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 표결을 앞두고, 정치권은 탄핵 통과 여부를 넘어서서 탄핵 의결 이후 박 대통령의 사임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야권은 탄핵안 통과 이후에도 박 대통령의 즉각 하야를 주장하며 촛불 정국을 끌고 가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반면 여당에선 박 대통령 퇴진에 대한 정치적 합의를 거부하고 헌법재판소에 공을 넘긴 이상 즉각 하야를 다시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맞서고 있다.
5일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국회서 열린 박 대통령 탄핵 촉구 촛불집회에 참석해 “(박 대통령은) 탄핵이 의결되면 딴말 말고 즉각 사임부터 해야한다”고 밝혔다. 또 문 전 대표는 “헌법학자 간 의견이 나뉘지만, 저는 탄핵 의결 이후에도 사임할 수 있다고 본다”며 “국회 탄핵안 가결 이후 헌재가 심리에 들어가기 이전에 대통령이 사임하면 탄핵 절차가 종결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탄핵 찬반 투표가 이뤄지기 전부터 ‘선탄핵 후퇴진’을 주장하며, 포스트 탄핵정국에서의 강공책을 예고한 셈이다. 박 대통령이 실제로 이를 받아들일 경우,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심판을 하는 기간이 줄어들어 차기 대선 스케줄은 더욱 앞당겨진다. 박 대통령이 사임하지 않더라도, 청와대와 여당을 향한 촛불민심을 유지하면서 야권결집을 이룰 수 있다는 면에서 잃을게 없다는 판단이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 측에선 문 전 대표를 향해 ‘과욕’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는 이날 “탄핵은 헌법질서를 수호하는 것이지, 헌법질서를 허무는 혁명 수단이 아니다”며 “지극히 ‘반헌법적 발상’이라는 점에서 심각하게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또 그는 “(문 전 대표가) 조기대선에 욕심을 부린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매경기자와의 통화에서 “문 전 대표는 100미터 단거리 달리기에서 50미터 정도 앞서 달려가고 있는데 골인 지점까지 앞으로 당겨 달라는 얘기다”라며 “그렇게 욕심을 내면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보나”라며 비판했다.
박 대통령의 탄핵 후 사임 여부가 법적으로 가능한지에 대해서도 설왕설래가 계속되고 있다. 법에 탄핵 소추 후 피소추자에 대해 해임·사임을 금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법 134조 2항에는 “소추의결서가 송달된 때에는 피소추자의 권한행사는 정지되며, 임명권자는 피소추자의 사직원을 접수하거나 해임할 수 없다”고 돼 있다. 국회에서 탄핵이 의결이 돼 헌재에 탄핵심판 절차를 접수 한 후부터는 사임하거나 임명권자가 해임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대통령은 스스로가 임면권자이므로 해당 조항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분석이 있다. 헌법재판관으로 활동했던 한 헌법학자는 “법에는 (탄핵) ‘피소추권자는 사임할 수 없다’고 돼 있지만 대통령은 다르다”며 “대통령은 헌법적 지위를 갖고 있으니 조항이 없어도 하야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헌법재판관 출신의 노희범 변호사는 최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국회법 32조에 해임 불가의 경우 선출직 공무원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중론”이라며 “임명직 공무원의 경우 사임으로 끝내지 않고 파면 조치를 위해 만들어진 조항이지만 대통령이 사임하는 것에는 문제가 될 수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결국 실제 박 대통령이 탄핵 이후 사임할 경우 이를 받아들일지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달렸다.
헌재 관계자들은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나면 탄핵 심판의 이익이 없다고 보고 각하할지, 아니면 앞으로의 대통령 예우 문제 등을 고려해 탄핵 인용·기각 여부를 별도 심리할지는 재판관들이 결정하면 된다”고 말했다.
또 대통령이 사임한다고 해서 탄핵 절차가 바로 종료되는 것도 아니다. 헌재가 탄핵 심리 도중 벌어지는 정치적 상황을 적절히 감안해 심리하면 된다는 게 중론이다. 국회가 직접 탄핵을 철회하지 않는 한 대통령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절차가 지속된다는 게 다수 의견이다.
다른 관계자들은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 3분의 2가 동의해 탄핵을 의결했는데, 대통령 본인이 사퇴하겠다고 해서 탄핵이 유야무야 종결되는 것은 민주주의 원칙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국회가 탄핵을 의결할 때와 같은 정족수인 국회의원 3분의 2 동의로 탄핵을 철회하지 않는다면 대통령이나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등 개인의 의견에 따라 심판 계속 여부를 가릴 수 없다는 뜻이다.
헌법재판소는 박 대통령이 탄핵 이후 사임을 하더라도 국회의 탄핵철회 없이는 탄핵심판을 중지할 수 없다
[전범주 기자 / 김효성 기자 / 김윤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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