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원내대표이자 국회 운영위원장으로서 결코 피해가지 않겠다.”(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
“국회 특수활동비 개선대책반을 발족해 해결하겠다.”(이종걸 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작년 5월 홍준표 경남지사와 신계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특수활동비 문제가 불거졌을 때 여야 원내대표는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앞다퉈 국민들에게 약속했다. 하지만 지금 바뀐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서영교 더민주 의원의 가족채용 논란으로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논의가 다시 불붙었지만, 정치권은 특수활동비 문제만큼은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다.
각종 특권을 누리고 있는 국회의원이지만, 특수활동비는 국회의원 중에서도 핵심 요직에 앉아있는 이들만 받을 수 있는 돈이다. 국회의장과 부의장, 여야 원내대표와 상임위원장단 및 특별위원장이 대상이고 활동 지원비 명목으로 지급된다. 이 돈은 별도의 지급규정이 없으며 해마다 예산 편성 때 총액이 조정되는데 올해는 84억원이 책정돼 있다. 여당 원내대표는 월 5000만원 가량, 야당 원내대표 4000만원, 상임위원장 등은 평균 1000만원 안팎의 활동비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 돈의 대부분이 구체적인 사용처를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영수증을 첨부할 필요가 없고 공개 의무도 없어 ‘쌈짓돈’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국회에서 문제만 불거지면 특별위원회를 설치하는 것도 특위 위원장에게 나오는 특수활동비 때문이란 지적도 나온다.
작년 특수활동비 문제가 불거졌을 때 여야는 “국민의 공분을 이해한다”며 반드시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쟁점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야당이 “국가정보원과 검찰·법무부 등의 특수활동비 사용 내역도 일부를 제외하고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일부 여당 의원이 “북한의 요구와 같다”고 대응하면서 국회 특권 내려놓기 문제는 이념과 얽힌 정쟁으로 흘러가버렸다. 이로 인해 작년 8월 국회에서는 본회의가 무산되는 등 국회 일정이 파행을 겪었고 결국 특수활동비 공개는 없던 일이 됐다.
전문가들은 이런 작년 사례를 거울 삼아 특수활동비 문제를 특권 내려놓기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활동비의 필요성은 인정되는 만큼 투명하게 공개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경복 서강대 교수는 “유권자들에게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리려면 정보의 투명성이 가장 중요하다”며 “행정부와 사법부에도 업무활동비가 있긴 하지만 국회는 입법기관이기 때문에 먼저 실천하고 이를 행정부와 사법부까지 확대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의원들의 세비·수당 사용내역이 공개돼 정권교체까지 이뤄진 사례가 있다.
영국의 경우 지난 2009년 하원 의원들의 지원 비용 남용 사례가 공개됐는데 250파운드 이하의 비용 청구에는 영수증 발급이 필요없다는 규정을 악용해 기저귀, 유모차, 파이프 수리 등의 비용을 신청한 의원들이 다수 발견됐다. 집을 7채 소유하고 있으면서 주택 융자금 지불을 위해 수년 동안 10만 파운드를 신청한 의원도 있었다고 한다.
분노한 여론에 법무부장관과 내무부장관 등 6명의 장관이 사임했다. 결국 노동당 100명, 보수당 35명, 자유당 7명의 현역의원이 2010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고 정권은 노동당에서 보수당으로 넘어갔다.
이후 영국은 ‘독립의회윤리기관(IPSA)’이란 기관을 만들어 모든 의원의 비용 신청 하나 하나를 웹사이트에 일일이 공개하고 있고 의회도 인터넷을 통해 모든 의원들에게 지급된 수당 내역을 공개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국회는 규정이 없단 이유로 정보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매일경제신문은 지난달 21일 19대 국회의 국회의장과 부의장, 18개 상임위원회 위원장 및 각종 특별위원회 위원장들에게 지급된 특수활동비 총액과 사용내역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지만 국회사무처는 6일 만에 공개를 거부했다.
국회는 정보공개 답변서에서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9조 1항 제2호 및 5호를 언급하며 “특수활동비는 기밀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및 사건수사, 기타 이에 준하는 국정 수행활동에 소요되는 경비로서 세부 지출내역이 공개될 경우 국회 본연의 의정활동이 위축돼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거나 업무의 공정한 수행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한다”며 거부 사유를 밝혔다.
대법원은 지난 2004년 ‘국회 특수활동비는 비공개 대상 정보가 아니다’라고 판결을 내린 바 있음에도 정보공개를 거부하는 생떼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매일경제는 곧바로 이의신청을 제기했지만 국회는 “지난해 국회사무처 정보공개 심의회의 심의를 거친 사항으로 이미 기각된 전례가 있고 이와 유사한 사안이 행정소송에 계류중”이라고 재차 거부했다. 현재 참여연대가 특수활동비 내역 공개를
이와 함께 회의 참석에 따라 수당을 받는 시스템도 고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회기 중 국회의원에게는 하루 3만1360원씩 수당이 나오는데 회의 참석이 본분인 의원들에게 별도 수당을 주는 것은 본말이 전도됐다는 것이다.
[우제윤 기자 / 정석환 기자 / 안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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