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집회서 '분노의 민심'…"朴 대통령 대국민화합 이뤄, 유일하게 이룬 공약" 조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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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노의 민심 / 사진=MBN |
'비선 실세' 의혹에 휩싸인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2차 주말 촛불집회에서는 다양한 계층과 연령대의 시민들이 한데 모여 "하야하라"를 외쳤습니다.
5일 오후 4시 광화문광장에서는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2차 범국민행동' 문화제가 열렸습니다.
◇ 손주와 할머니·연인과 노부부…'20만 시민' 손잡고 거리로
앞서 오전부터 열린 백남기 농민 영결식에서는 농민들과 진보 성향 단체 회원들이 참가했으나 오후들어 광화문 광장에는 가족이나 연인 단위의 일반 시민들이 대거 몰려들었습니다.
주최 측 추산 인원은 문화제가 시작할 때 5만명이었다가 한 시간도 안 돼 10만명으로 바뀌었습니다. 행진이 끝날 무렵에는 20만명이 모였다고 주최 측은 밝혔습니다. 경찰 추산 인원도 2만 1천명에서 시작해 4만 3천명까지 늘었습니다.
시민들은 피켓을 들거나 '박근혜는 물러나라'라고 쓰인 스티커를 옷이나 가방 등에 붙이고 구호를 외쳤습니다. 특히 가족 단위로 광화문광장을 찾은 시민들이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초등학생 아들 둘, 모친과 손잡고 거리로 나온 박모(44·여)씨는 "민주주의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오는 것인데 이를 몇몇이 휘두른 것을 애들도 다 안다"라면서 "아이들에게 국민이 목소리를 내고 주장할 수 있는 '광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경기 화성에서 딸 지민(8)양과 함께 왔다는 한진욱(43)씨는 "아이가 커가면서 알아서 판단하겠지만, 시민들이 모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언론에서 과격하다는 소리를 듣고 걱정했는데 마치 축제에 온 것처럼 안전하게 느껴진다"고 전했습니다.
지민양은 함께하지 못한 어머니에게 '백남기 할아버지 장례식 슬퍼'라는 메시지를 휴대전화로 보내고 있었습니다.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초등학생 남자아이를 목말 태우고 문화제를 보던 한 40대 남성은 "아이가 집회 현장을 보고 싶다고 해 나왔다"고 했습니다.
최근 수년간 대규모 집회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60∼70대 노인들도 눈에 적잖게 띄었습니다. 이중 상당수는 한때 박 대통령 지지자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경기 수원에서 부인과 함께 왔다는 서모(65)씨는 "내가 찍어준 그 한 표 돌려받으려고 나왔다"라면서 "박 대통령이 정치를 잘 하는 줄 알았는데 정말 분하고 못 참겠다. 내 평생 집회는 처음이다"라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부인 강모(60)씨는 "기가 막혀 잠이 안 온다. 오죽하면 우리가 서울까지 왔겠나. 집까지 왕복 4시간 걸린다"고 말했습니다.
광장 분수대 물 배출구에는 누군가가 청테이프를 붙여 '하야해여'라는 문구를 만들어 시민들을 웃게 했습니다.
광장의 경찰 차벽 앞 화단에는 '슈퍼맨' 복장을 한 미국인이 서 있어 눈길을 끌었습니다. 연세대 디자인예술학부에 다닌다는 로버트 피슬(29)씨는 "집회랑 별 연관은 없다. 하루 동안 슈퍼맨 돼서 사람들 도와주는 학교 프로젝트를 하려고 나왔다"고 설명했습니다.
◇ 보수단체와 참가자들 곳곳서 부딪쳐…경찰과는 큰 충돌 없어
광장 곳곳에서 박 대통령 지지자들과 집회 참가자들의 작은 충돌이 나기도 했습니다.
빨간 해병대 모자를 쓴 노인이 "일대일로 붙어"하고 외쳐 다른 노인들과 몸싸움 직전까지 갔습니다.
교보문고 앞에서는 보수단체 회원으로 보이는 중년 여성이 "허락 없이 내 사진을 찍었다"며 집회 참가 학생을 때렸다가 경찰에 연행됐습니다. 경찰이 이 여성을 에워싸자 다른 참가자들이 "왜 보호해주느냐"며 격앙된 목소리로 항의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님, 힘내세요! 사랑합니다^^'라고 쓴 분홍색 하트 모양 피켓을 든 중년 남성도 있었습니다.
시민들은 6시께부터 도심을 행진하며 '정권 퇴진', '대통령은 하야하라', '새누리당 해체하라' 등 구호를 외쳤습니다. 인도의 시민들은 행렬을 향해 손을 흔들고 박수를 치며 응원했습니다.
시민들과 함께 행진하던 야당 의원들에게 흉기를 든 60대 남성이 달려들었다가 시민들에게 제압당하는 소동이 있었을 뿐 전체적으로 집회와 행진은 평화롭게 이뤄졌습니다.
한 무리의 중년 남성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습니다. 길거리 음식을 오물거리며 산책하듯이 세종대로를 거니는 중년 부부도 있었습니다.
행진 코스 주변 카페는 잠시 쉬러 온 듯한 촛불 컵을 든 시민들로 하나같이 붐볐고 집회가 끝나갈 무렵에는 한 무리의 학생들이 이곳저곳을 다니며 쓰레기를 주웠습니다.
그러나 웃음 뒤에는 정권을 향한 분노가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진행을 맡은 조병옥 전농 사무총장이 "박근혜는 대국민 화합을 이뤄냈다. 유일하게 이룬 공약이다"라고 말하자 시민들이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발언자로 나선 김용옥 한신대 석좌교수가 "박근혜가 무릎꿇도록 행진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어떤 대책으로 여러분을 설득하려 해도 속으면 안 된다. 여러분은 지금부터 단군 이래 없었던 새로운 역사, 구원의 역사를 써나가야 한다"고 외쳤을 때 열기는 절정으로 향했습니다.
경찰은 집회에 대비해 율곡로 정부서울청사∼시민열린마당, 정부청사∼세종문화회관, 미국대사관∼시민열린마당, 세종문회화관∼미국대사관을 가로지르는 차벽을 2중으로 쳤다. 220개 중대 1만 7천600여명의 경력이 배치됐습니다.
경찰은 차벽을 밧줄로 묶어 넘어뜨리려는 시도가 있을 것에 대비해 차량 여러 대를 동아줄로 묶어 쉽게 넘어가
한 무리의 일본인 관광객들은 빈틈없는 '벽'을 만든 의경들과 경찰 버스를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져 "스고이(훌륭해)!"를 외쳤습니다.
한 학생은 "의경들은 잘못 없잖아요? 까라 해서 까는 거지. 박수 한 번 보냅시다"라고 해 주변 시민들에게서 박수를 이끌어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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