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절을 특정하지 않는 것이 지혜로워"…'건국절 논란' 어떻게 정리해야 하나
↑ 사진=연합뉴스 |
1949년 10월1일 대한민국 정부는 삼일절·제헌절·광복절·개천절을 국경일로 삼는 '국경일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습니다. 요즘 논란인 '건국절'은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광복절은 1945년 8월15일 해방과 1948년 8월15일 정부수립을 동시에 기념하는 날이므로 '광복절 겸 건국절'로 바꿔야 한다는 게 건국절 제정론자들의 주장입니다.
건국일에 대한 당시 정부의 입장은 뚜렷하지 않습니다. 우선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이라고 한 제헌헌법을 들어 1919년 3월1일을 건국일로 봤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이승만 정부는 초창기 공식문서에 1919년을 원년으로 하는 임시정부의 대한민국 연호를 쓰다가 한 달여 만인 1948년 9월25일 '연호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공용 연호를 단군기원(단기)으로 바꿉니다.
새 연호와 개천절(조국 개창)→삼일절(독립선언)→광복절(독립·광복)→제헌절(국가 재건)로 이어지는 국경일 관련법의 역사 인식을 감안하면 개천절을 건국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여기까지만 해도 건국일에 관한 여러 가지 견해가 등장합니다. 이승만 정부는 왜 건국절을 법에 못박지 않아 오늘날 논란의 빌미를 제공했을까요.
지수걸 공주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스스로 '건국'을 표방하지 않은 당시 정부의 고민을 되새겨보자고 제안합니다. 그는 계간 '내일을 여는 역사' 가을호에 기고한 '건국절 논쟁의 지형 바꾸기'에서 "신생 대한민국 정부가 건국일을 특정하지 않고 4대 국경일을 제정한 이유는 대한민국이 온전한 민족국가가 아님을 스스로 인정했기 때문"이라며 "그때처럼 건국일을 특정하지 않는 것이 더 지혜로운 선택일지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1948년 5월31일 문을 연 제헌국회는 이북 주민을 배려해 의원석 100석을 비워뒀습니다. 헌법에서 한반도 전역을 대한민국 영토로 선포하고 민족통일을 대한민국의 '국시'로 거듭 강조한 점도 당시 정부가 분단국가 정부로서 한계를 인식했다는 증거입니다.
1948년 8월15일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 또는 '건국절'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민족이 분열되고 분단된 날' 또는 '민족 통일운동이 시작된 날'일 수도 있다고 지 교수는 지적했습니다. 이 때문에 당시 정부가 '건국'을 대놓고 표방하지 않고 연호나 국경일 등 관련 규정에서도 모호한 입장을 취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건국절 논란은 유엔이 '한반도 유일의 합법정부'로 승인한 대한민국 정부와 상하이 임시정부간 정통성 논쟁의 재연입니다. 어느 쪽이 정당성을 계승했느냐는 정통론의 틀로 근현대사를 바라보면 진영논리와 색깔론에 빠지기 십상입니다. 역사학계가 건국절을 좀처럼 연구대상으로 삼지 않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분단 이후 남북한 정권은 정통성 경쟁에 치중한 나머지 한반도 주민의 생존과 인간다운 삶에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게 학계의 냉정한 평가입니다. 지 교수는 이런 실패를 반복하지 않고 건국절 논쟁을 미래지향적으로 바꾸려면 정통론이나 색깔론 프레임부터 깨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지 교수는 건국절 논쟁에 대해 "'기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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