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국무총리 지명 강행에 이어 3일 대통령 비서실장과 청와대 정무수석에 각각 한광옥 전 김대중 대통령 비서실장, 허원제 전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을 임명하면서 야권 반발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야권에서 ‘박 대통령이 하루 빨리 퇴진하고 조기 대선을 치러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만큼 정국이 더욱 요동칠 전망이다.
‘조기 대선’ 포문은 더불어민주당(민주당) 대권 잠룡으로 꼽히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열었다.
박 시장은 3일 한 라디오프로그램에서 ‘조기대선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작은 혼란과 고통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면서도 “모든 새로운 탄생은 껍질을 벗는 아픔이 있지 않느냐”는 주장으로 조기 대선을 부정하지 않았다. 성사 여부에 대해 박 시장은 “국민의 요구와 대통령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달려있다”며 “거국 내각을 제대로 했다면 이런 요구가 줄어들었을 수도 있었다. 어제(2일) 보여준 행태를 보면 국민의 분노와 요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야권 대권 주자 중 ‘조기 대선’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박 시장이 사실상 처음이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최근 국정 공백 최소화를 위한 방안으로 박 대통령 자진 사퇴와 2017년 4월 조기대선을 제안한 바 있다. 이처럼 조기 대선 주장이 잇따르는 것은 그동안 야권이 촉구해온 ‘박 대통령 하야’ 주장이 통하지 않자 대응 수위를 더욱 높여야한다는 판단 때문으로 풀이된다. 박 대통령이 국무총리, 청와대 비서실장 등의 인사 강행을 통해 물러날 뜻이 없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밝힌만큼 ‘대통령을 교체해야 한다’는 주장을 통해 선명성을 더욱 강화한다는 계산이다.
이날 이상민 안민석(이상 4선) 홍익표 한정애(이상 재선) 소병훈 금태섭(이상 초선) 민주당 의원 6명 역시 공동 성명을 통해 박 대통령의 조속한 퇴진을 촉구했다. 이들은 성명을 통해 “박 대통령이 잔여 임기에 집착하고 퇴진하지 않으면 엄청난 국가적 재앙이 초래될 것”이라며 “박 대통령이 스스로 퇴진을 하면 헌법에 따라 60일 내 선거를 통해 임기 5년의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는 새 출발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는 이날 국회 본회의에서 새누리당을 향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보수냐 진보냐의 문제가 아니고 정의와 불의의 대결, 애국과 매국의 대결”이라며 “청와대가 아닌 국민과 함께 하는 여당이 되어달라”고 촉구했다. 새누리당 ‘비박(비박근혜)계’ 불만이 커지는 가운데 안 전 대표가 새누리당을 자극한 만큼 향후 새누리당 대응에 정치권 시선이 쏠릴 전망이다.
그동안 집회·시위 현장 합류에 신중한 태도를 보였던 야권 지도부 사이에서 장외투쟁을 염두에 두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우상호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번 사태 진상을 국민에게 보고드릴 수 있는 자리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우리는 밖에 나가 직접 보고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우 원내대표는 김병준 국무총리 후보자를 겨냥해 “스스로 수락 의사를 철회해달라”며 “야3당이 인준을 거부하고 부결하기로 합의했는데 굳이 명예를 더럽히고 총리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기자간담회를 열고 “저는 국회가 가장 강력한 투쟁장소라고 생각하는 의회주의자”라면서도 “그러나 대통령이 자꾸 유인하면 모른다”고 여지를 남겼다. 김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해서도 박 비대위원장은 “박 대통령이 ‘버리는 카드’로 생각해 야당 반응을 보려고 던진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평가절하했다.
하지만 야권이 요구하는 조기 대선이 실제로 이뤄지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조기 대선이 이뤄지려면 우선 박 대통령이 자리에서 물러나야 하는데 현재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스스로 퇴진할 가능성은 낮기 때문이다. 야권이 ‘탄핵’을 추진해 탄핵 소추가 이뤄진다고 해도 헌법재판소가 탄핵 결정을 내리기까지 최대 6개월이나 걸려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역풍’에 대한 우려 역시 야권이 탄핵 카드를 쉽게 꺼낼 수 없게
조기 대선에 대한 야권 잠룡들의 손익계산서가 다르다는 점 역시 변수가 될 전망이다. 민주당 원내 관계자는 “당내 대권주자 경선 시기를 놓고도 다양한 이야기가 오가는데 대선 일정을 앞당기게 되면 분명 반대하는 후보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석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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