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주변 4강인 미·중·일·러가 국익을 증진시키기 위한 치열한 외교전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적극적인 외교 행보에 나설 위치가 아니다보니 외교 리더십 공백 사태가 불가피해졌다. 숨가쁜 동북아 외교전과 이에 대비되는 속수무책 한국 외교를 보면 100여년 전 조선이 제국주의의 먹잇감으로 전락했던 때를 연상시킨다는 지적도 있다.
◆동북아 4강, 치밀한 전략 속 외교행보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오는 15·16일 연속으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는다. 아베 총리는 푸틴 대통령을 자신의 고향인 야마구치(山口)로 초대해 정상간의 스킨십을 강조하며 양국관계를 ‘리셋’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아베 총리는 일본이 2차 세계대전 패전으로 러시아에 넘긴 ‘북방영토(쿠릴 4개섬)’ 문제의 해법을 찾기 위해 러시아와 이 지역에서 공동 경제활동을 하는 방안을 공식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두고 국제관계 전문가들은 러일간 ‘신 밀월’이 이뤄지고 있다고 평가한다. 푸틴 대통령도 미국·서유럽 국가들의 제재와 저유가로 인한 경제난을 돌파하기 위해 동아시아에서 일본과의 경제협력 강화를 노리고 있다. 이 때문에 그동안 미국 정부는 러일 관계가 급진전되는 것을 견제하기도 했다. 미국측은 지난달 외교 경로를 통해 두 사람이 도쿄에서 정상회담을 하는 것은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미국의 압력을 물리치고 자국의 이익을 우선해 푸틴과 두차례 정상회담 방침을 고수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대중 외교도 의표를 찌르는 것으로 평가된다. 트럼프 당선인이 차이잉원 타이완 총통과 전화 통화를 한 것은 미중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편하기 위한 카드로 분석된다. 트럼프 당선인 측이 중국 반발을 예상했으면서도 향후 대중 관계에서 강한 압박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트럼프 측은 차이 총통과의 통화를 수개월 전부터 치밀하게 준비했고 중국의 반발 및 대처 방안까지 깊숙히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시진핑 국가주석이 내년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 포럼)에 참석하기로 하는 등 미국 중심의 세계 경제제체에서 자국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외교안보 현안 곳곳서 시험대
동북아 주변 정세가 이처럼 급변하고 있지만 공교롭게 우리는 리더십 공백에 놓이게 됐다.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구한말과 별로 상황이 변한 것 같지 않다”며 “지금은 속국을 만들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를 우방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4개국이 각축을 벌이는 게 아니겠냐”고 진단했다. 송 교수는 “당시보다 더 안좋은 것은 우리의 선택지가 오히려 상당히 좁아졌다”며 “중국과 미국에 끼어있는데 훨씬 더 압박이 심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당장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위안부 협상 등이 시험대에 올랐다. 미국 국방부는 10일 탄핵안 가결이 사드 배치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에 대해 “북한 문제와 다른 역내 이슈, 그리고 국제 경제와 무역 등 전방위 분야에 걸쳐 정책의 일관성과 연속성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미 국방부 피터 쿡 대변인은 “가능한 한 빨리 사드를 배치하려는 우리의 노력은 계속될 것”이라면서 “한미동맹은 그 계획을 계속 밀고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사드에 대해 원론적인 입장을 강조한 것이지만 미군 고위층은 이미 ‘정치적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지난 9일 박 대통령 탄핵 가결 이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에 대한 중국의 보복 조치 등을 낱낱이 점검하겠다”고 밝혀 사드 배치에 대해 문제를 삼을 것을 시사했다.
일본에서는 한일 위안부 협상 결과가 번복될 것이라는 우려가 일찌감치 나왔다. 하기우다 고이치 일본 관방부장관은 11일 양국간 위안부 합의는 준수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누가 대통령이 되든 ‘한번 더 (협상을) 다시하자’는 요구는 수용할 생각은 없다”며 “당연히 (합의를) 준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직무정지 상태에 놓인 우리나라가 맞닥뜨린 동북아 안보 지형을 두고 위성락 러시아 대사(전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는 “국제지정학 판이 계속 움직이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의 입장을 유지하고 균형을 맞춰가려는 노력이 부단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연말 한중일 정상회담 무산될 듯
당장 이달로 예정된 한중일 정상회담도 박 대통령 탄핵안 가결로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 당국자는 이날 “준비시간 등을 감안할 때 사실상 금년 안에 한일중 정상회의를 개최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의장국인 일본이 (외교 경로를 통해) 표명했고, 주초에 공식 발표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중국 측이 지난주까지 (참가 여부에 대한) 입장 표명을 하지 않았다”며 “일본 측은 연내 개최가 어렵게 된 상황에서 차기 회의를 가급적 내년에 조기에 개최한다는 입장으로 관측된다”고 말했다. 중국이 참석 여부를 밝히지 않은 것은 최근 껄끄러운 중일 및 한중관계 뿐 아니라 박
[안두원 기자 / 박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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