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탄핵열차가 국회를 지나 헌법재판소로 넘어가면서 광화문을 뜨겁게 달궜던 촛불민심이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대통령 퇴진을 한목소리로 외쳐온 촛불광장에서 밀려났던 박 대통령 지지자들은 기회를 잡은듯 한켠에서 목소리를 키워가고 있다. 광장의 외침에 침묵하고 있던 이른바 ‘샤이(Shy) 박근혜’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본인의 정치성향을 공개적으로 밝히길 꺼려하고 조용히 투표를 통해 정치력을 드러내는 이른바 ‘샤이 보터’들이 보수진영을 중심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대통령 탄핵과 보수 분열로 인한 다당구도 등 예측불허의 19대 대선이 다가오는 가운데 샤이 유권자의 표심이 중요한 변수로 떠오를 전망이다.
◆ 샤이 박근혜...숨어있는 지지자들
지난 2012년 18대 대선은 보수진영의 박근혜 후보와 진보진영의 문재인 후보간의 1대1 대결로 치러졌다. 당시 대다수의 여론조사 기관과 언론사는 문 후보의 승리를 점쳤다. 전임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심판론이 대두됐고 보수 진영에 대한 실망감이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 후보는 문 후보보다 3.6%p앞선 51.6%로 승리를 거뒀다. 108만표 차 신승이었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박 후보를 당선시킨 요인 중 하나로 침묵한 보수, 샤이 보수층이 손꼽힌다.
샤이 유권자는 주변 시선을 의식해 선뜻 본인의 정치성향을 밝히지 못하는 유권자를 뜻한다. 이러한 경향성은 여론조사에도 반영돼 조사 결과에서도 나타나지 않는 숨은 지지층으로 분류된다. 진심을 드러내지 않는 샤이 유권자로 인해 유력 여론조사기관에서도 번번히 결과 예측에 실패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브렉시트 사태와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이 대표적인 예다. 대통령 퇴진의 목소리가 드높은 현 시국에서 박 대통령 지지자들이 음지로 숨고 있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는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10% 밑으로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탄핵 가결 당시 탄핵을 반대한다는 국민들이 15%에 달했다는 점이 이러한 샤이 유권자의 존재를 반증한다”며 “보이지 않는 지지층이 생각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 여론조사 방식도 변수… 전화면접서 지지 못 밝혀
여론조사 방식도 ‘샤이’ 유권자가 생기는 이유 중 하나다. 전화조 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며 신상이 공개되는 방식과 익명성이 보장되는 자동응답 방식에 따라 수치에 차이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여론조사 업체인 한국갤럽과 리얼미터가 최근 내놓은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 차이도 익명성 유무에 따라 샤이 박근혜 유권자가 다르게 답변해서 나타난 결과라는 해석도 있다.
한국갤럽에 따르면 박 대통령 지지율은 11월 들어 3주 동안 5%에 머물다 11월 마지막 주와 12월 1주는 4%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리얼미터의 경우 9.9~10.9%를 오르내리며 두 여론조사 결과는 약 5%포인트의 차이를 보였다. 이에대해 업계에서는 각 기관들의 여론조사 신뢰성 문제도 있긴 하지만 조사 방법의 차이가 이러한 결과를 빚어냈다고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갤럽과 리얼미터의 조사 방법에는 차이가 있다. 리얼미터는 전화면접과 스마트폰앱 유무선 자동응답 혼용 방식 등을 사용하고, 한국갤럽은 전화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조사를 한다”며 “결국 응답자가 익명성을 갖느냐는 문제인데, 지금 시국에서 박 대통령을 지지한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분위기라 전화조사원과 직접적으로 대화를 하는 갤럽의 방식이 박 대통령 지지자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웠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반대로 리얼미터는 전화조사도 병행하지만 스마트폰앱 유무선자동응답은 사람과의 대화없이 익명으로 본인의 의사를 나타낼 수 있어 ‘샤이 박근혜’를 잡아내기에는 더 용이했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르면 샤이 박근혜는 리얼미터에서 갤럽의 박 대통령 지지율을 뺀 약 5%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다른 관계자는 “총선이나 지방선거와 같은 일반적인 선거에서는 더 많은 표본에 직접 전화조사를 하는 한국갤럽의 방식이 보다 더 정확성을 기할 수 있지만 지금과 같은 경우엔 익명이 나을 수 있다”며 “숨은 표를 걸러내는 데는 유권자가 편하게 느끼는 조사 방법이 더 나을 수 있다”고 말했다.
◆ 샤이보수층 대선 흔들 변수 될까… 막판 결집 여부에 달려
전문가들은 샤이 박근혜보다는 ‘샤이 보수’가 좀 더 적합하게 현상을 이해하는 틀이라고 입을 모았다. 정통 보수 세력이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나 야당 후보 또는 진보로 넘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의 지지도가 떨어지는 한편 부동층이 크게 늘어나는 현상은 바로 이들 샤이 보수가 잠시 무당파로 있다가 보수 대선 후보가 나올 경우 언제든 이 후보에게 표를 던질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샤이 박근혜는 이미 세력이 미약하다. 샤이 보수의 표가 어디로 가는 지가 차기 대선의 승부를 가를 것”이라며 “현재 무당층에 속한 유권자 중 상당수가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에 실망한 보수 표인데, 결국 이들의 표는 반기문 UN사무총장으로 향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 교수는 “이 샤이 보수는 현재 새누리당이 분당 위기에 처하면서 갈 곳을 잃었지만 결국은 반 총장으로 결집할 수 밖에 없다”며 “야당 유력후보인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가 최근 ‘혁명’ 등 좌파적인 발언을 하는 등 보수적 성향의 유권자들에 반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문 전 대표를 가장 잘 견제할 수 있는 반 총장이 떠오를 수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반 총장의 지지율을 밑받침하고 있는 것은 갈 곳 없는 보수층들”이라며 “새누리당 지지율이 10%대 초반으로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이 영입하려고 했었던 반 총장의 지지도는 20%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이를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 교수는 “반기문 총장 지지율은 잠시 예전에 새누리당과 반 총장을 함께 지지했던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빠져 있는, 다시 얘기해서 ‘샤이 반기문’표가 분명히 숨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 중도층 무당파 샤이 유권자가 대선 향배 가를 듯
무당층으로 분류되는 중도 유권자들은 더 큰 변수가 될 수 있다. 리얼미터의 12월 3주 정기조사에 의하면 지지정당이 없는 무당층은 18.5%에 달한다. 이는 20.2%인 새누리당 지지율과 맞먹는 수준이다. 올 1월 4주차 리얼미터 정기조사에서 12.6%에 불과했던 무당층은 최근들어 20%를 오르내리고 있다. 유권자 10명중 2명은 여전히 지지진영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보수 진영에 숨어있는 샤이 유권자뿐 아니라 중도층이 어느쪽으로 움직이냐에 따라 대선 지형도 자체가 흔들릴 수 있을 것이란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지금 당장은 진보 진영이 유리한 고지를 점치고 있지만 향후 중도층의 표심이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뒤바뀔수 있다는 것이다. 그 연장선에서 새누리당을 떠난 개혁보수를 표방한 보수신당이 중도층을 놓고 국민의당 등과 치열한 세싸움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중도층을 잡은 쪽이 보다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상태서 대선 정국을
[추동훈 기자 / 김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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