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귀국 후 정치교체를 내걸고 대권행보에 나섰다가 21일만에 중도하차하면서 2007년 고건 전 총리와 닮은 꼴이라는 반응이 정치권에서 나오고 있다.
현실정치에 몸담지 않은 관료출신이지만 한때 지지율이 30%를 넘으면서 대권 후보 1위까지 올랐고 이후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지며 중도포기해 대선을 완주하지 못한 점이 공통점이다. 또한 제 3지대론을 들고 나왔지만 기존 정당을 흡수하지 못했다는 점도 비슷하다.
그동안 정치권에서는 반 전 총장이 고건 전 총리의 길을 따를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는데 현실이 됐다. 역시나 제 3지대 후보로서 정치권 진입장벽은 상당히 높았던 것이다.
고건 전 총리는 김영삼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낸 정통관료였다. 특히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정국에서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뛰어난 위기관리능력을 보여주면서 단숨에 대선주자반열에 올랐다.
고건 전 총리는 2005년 초 지지율을 30%까지 끌어올렸고 2006년까지 한나라당 이명박-박근혜 후보와 맞설 유일한 여권후보로 자리매김했다. 이로 인해 고건 신드롬까지 생기면서 대세론의 중심에 있었지만 정치기반을 잡지못한 채 2007년 초 출마포기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고건 총리 기용은 결과적으로 실패한 인사"라며 힘을 실어주지 않았고 고건 전 총리의 지지율 하락을 부채질한 바 있다. 고건 전 총리는 2007년 1월 16일 대선 출마포기와 정치활동을 접겠다고 선언하면서 "새로운 대안 정치세력의 통합과 관련해 현실 정치의 한계를 느꼈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어 "기존 정치 벽이 높았다"고 토로하면서 "우리나라 선거 정치사에 있어서 제 3후보나 선거용 정당의 전철을 초래해선 안된다고 생각했다"고 설명
반 전 총장 역시 21일간 전국을 돌며 민심을 듣고 유력 정치인들과 회동하는 등 광폭행보에 나섰지만 진보와 보수 등 어느 한 쪽에서도 강하게 러브콜을 받지 못했다. 이처럼 외로운 정치일정 속에 정치권의 검증공세는 거세졌으며 지지율마저 추락하면서 반 전 총장은 대선 문턱에서 낙마했다.
[강계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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