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시장화는 체재위기의 완충재 역할을 하고 있다, 핵·경제 병진노선을 추구하는 김정은 정권에 긍정적 역할을 하고 있어 시장화는 더욱 활성화될 것이다”
5일 김영희 KDB산업은행 북한경제팀장은 매일경제신문과 산은이 공동 주최해 서울 여의도 글래도호텔에서 열린 제24차 북한정책포럼 세미나에서 북한에서 시장화가 되돌리기 힘들 정도로 급속하고 강력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 팀장은 현재 북한의 계획경제시스템 회복 능력이 매우 부족하다고 평가하며 “(시장은) 대북제재 속에서 민생 안정의 유일한 출구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발표에서 김 팀장은 2000년대 초반 일부 소비재에 한해 거래되던 북한의 시장이 이제는 △생산재 △노동 △금융 △부동산 등으로 분화·발전하는 양상에 주목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활발히 거래되고 있는 이같은 재화들이 북한에서도 상품으로 거래되고 있는 것 자체가 시장화의 분명한 진전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김 팀장은 발표에서 북한에서 국가 통제시스템이 약화되고 주택공급이 줄어들면서 주택(입주권)이 상품화되면서 부동산시장이 형성되고 있는 현실도 소개했다. 그는 “수요와 공급, 위치, 생활여건 등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며 거래하는 쌍방이 부동산값의 2% 정도의 수수료를 지불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우영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시장화로 인해 북한에서 한류를 지칭하는 ‘남조선 바람’이 북한 당국의 감시에도 불구하고 2000년대 이후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남한드라마 시청을 통한 의식 변화가 곧 행동으로 옮겨지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일상에서의 소소한 거부나 나아가 탈북이라는 체제 저항적인 행위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이 교수는 북한 내 한류 확산이 곧바로 체재 이완이나 붕괴 등의 급격한 변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성급하다는 견해를 펼쳤다.
발표자로 참여한 정은이 경상대 교수는 북한 내 시장에서 한국 상품들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Made in Korea’ 상품들이 대체제가 없는 고급품 대접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현재 북한 4인가족 한달 생활비가 40~50달러인데 한국산 ‘커피믹스’ 스틱 8개가 1달러에 팔리고 있다”며 “특히 북한에서 인기가 높은 LG생활건강의 ‘케라시스’ 샴푸는 한 봉지(3통 분량)이 35달러에 팔리고 있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한국산 상품이 확산되면서 북한에서는 2010년 이후 커피가 대중화되고 샴푸를 쓰는 문화가 생겨났다”며 시장화가 북한 주민들의 생활습관 자체를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세미나의 토론자들 역시 북한 당국이 ‘시장화’를 체제 유지를 위해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점에 공감했다.
양문수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에서 시장화가 20여년 간 지속되면서 현재 김정은 정권은 시장을 묵인하는 것을 넘어 정부가 주도하면서 적극 활용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양 교수는 “북한에서 시장화로 인해 과거보다 물질주의적 성향이 커졌지만 기존의 집단주의가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다”며 북한 주민들의 의식이 철저하게 자본 지향적으로 변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조봉현 IBK경제연구소 부소장은 이날 토론에서 “북한의 장마당(시장)이 500개를 넘어섰고 골목 시장(불법 시장)까지 헤아린다면 800개가 넘어간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이는 최근 미국 측 전문가가 위성사진을 통해 분석한 북한 장마당 갯수인 400여 개의 두 배에 해당하는 수치다. 조 부소장은 “과거 생존을 위해 장마당을 활용했던 북한 주민들은 이제 상업행위를 통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며 “현재 북·중 국경에서는 ‘드론’을 활용해 한류콘텐츠가 들어있는 CD 등 가벼운 물건을 배송하는 단계에 이르렀다”며 장마당의 발전상을 전했다.
한편 김형석 통일부 차관은 이날 세미나 축사를 통해 “현재 북한 주민들의 삶을 지탱하는데 있어 시장은 큰 역할을 하고 있고 외부정보와 시장을 통해 북한 주민들의 생활과 의식
[박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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