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만→232만…박근혜 대통령 탄핵, 야당도 검찰도 아닌 국민의 승리
↑ 국민의 승리/사진=연합뉴스 |
현직 대통령 탄핵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불러온 원동력은 정치권도, 시민단체도, 수사기관도 아니었습니다.
국정농단 사건에 분노해 자발적으로 거리로 뛰쳐나와 촛불을 든 수많은 시민의 힘이 만들어 낸 일이었습니다.
첫 촛불이 밝혀진 것은 10월29일이다.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가 언론을 통해 본격 불거지고서 처음 열린 집회였습니다.
당일 집회 전까지만 해도 촛불이 온 국가를 뒤흔들 만큼 거대한 존재가 될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경찰은 그날 순간 최다 운집인원을 3천∼4천명 선으로 예상했습니다.
서울에서 이 정도 규모의 집회는 연중 드물지 않게 열립니다.
다만 여론이 워낙 뜨악했던 터라 향후 집회 규모를 가늠할 계기로 여겨져 경찰과 정치권도 예의주시했습니다.
뚜껑을 열어보니 집회 규모는 주최 측 추산 연인원(누적인원) 2만명, 경찰 추산 순간 최다인원 1만2천명으로 예상을 훨씬 웃돌았습니다.
노동조합 등 기성 단체들이 구성원들을 조직해 참여시키던 기존 집회들과 달리 이날 집회에는 언론보도를 보고 격분해 자발적으로 나온 시민들이 많았다는 점도 달랐습니다.
집회에 평생 처음 나왔다는 참가자도 적지 않았습니다.
특정 사안이 불거지면 그에 관계된 정부 기관을 비판하거나 대통령에게 '사과하라'고 요구하는 구호가 많았던 것과 달리 이 집회에서는 박 대통령을 상대로 '하야하라'거나 '퇴진하라'고 요구하는 목소리가 주를 이뤘습니다.
시작부터 심상치 않았던 촛불의 중량감은 날이 갈수록 커졌습니다.
11월5일 열린 2차 집회는 서울에서만 주최 측 추산 20만명, 지방을 포함하면 30만명이 참가할 만큼 세가 불었습니다.
11월12일 3차 집회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 최다인 100만명(이하 주최 측 추산)까지 참가자가 증가했습니다.
한 차례 숨 고르기가 예상됐던 4차 집회(11월19일)도 한 주 전과 맞먹는 95만명이 전국에 모였고, 눈·비에 기온까지 떨어진 5차 집회(11월26일)에는 전국에 190만명
바람이 불어도 꺼질 줄 모르던 촛불의 세는 이달 3일 6차 집회에서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주최 측 추산 연인원 232만명, 경찰 추산 순간 최다 43만명이 전국에서 촛불을 메워 명실상부 헌정사상 최대 규모 집회로 기록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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