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대기업은 우리 경제 생태계를 파괴하는 외래 어종 ‘배스’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은 새로 선출된 당 대표나 원내대표가 국회에서 ‘공식 데뷔’하는 무대다.
원내대표의 생각이 곧 당론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1년 임기의 원내 리더로서 어떤 정책에 방점을 둘지 짐작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당·청 관계에 대한 전망도 가능하게 한다.
20일 첫 교섭단체 대표연설에 나선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 원고에는 박근혜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을 되도록 피한 흔적이 많았다. 하지만 재벌 오너나 대기업 노조와 관련해선 예상보다 비판 수위가 높았다.
정 원내대표는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타계한 총수의 부인들이 관리했다”며 “전문 경영인이 맡지 못할 무슨 이유가 있냐”고 했다. 또 “구십을 넘긴 아버지와 두 아들이 경영권을 놓고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싸우고 있다”면서 “국민 모두가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고 롯데 일가를 질책했다.
그는 “머리 좋고 성실한 엘리트들이 20~30년 걸려 올라가는 임원 자리를 재벌가의 30대 자녀들이 차지하는 것은 정의롭지 않은 일”이라며 “정의롭지 않은 국가는 바로 설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국민들이 경제민주화가 미흡하다고 느끼는 것은 일부 재벌들의 비정상적 행태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정 원내대표는 또 “새누리당은 지금까지 나눠 먹을 파이를 키우는 일에만 집중해 왔다. ‘파이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 하는 분배의 문제는 그만큼 정책 후순위로 밀렸다”며 “제대로 성장하기 위해서라도 이제 분배의 문제를 고민해야만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지난 해 4월 유승민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교섭단체 연설에서 “성장과 복지의 균형 발전을 추구하는 정당이 되겠다”며 “새누리당은 재벌 대기업의 편이 아니라 서민과 중산층 편에 서겠다”고 주장해 화제가 됐다. 그는 “재벌도 비정규직, 청년실업 해결에 자발적으로 동참하라”고 압박하기도 했다.
정 원내대표의 이날 연설은 유 전 원내대표에 비해 강도는 다소 완화됐지만 대기업과 분배 문제에 대한 인식에서 유사성을 보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현 정부 정책에 대한 발언은 오히려 원유철 전 원내대표 쪽에 가까웠다. 그는 “노동개혁 4법을 저지하는 귀족노조와 정치권이 어떻게 사회적 대타협과 노동인권을 이야기할 수 있냐”며 노동 관련법의 신속한 국회 통과를 주장했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대변인 논평을 통해 “진단은 있으나 원인도, 해법도, 대안도 없는 실망스러운 연설”이라며 “박근혜 정부의 책임은 없는 것인지 진솔한 고백이 선행됐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전임 원내대표들과 스스로를 차별화하려는 포인트도 있었다. 정 원내대표는 이날 분배를 말하면서도 복지 확대와 증세가 아니
[신헌철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