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안 표결은 정국에 메가톤급 후폭풍을 가져올 전망이다. 여야 각 당의 내부 권력지형은 물론 정계개편, 차기 대선구도 등에도 큰 파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16대 국회 때인 2004년 3월, 당시 한나라당 민주당 자유민주연합 등 야3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탄핵했다. 그러나 총선에서 역풍이 불면서 열린우리당이 압승했고, 헌법재판소의 기각 판결로 노 대통령은 권좌에 복귀했다. 완벽한 대역전이 벌어졌지만 여야간 대치의 골이 깊어지면서 참여정부의 국정 추동력이 크게 약화되는 국가적 손실을 초래했다. 이번 헌정 사상 두번째 탄핵소추도 가결이든 부결이든 정국은 혼돈 속에서 무질서하게 표류할 가능성이 크다.
◆ 가결돼도 찬성 표수 따라 파장 달라
탄핵안이 9일 본회의 표결에서 220표 이상의 압도적 찬성표를 얻어낼 경우 야3당과 새누리당 비박계가 ‘전리품’을 나눠갖게 된다. 특히 민주당은 강경 투쟁을 선도했던 문재인 전 대표와 추미애 대표 등 주류에게 힘이 실릴 수 있다. 이들은 3~4월 대선 가능성을 부각시키면서 이른바 ‘문재인 대세론’ 확산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은 비박계가 주도권을 쥐면서 현 지도부 사퇴와 비상대책위 구성 등에 박차를 가할 전망이다. 특히 탄핵을 주도한 유승민 의원이 구심점 역할을 하며 새누리당의 유력한 대권후보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한 비박계 의원은 8일 “압도적 가결때는 친박 핵심들에게 책임을 지우는 수순으로 가야 한다”며 사실상 ‘진박(眞朴) 축출’ 작업에 착수할 뜻을 시사했다. 친박계는 사실상 크게 위축되면서 계파 소멸의 위기에 봉착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가결되더라도 200표를 간신히 넘는 수준에 그친다면 여야 모두 향후 시나리오는 복잡해진다. 야당은 ‘백가쟁명’식 조기 대선체제로 흘러갈 것으로 보인다. 여당은 더욱 복잡하다. 친박과 비박은 어느 쪽도 물러설 수 없는 마지막 권력투쟁에 돌입하게 된다. 친박은 탄핵을 주도한 비박계를, 반대로 비박계는 탄핵에 반대한 친박계를 내쫓기 위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귀국 시점까지 지리멸렬한 이전투구를 이어갈 것으로 관측된다.
◆ 탄핵 후 하야, 황교안 체제 놓고 공방
탄핵 표결을 코 앞에 둔 여야는 이미 ‘포스트 탄핵’ 정국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가결이 될 경우 야당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를 흔들 가능성이 높다. 야권 관계자는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황 총리를 탄핵하거나 여야 요구로 책임총리로 교체할 수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사실상 황 총리를 ‘식물 권한대행’으로 만들고 정국 주도권은 야당이 쥐고 가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여당, 특히 친박계는 탄핵시 거국내각이나 책임총리 협상에 응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친박계인 조원진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이날 “(탄핵안이)가결 됐을 때 황 총리를 압박해 국정 불안을 만드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며 “여기에 대한 담보를 받고 표결을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전 대표 등이 주장했던 ‘탄핵 후 즉각 하야’도 여야간 논쟁거리다. 촛불 민심도 탄핵안 가결과 무관히 하야를 지속적으로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도 이에 호응할 것으로 보여 촛불은 곧바로 꺼지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친박과 비박 모두 이 같은 요구는 반헌법적이라고 맞서고 있다.
만약 문 전 대표가 하야 투쟁에 앞장 설 경우 이를 ‘대권 욕심’으로 몰아가는 전략을 펼 가능성이 크고, 야권 내에서도 일부 이에 호응하는 움직임이 예상된다.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이날 “(즉각 퇴진은)문재인 전 대표 혼자 하는 것”이라며 “조기대선을 하면 자기가 이롭다(는 판단 때문이다), 대통령급에 가까운 실력을 발휘하는데 마치 DJ정부때 이회창 같은 역할”이라고 비판했다.
◆ 부결되면 여야 책임공방…여당 분당 수순 밟을 듯
일단 정치권에선 탄핵안 가결을 점치는 분위기이지만 부결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긴 힘들다. 새누리당 비박계 내 ‘샤이(shy) 박근혜’가 존재할 가능성도 있어서다.
부결 시 일차 타깃은 새누리당 친박계다. 공개적으로 탄핵을 반대했던 만큼 지금껏 경험했던 휴대전화·문자 폭탄 이상의 역풍을 각오해야 한다. 민주당과 국민의당 등 야권도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특히 새누리당 비박계를 향해 ‘부역자집단’이라며 자극했던 추미애 민주당 대표에 대한 사퇴 요구가 당 비주류를 중심으로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탄핵안이 가결되도 박 대통령은 즉각 하야하라”는 발언으로 대권 욕심이 지나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은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 역시 신중하지 못한 언행으로 대사를 그르쳤다는 비판을 받을 소지가 크다.
새누리당 내에선 친박과 비박 간 정치생명을 건 권력투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비상시국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비박계가 당권 장악에 나서겠지만 실패할 경우 결국 분당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친박계가 실익을 챙길 가능성도 점쳐진다. 탄핵안 부결 책임을 두고 정치권이 일대 혼란이 빠진 사이 보수세력 리모델링론을 앞세우며 참신한 인물을 새 주자로 내세울 경우 어느 정도 세를 회복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야권은 탄핵을 요구하는 여론에 등 떠밀려 곧바로 임시국회를 소집해 탄핵안 재발의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부결된 안건은 같은 회기에 다시 제출할 수 없는데, 9일은 이번 정기국회 회기 종료일이다. 따라서 임시국회를 소집하면 새로운 국회 회기가 시
신율 명지대 교수는 “만에 하나 부결되면 20대 국회의원들은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신헌철 기자 / 오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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