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서 가장 난감한 처지에 몰린 건 차기 대선을 준비하고 있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다. 헌법재판소 판단에 따라 차기 대선은 이르면 내년 3월(1월 말 인용 판결 시)부터 치러질 수 있어 절대적으로 준비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매년 겨울 치러지던 수학능력시험(대선)이 올해부터 갑자기 봄이나 여름으로 앞당겨질 수 있다는 소식에 수험생들(대권주자) 표정은 가지각색이다. 최순실 게이트 국면에서 사실상 선거운동을 벌여 온 여야 대권주자들을 마음 급한 '고3'이라고 하면 내년에야 국내 정치판에 낄 수 있는 반 총장은 모의고사도 치러보지 못한 '외국 전학생' 같은 상황이다. 이런 불리한 상황에서 반 총장 측은 내년 1월 초 조기 귀국을 깊이 있게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선 준비 기간이 턱없이 부족한 데다 유엔 사무총장직을 완결한 이후 가장 빠른 타이밍에 귀국하는 것이 그의 강력한 대권 의지를 국민 앞에 보여주는 직접적 방식이기 때문이다. 반 총장 귀국 시기에 대해 여러 추측성 보도가 나왔지만, 반 총장 측은 당초 '1월 중순 귀국론'에 변함없다는 공식 입장을 갖고 있다.
반 총장의 국내 측근은 "박 대통령 탄핵 이후 향후 대선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면서 반 총장도 당초 1월 중순 귀국 계획을 앞당기는 방안을 깊이 있게 고심하고 있다"며 "내년 1월 초 미국 현지에서 계획했던 일정의 상당 부분을 변경하고, 1월 초 귀국할 가능성도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박 대통령 탄핵안 가결 이후, 반 총장 지지자들은 "나라가 어지러운 상황에서 한시라도 빨리 귀국해 본인의 결단을 밝히고, 중도보수 세력을 결집해 차기 대권에 도전해달라"는 건의를 반 총장 측에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 총장이 내년 1월 초 전격 귀국해 '질풍노도'식의 사실상 대선운동에 돌입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반 총장 복수 측근에 따르면 반 총장의 국내 정치 참여는 확정적이다. 반 총장은 평생을 관료로 살아왔지만, 대권 의지도 강력하다는 게 주변 평가다. 반 총장이 차기 대선을 완주할 수 있을지는 세(勢)와 시(時)의 문제다. 반 총장이 폐족이 된 새누리당에 합류할 수 없는 상황에서, 보수 신당 창당이나 후보 단일화만이 선택지로 남았다. 기성 정치 기반이 전무한 반 총장은 확고한 지지율 없이 한 발자국도 내딛을 수 없다. 반 총장 측근 그룹에선 그의 정체를 '건전한 보수'라고 요약한다. 이는 합리적 진보를 포용해 새로운 정치를 열겠다는 의미라고 한다. 결국 보수진영의 유일한 대안으로 자리매김하고, 중도나 진보세력과 손잡고 기성정치와 도 싸워야 한다는 얘기다.
다만 헌법재판소가 예상보다 매우 이른 시점에 탄핵안 인용 결정을 내놓으면 반 총장이 중도 포기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최소한의 세력이나 절대적 시간이 부족하면 차차기 대권을 노려보기 힘든 반 총장은
[전범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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