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를 배치하는 문제를 두고 한국과 미국에서 엇갈린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배치 논의가 막바지에 이른 것으로 평가되지만 공식 발표 시점을 두고 한·미 간에 의견 조율이 쉽지 않은 것으로 관측된다. 일각에서는 한국 정부가 대북 제재의 키를 잡고 있는 중국을 의식하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2일(현지시간) 미국의 군사전문 매체 ‘브레이킹 디펜스’에 따르면 애슈턴 카터 미국 국방장관은 이날 2016 아시아 안보회의 참석을 위해 싱가포르로 향하는 전용기 안에서 기자들과 만나 오는 4일 한민구 한국 국방부 장관과 사드 배치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카터 장관은 “사드 배치문제는 많이 논의할 필요가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며 “이미 관련 계획이 진전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드 배치 문제가 거의 결론에 도달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익명을 요구한 미국 국방부 관계자 역시 “사드 배치를 위해서는 극복해야 할 기술적 문제들이 있지만 조만간 공개적인 발표가 있을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그러나 한국 국방부는 3일 아시아안보회의 계기로 열릴 한미 국방장관회담에서 사드 문제를 논의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이날 ‘미국, 사드배치 곧 발표 임박 보도와 관련한 입장’을 통해 “현재 사드 배치 관련 협의는 진행 중에 있으며 협의가 끝나면 그 결과를 알려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는 한미 공동실무단이 마련한 건의안을 양국 정부가 승인하는 과정을 거쳐 추진될 것”이라며 “이에 대해서는 한미가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사드 배치 문제에 대한 발표가 곧 임박한 단계는 아니다”면서 “논의할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리 국방부가 미측의 이런 주장을 즉각 부인하고 나섬에 따라 양국이 사드 배치 문제를 놓고 ‘엇박자’를 내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방부가 미국 고위 국방당국자의 발언을 즉각적으로 반박한 것 자체도 이례적인 일이다. 정부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응해 사드의 주한미군 배치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면서도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의 강력한 대북제재가 계속 유지되어야만 북한의 변화를 촉진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이 반대하는 사드 배치 문제에 당분간 신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앞으로 한·미가 주요한 군사 사안을 협의하고 결정짓는 회의는 올 10월 예정된 안보협의회의(SCM)가 있다. 양국이 사드 배치에 합의했다고 공개하는 시점은 올해 SCM을 기준으로 정해질 것으로 관측된다.
이런 가운데 한국과 미국, 일본의 국방장관이 4일 연쇄 회담을 통해 북한의 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공조 방안에 대해 논의한다. 작년 아시아안보회의 이후 1년 만에 열리는 한미일 국방장관 회담의 최우선 의제는 역시 북핵 문제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상황 공유 및 평가, 그리고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기 위한 협력 강화 방안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회담에서 3국은 2014년 말 대북 정보공유를 위해 체결한 정보공유 약정에 따른 이행 상황을 평가하는 한편 이달 말 사상 처음으로 진행되는 북 미사일 탐지·추적 경보훈련의 준비 상황도 점검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 장관은 중국 대표로 참석하는 쑨젠궈(孫建國) 중국 인민해방군 부총참모장과도 회담한다. 이 자리에서는 중국 측이 사드의 주한미군 배치에 대한 반대 입장을 재확인하고 남중국해 문제에 대한 우리 측 입장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워싱턴 = 이진명 특파원 / 서울 = 안두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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