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규명을 위한 국회 차원의 첫 조치가 어렵게 이뤄졌다.
국회는 17일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를 잇따라 열고 ‘최순실 특검법’을 처리했다. 하지만 첫 단추를 꿰기조차 쉽지는 않았다. 청와대와 새누리당 친박계가 장기전 태세에 돌입한 가운데 여당 비박계조차 야당의 ‘독주’에 우려를 나타냈기 때문이다. 향후 야권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소추를 추진할 경우 여당의 저항이 의외로 강할 수 있다는 점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정진석, 권성동 위원장 겨우 설득
이번 ‘최순실 특검법’은 특별검사를 민주당과 국민의당 등 두 야당이 합의해 추천하며, 대통령은 추천 후보자 중 한 명을 임명하도록 규정했다. 바로 이 조항을 이유로 여당 소속인 권성동 법사위원장과 일부 여당 법사위원들이 제동을 걸었다. 야권 일각에서 박근혜정부와 갈등 끝에 물러난 채동욱 전 검찰총장을 특검으로 고려한 점도 여당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원인이 됐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이날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위원장이 법조인으로서 자기 소신을 이야기할 수 있지만 이 시국을 풀어나가기 위해선 특검법 통과가 가장 필요하다”고 재차 통과를 요구했다. 그러자 강성 친박계인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만약 통과된다면 촛불에 밀려서 원칙을 저버린 오욕의 역사로 남을 것”이라며 “촛불은 촛불일 뿐이지 바람이 불면 꺼진다. 민심은 언제든 변한다”고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 ‘촛불은 꺼진다’는 김 의원 발언은 이날 인터넷상에서 큰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설전 끝에 법사위가 다시 정회되자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직접 권성동 위원장을 찾아와 법사위 통과를 요청했다.
이후 속개된 전체회의에서 권 위원장은 “특별검사가 중립성 시비없이 수사를 공정하게 하고, 수사 결과가 국민에게 신뢰받을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는게 제 소신”이라며 “하지만 원내대표가 여러차례 찾아왔고 우리 당 반수 정도는 문제가 있지만 통과시키자는 의견이 있었다. 이 법을 통과시켜 본회의에 회부하는 것이 의원들의 뜻을 존중하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고 정리했다.
이에 따라 특검법은 이날 오후 3시께 가까스로 법사위 문턱을 넘었다.
◆‘야당 독주’에 여 거부감
이번 특검법안은 향후 벌어질 탄핵 정국의 시험대라는 점에서도 관심이 쏠렸다.
헌법 제65조에 따르면 대통령 탄핵소추를 위해서는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 발의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즉,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을 국회서 통과시키려면 200명 이상의 찬성이 필요한 셈이다.
이번 특검법에 서명한 여야 의원이 모두 209명인 점을 감안하면 탄핵안의 국회 통과가 불가능하지는 않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대표 발의한 특검법에는 민주당과 국민의당 소속 의원 전원이 참여했고 새누리당에서도 김무성 전 대표, 유승민 전 원내대표 등 비박계를 중심으로 50명이 가담했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최순실 특검법에 서명해 이번 특검법 발의의원 명단에 빠진 정의당과 무소속 의원도 박 대통령의 탄핵에 긍정적이다.
그러나 ‘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에 대한 국정조사안에는 새누리당 의원이 30명만 참여하는데 그쳐 여야 합쳐 191명만 이름을 올렸다. 새누리당 친박계로 분류되는 60여 명과 범친박계와 비박계 일부 의원들이 국정조사안에는 난색을 보이며 탄핵안 의결정족수 200명선을 못 넘긴 것이다. 특검과 달리 국정조사는 국회가 직접 나서는 만큼 대통령에게 칼을 겨누기 부담스럽다는 분위기가 여당 의원들 사이에 깔려 있는 것이다.
결국 박 대통령의 퇴진과 친박계 지도부 사퇴를 주장하는 여당 비주류가 얼마나 단결력을 보여줄지가 탄핵안 처리에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국회는 이날 최순실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 계획서도 의결했다. 국정조사는 이날부터 내년 1월 15일까지 60일이지만 필요시 30일
국정조사 역시 특검법과 동일하게 조사대상을 15가지로 규정해 세월호 7시간에 대한 조사 가능성을 열어뒀다. 국정조사 청문회에는 대통령 비서실은 물론 전경련과 관련 기업을 부를 수 있으며 증인과 참고인은 여야 간사간 협의를 거쳐 추후 확정키로 했다.
[신헌철 기자 / 안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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