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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가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 격차해소를 위한 자활사업 발전 방안 모색 국회토론회’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0일 페이스북에서 “양극화와 기득권층에 대한 국민 분노가 미국식 민주주의 방식으로 표현됐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며 “우리의 촛불집회에서 수십만명의 시민이 표출하는 분노 배경도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밝혔다.
문 전 대표는 트럼프 당선이 확정된 이후 박근혜 대통령을 거세게 몰아세우고 나섰다. 전날 트럼프 당선이 유력한 상황에서 “박 대통령은 군통수권 계엄권은 물론 국정원 사법부 감사원 헌법재판소 등에 대한 인사권까지 모두 내놓으라”고 요구했을 정도다.
문 전 대표는 그동안 다른 야권 주자들과 달리 박 대통령에 대한 공세 수위를 조절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유력 후보인 자신까지 박 대통령을 거세게 몰아세울 경우 보수층은 물론 중도층으로부터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미국 대선 결과로 국내에서도 기득권 정치세력 척결이라는 여론이 힘을 얻으면서 발언 수위를 끌어올리는 모습이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도 공세의 고삐를 더욱 바짝 조였다. 안 전 대표는 10일 온라인으로 벌이던 박 대통령 퇴진 촉구를 위한 서명운동을 오프라인으로 확대했다. 이날 서울 홍익대학교 인근에서 당 관계자들과 함께 직접 서명운동까지 벌였다. 안 전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 퇴진! 당신은 더 이상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아닙니다’라는 제목의 유인물을 시민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안 전 대표는 애초 오프라인 서명운동이 본격적인 장외투쟁으로 비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 온라인으로만 서명운동을 전개했지만, 트럼프 대선 승리가 우리 정치상황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판단해 대응 수위를 높였다.
안 전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박 대통령이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과 이른 시간 내에 외교협상을 해야 하는데, 이미 트럼프 당선인은 박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을 빨리 수습하기 위해 조기에 박 대통령이 물러나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문 전 대표와 안 전 대표의 이번 전략 변화는 박 대통령에 대한 국민정서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할 경우 자칫 자신들마저 기득권 정치인으로 치부될 수 있다는 우려에 따른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참여정부 때 청와대 민정수석, 대통령 비서실장을 역임했고, 2012년 대선에도 출마했던 문 전 대표는 15여년간 언론에 일거수일투족이 노출됐다. 게다가 대선후보 여론조사에서 꾸준히 선두권을 달리면서 유권자들에게 대표적인 기성정치인 중 한명으로 각인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최순실사태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다간 기득권 정치인으로 도매급으로 묶일 소지가 크다.
2011년 정치권에 혜성처럼 등장한 안 전 대표도 당시 새정치를 앞세워 인기몰이를 했지만 이후 6년여간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새정치 이미지가 많이 퇴색된 상태다. 국민의당 관계자는 “안 전 대표는 온건한 합리적인 가치를 지향했던 점이 최근 최순실게이트 국면에서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다”면서 “‘대통령 하야 요구’라는 강수로 전환한 것은 이에 대한 전략적 고심의 결과”라고 말했다.
‘박대통령 탄핵’을 주장하며 이번 국면에서 가장 강성인 이재명 성남시장의 약진도 기존 야권 주자들이 선명성 경쟁에 뛰어든 배경으로 분석된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발표한 11월 1주차 대선주자 지지율에서 이 시장은 9.1%를 기록하며 문재인 전 대표(20.9%),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17.1%), 안철수 전 대표(10.7%)에 이은 4위로 올라섰다. 전주와 비교할 때 이 시장의 지지율은 무려 3.2%포인트 급등했다.
◆새누리당 주자들은 朴대통령과 거리두기
새누리당 주자들이 느끼는 트럼프 당선에 따른 위기감은 더욱 크다. 그동안 여권 유력 대권주자로 자리매김해 온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경우 이번 최순실게이트가 수습국면에 들어가야 재조명을 받을 공산이 크다. 새누리당에선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를 앞세운 트럼프의 당선으로 기존 한미 통상관계가 흔들릴 경우 외교력을 인정받는 반 총장에 대한 지지도가 상승할 수 있다는데 기대를 걸고 있는 모습이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도 이날 박 대통령에게 대국적 결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구체적인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새누리당 탈당, 2선 퇴진 선언 등을 요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 전 대표는 “대한민국이 현재 직면한 문제를 풀려면 대통령은 빠른 시일 내에 거국중립내각이 구성되도록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경필 경기지사는 페이스북에서 “변화를 읽고 새로운 리더십을 세워 대한민국을 바닥부터 리빌딩해야 한다”고 했고,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은 “박 대통령은 총리의 권한 행사 범위에 대해 보다 분명한 입장을 밝혀 국정중단 사태가 장기화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는 등, 일제히 박 대통령과 거리두기에 나선 모습이다.
◆트럼프 당선, 與野 정국 주도 도구로 활용나서
최순실게이트로 수세에 몰렸던 새누리당은 트럼프 당선을 국면전환을 위한 도구로 활용하고 나섰다. 전날 오후 트럼프의 당선이 확정되기도 전에 당·정 협의회와 최고위원회의를 긴급 소집한 데 이어 이날도 최고위원회의를 ‘트럼프 현안 보고’ 형식으로 진행했으며 관련 간담회와 세미나도 잇따라 개최했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트럼프 당선을 두고 “6·25 이후 최대 안보위기”라고 밝히기도 했다. 가뜩이나 불안한 국내 정국상황 속에서 선제적 대응을 통해 집권여당의 면모를 보여주겠다는 게 당측의 설명이나 최순실 사건에만 쏠려있던 시건을 분산시키려는 의도아니냐는 비판
반면 민주당은 트럼프 당선을 빈부 격차와 기득권 세력에 대한 심판으로 규정하고 대여공세의 고삐를 바짝 쥐었다. 우상호 민주당 원내대표는 “미국 국민은 빈부 격차와 기득권세력에 의한 닫힌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외친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수현 기자 / 정석환 기자 / 김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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