 테러로 살해당했다. 김정은 공포통치의 끝을 보여줬다고 평가되고 있다. 극단적 방법으로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일지 외부 시선은 충격 속에 지켜보고 있다. 김정은은 정권을 넘겨받은 2012년 당시 오래가기 힘들 것이라는 전반적 관측에도 불구하고 6년이 지난 현시점에는 강력한 지도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그러나 1인 지배체제의 특성상 지도부 교체라는 '급변사태'가 일어날 가능성도 항상 잠복돼있다.
◆공포정치로 김정은과 간부층 괴리
북한 체제의 모순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면종복배(面從腹背)'현상이다. 김정은의 앞에서는 복종하지만 속으로는 다른 마음을 먹고 있다는 게 태영호 전 영국주재 공사 등 탈북한 북한 고위층의 공통된 증언이다. 태 전 공사에 따르면 현영철 인민무력부장도 자신의 사저에서 김정은에 대해 비판적 언사를 늘어놓은 것이 도청돼 결국 처형됐다. 정부 소식통은 "북한 고위층 인사들은 수면제가 없으면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신경이 곤두서있다는 증언이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김정은의 공포통치는 권력기반 강화에 기여했으나 장기화하면 북한 체제의 불안요소를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북한은 내부적으로 김정남 관련 소식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으나 고위층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이야기가 확산되는 것을 알려졌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모종의 정책을 움직이는 데 김정남이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것이 아니라면 이 정도로 무리할 일이 없다"며 "이렇게 히스테리에 걸릴 정도로 김정은 정권이 취약하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정은이 공포통치로 사회를 이끌어 가지만 언제까지 이어갈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이런 긴장상태가 장기화하면 권력층 내부에서 불안과 동요가 커지면서 북한 체제를 위협하는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김정은 체제의 기반이 취약해지고 있다는 것은 탈북 유형의 변화에서 감지된다. 정부의 공식 집계한 한국 입국 탈북자는 매년 1000명 이상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과거에는 생활고 등으로 북한을 떠나는 사례가 많았던 반면 최근으로 올수록 북한체제에 대한 환멸과 더 좋은 생활환경에 대한 동경이 결합된 '이민형 탈북'이 늘고 있다. 정성윤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탈북민에 대한 조사를 보면 과거에는 배고픔이나 생존 때문이었는데 최근에는 미래나 가치, 꿈 등의 답변이 나온다"며 "탈북민이 살던 지역도 과거 북중 접경에서 즉 오지 지역에서 최근에는 대도시 거주민들의 비율이 급증하고 지식인의 숫자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재작년부터 북한 간부층의 탈북 사례가 늘어나는 것도 공포정치로 말미암아 간부층과 김정은 사이에 균열이 발생한 데 따른 결과라는 관측이 제기된 바 있다.
◆독일 분단 때도 동독인 대거 서독행
이같은 탈북 유형의 변화는 독일이 동·서독으로 분단돼있을 때 다수의 동독인들이 서독을 오갔고 결국 베를린 장벽 붕괴의 배경이 된 것을 감안하면 예사롭게 넘길 사안이 아니다. 독일은 분단 당시 동·서독간 다양한 교류를 통해 동독인들이 서독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서독 빌리 브란트 총리가 추진했던 동방정책의 기본은 '접근을 통한 변화(Change through Approach)'였다. 윤덕룡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동독의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서로를 충분히 알수 있도록 하는 교류를 통해서 만들어졌다"며 "이런 과정이 지속되고 축적돼 결국 통일에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정권 유지를 외부에서 돕는 가장 큰 세력인 중국의 태도 변화 여부도 주요 변수다. 독일 통일이 소비에트 연방 붕괴 이후 발생한 것처럼 중국 내에서도 김정은 체제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면 사태가 어느 방향으로 전개될지 가늠하기 힘들다. 중거리 미사일 도발에 이어서 터져나온 김정남 독살은 김정은에 대한 중국 지도부의 불안감 및 우려가 급격이 올라가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중국 내부에서는 "북한의 예측 불허 행태가 당혹스러울 정도"라며 "국제사회에서 북한을 엄호하는 데 지친 상태에서 제3국에서 독살까지 저지르는 상황은 중국 지도부의 국제적 위신을 심각하게 손상시키는 것"이라는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체제유지 위한 통치자금 유입 차단
김정은 체제가 스스로 내부 균열을 향해 가고 있다면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는 외부에서 가해지는 압력이다. 지난해 말 유엔 안보리가 5차 핵실험에 대응해 채택한 결의안 2321호는 북한으로 김정은이 사용할 가능성이 있는 현금 유입을 막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북한의 석탄수출에 상한을 정하고, 광물 수출금지 품목을 늘리는 등 자금원을 차단하기 위해 조치가 세밀하게 추가됐다. 미·일 등이 독자적으로 대북제제를 통해 북한의 경제활동을 제한하는 것도 김정은 정권의 현금 창구를 막는 차원이다. 우리 정부 관계자가 "북한에 타격을 줄수 있다"고 평가한 것처럼 북한의 체제 유지에 필요한 윤활유인 통치자금을 옭죄는 방법이다.
김정은을 둘러싸고 있는 권력층과 북한 체제의 핵심계층은 전체 인구의 약 10%로 추정되고 있다. 김정은 체제를 떠받치고 있는 기반이고 김정은과 공동운명체라고 할수 있다. 정부의 관계자는 "김정은 정권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이들의 충성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며 "김정은은 그 반대급부로 북한 내에서의 안락한 생활을 보장해주는 호혜적 관계"라고 말했다. 단적인 예로 지난해 개최된 북한 노동당 7차 당대회에서 참가자들은 중국한 45인치 LED 텔레비전을 선물로 하사받았다. 당대회 참가자는 약 3600여명으로 추산됐다. 이와 함께 평양시민들에게는 한달치 배급이 보너스 개념으로 지급됐고 세대별로 당과류도 공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김정은이 체제유지를 위해 들이는 비용의 근원을 차단하면 결과적으로 핵심 계층 내부에서 균열이 일어나는 단초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 내에서는 군부와 노동당 간에 무역 사업의 주도권을 두고 치열한 경쟁이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 체제에 충성하는 중요한 동기인 경제적 요인이 사라지면 공포통치로 유지되던 장악력이 급속이 약화될 가능성이 크다.
◆예고없이 찾아올 급변사태 대비해야
김정남 독살로 북한 체제의 취약성이 드러났다. 다양한 변수들이 김정은 정권의 기반을 흔드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한편으론 급변사태로 이어지기에는 북한 내부의 감시 체제와 정부 조직이 상당히 견고하다는 평가도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에 따르면 △북한 최고지도자와 체제의 동일시 △김정은의 지도력에 대한 이해 부족 △공안기관과 군대의 영향력 과소평가 △경제 중심적 접근의 한계 등으로 북한이 조기 붕괴론을 낳은 배경이다. 또한 정성윤 통일연구원 연구위원도 "북한 주민들의 맹목적 충성도가 높아 사회 봉기를 통한 혁명 가능성도 낮다"며 "외부 정보 유입이나 경제 제재를 통해 통치기반을 약화시키는 것은 상당히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망했다.
북한에서 지도부 교체 등 급변사태가 일어나면 주변국은 즉시 이에 개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은 범정부 차원의 '충무계획'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져있고 한·미 공동 대응을 위한 '개념계획
[안두원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