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이어 이란도 미국과 정면으로 대립각을 세우면서 도널드 트럼프 당선 이후 미국 외교가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트럼프는 당선 이후 대만 정상과 통화하며 ‘하나의 중국’원칙을 경시하는 발언으로 중국을 자극한데 이어 이란과의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 행동계획) 도 취소할 수 있다고 공언해왔다.
이란은 트럼프가 취임 이후 실제로 합의안을 파기할 것에 대비해 핵추진체 개발에 착수하는 등 ‘강공 모드’로 돌아섰다. 이란에 우호적이었던 오바마 대통령, 민주당과 달리 공화당이 미국 의회 상·하원을 장악해 이같은 갈등에 더욱 불을 지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로이터 등 주요 외신은 13일(현지시간)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이란 원자력청장에게 핵추진체 개발에 착수할 것을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핵추진체의 목적이 구체적으로 공개되지는 않았으나 로하니 대통령의 명령 중에 ‘수중 이동수단’ 등의 표현이 있어 해군 함정에 장착되는 용도가 유력해 보인다.
이란이 핵추진체 개발 결심을 굳힌 것은 미국 의회가 하원에 이어 상원에서도 이란제재법(ISA) 시한을 10년 더 연장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지난 해 7월 타결된 핵합의에서 미국은 이란이 핵 개발을 중단하는 대가로 이란에 가해진 경제제재를 해제하기로 했다. 하지만 공화당이 장악한 미국 의회가 이달 초 핵 문제 외에 이란의 장거리 미사일과 인권을 문제삼으며 제재를 연장하기로 한 것이다.
로하니 대통령은 이에 대해 “미국 의회의 결정은 지난 해 타결한 핵합의를 정면으로 어긴 것”이라고 주장했고, 당시 합의를 주도했던 카말 카라지 이란 외무장관도 “미국 정부가 신뢰를 잃었다”고 비판했다.
이란은 또 트럼프 정부 출범 후 핵합의안이 폐기될 것에 대비해 러시아 국영기업 가즈프롬과 이란 유전개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란의 원유수출과 유전개발 투자를 허용한 핵합의안이 트럼프 정부에 의해 파기되더라도 러시아가 과거처럼 미국이 주도하는 이란제재에 동참하지 않도록 사전 조치를 취한 것이다.
이란은 같은 목적으로 프랑스 토탈, 영국·네덜란드 로열더치셸과도 대형 유전과 가스전 개발 협약을 체결했다. 또 이란 내 가스전과 정유단지에 중국 국영석유회사인 CNCP와 시노펙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했다. 트럼프 정부가 출범하기 전에 주요국과 에너지 공동개발 협약을 체결함으로써 미국이 이란 추가제재를 추진할 경우, 이들 국가들이 협조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졌다. 지난 해 이란 핵합의에는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등 안보리 상임이사국과 독일이 참여했다.
이란 정부는 특히 트럼프 정부가 펼칠 것으로 예상되는 이란정책에 대해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대선기간 중 “이란 핵합의는 재앙이다. 합의안을 찢어버리라는 얘기가 있다”고 말해 취임 후 정책 변화 가능성을 예고했다.
후세인 데흐칸 이란 국방장관은 이에 대해 13일 수도 테헤란에서 열린 안보 컨퍼런스에서 “미국 차기 정부가 이란 핵합의안을 폐기하는 등 이란에 대한 적대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중동지역 뿐만 아니라 세계를 흔들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같은 반발에는 이스라엘이 불을 붙였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지난 11일 방송 인터뷰에서 “이란 핵 합의를 무효화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트럼프 당선인과 논의할 것”이라고 밝혀 이란을 자극했다. 오바마 대통령과 불편한 관계를 이어 온 이스라엘이 친이스라엘 성향의 트럼프가 당선되자 이를 적국인 이란을 압박하는 지렛대로 활용한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트럼프 당선인이 취임하더라도 이란 핵합의를 완전히 무효
[워싱턴 = 이진명 특파원 / 서울 = 임영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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