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이 ‘갈라파고스 섬’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다. 총선 패배 책임을 놓고 극심한 공황 상태를 겪은 뒤 50여 일만에 가까스로 혁신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가동했지만 탈당파 의원들의 복당 문제로 또 다시 격랑에 휘말렸다. 당장 새누리당은 김희옥 위원장의 칩거로 지도부 와해 위기에 내몰렸다.
이를 두고 새누리당이 국민들과 동떨어져 자기 영역에 고립되는 ‘갈라파고스 증후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여론의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하루가 급한 민생 현안이 산적해 있는데 여당이 국정 추동력을 스스로 상실하는 정치적 소재만 양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애초 17일 개최됐어야 할 고위 당·정·청 회동은 유승민·윤상현 의원 등의 일괄 복당 이슈가 터지면서 취소되고 말았다.
조선·해운 등 산업 구조조정, 영남권 신공항을 둘러싼 국론 분열 사태, 경기 회복을 위한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 등 정부와 여당이 머리를 맞대야 할 사안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매일경제와 통화에서 “국민들은 솔직히 관심이 없다”며 “복당 문제를 전당대회 전에 하느냐, 후에 하느냐는 새누리당내 권력 문제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친박 진영에선 정진석 원내대표가 사실상 주도하는 혁신비대위가 당내 계파갈등은 물론 당·청 관계를 악화시킬 게 뻔한 ‘뇌관’을 안이하게 터뜨렸다고 비난하고 나섰다. 복당 결정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청와대는 여당 지도부를 향해 배신감을 토로하고, 친박계와 비박계는 서로를 향해 다시 삿대질을 시작했다.
청와대 측은 정 원내대표 등 새누리당 지도부와의 신뢰가 깨져버렸다는 시각을 감추지 않았다. 청와대 입장에선 여의도에 우군이 없는 ‘사면초가’ 상황이 될 수 있다는 염려가 커진 것이다.
김용현 부산대 교수는 “좀 더 천천히 내부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며 결정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계속 미룬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지만 과정에서 아쉬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여당의 지리멸렬 속에 여소야대로 짜여진 20대 국회의 주도권은 사실상 야당에 넘어간 분위기다. 야권은 법인세 인상 등 세제 개편안부터 각종 복지확대 법안까지 줄줄이 쏟아내고 있다. 여기에 야당발(發) 개헌론까지 등장해 정국을 흔들고 있다. 야권 일각에선 국회 내에 개헌 추진체를 만들어 내년 대선까지 이슈를 주도하겠다는 생각이 확고해 보인다.
야당은 다시 내분에 휘말린 집권 여당을 조롱하고 나섰다.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이날 “민생경제가 엉망인데 당·정·청이 내분으로 치닫는 건 고스란히 국민 피해가 가중되는 것”이라고 힐난했다. 이어 “집권여당으로서 책임있는 조치로 당정청 회의를 열어 민생경제를 보살피고 구조조정 등 모든 업무에 박차를 가해주길 바란다는 것”이라며 “정부 여당과 청와대에 맹성(猛省)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도 “경제위기가 닥쳐오는데 정부는 해법을 내놓지 못한 채 무능한 모습을 보이고, 집권당은 내부 싸움에 세월만 보내고 있다”며 “컨트롤타워 기능이 상실되고 있다는 걱정이 든다”고 비난했다
[신헌철 기자 / 김연주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