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화법 물러선 듯 아닌 듯…정의화 의장 중재안 제시

1월 임시국회가 2주째 개점휴업 상태를 이어가는 가운데 21일 정의화 국회의장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선진화법 개정 방향에 대한 자체 구상을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정 의장은 “국회 선진화법에서 위헌 소지가 가장 큰 부분은 의회 민주주의의 기본인 과반수 룰을 무너트리고 60%가 찬성해야 법안이 통과되도록 한 점이다”며 “신속처리제도가 실제로 제도로 작동할 수 있도록 60%를 과반수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사문화된 ‘안건 신속처리제도’의 기준을 낮춰 주요 법안 처리에 숨통을 틔우는자는 것으로 그간 직권상정을 거부해온 정 의장이 기존 입장에서 한 발 비켜선 모양새다. 그러나 새누리당의 국회선진화법 개정안과는 핵심이 다르다. 새누리당은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요건을 완화하는 데 포인트를 맞추고 있는 반면 정 의장은 신속처리제도 수정에 방점을 찍었다.
아울러 새누리당의 과반 의석을 감안할 때 야당은 신속처리제도의 기준을 과반수로 낮추는 것에 반대할 공산이 크다. 새누리당 역시 신속처리제도 기준이 완화되더라도 법안 처리에 180일 이상이 소요되는 점을 감안할 때 정 의장 구상이 달가울 리 없다. 19대 국회에선 전혀 적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야는 정 의장의 국회법 수정 제안을 마냥 무시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국회법 95조 1항에 따르면 이미 본회의에 제출된 법안과 직접 관련성이 있는 수정안은 30인의 서명을 받아 본회의에 제출할 수 있다. 따라서 정 의장의 수정안은 30인 이상 서명을 받으면 해당 상임위인 국회 운영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바로 본회의로 올라갈 수도 있다.
이번 정 의장의 구상은 선진화법의 문제점을 임시방편으로 해결하지 말고 20대 국회부터 적용하더라도 원천적으로 개선하자는 의견인 셈이지만 청와대와 새누리당과는 궤를 달리한다.
여당은 앞서 선진화법 개정안과 주요 쟁점 법안을 직권상정하지 않겠다는 정 의장을 향해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21일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에서는 서청원 최고위원은 “과연 정 의장은 어디에서 오신 분인가라는 자괴감을 느낀다”며 “우리가 의장보다 경험이 없는 것이 아니다”고 비판했다.
원유철 원내대표 역시 정 의장을 향해 “의장은 여야 눈치를 보지 말고 오로지 국민의 뜻을 존중해서 국민 눈높이에 맞춘 결정을 내려주길 바란다”고 성토했다.
이런 여당 지도부의 비판에 대해 이날 정 의장은 “대한민국 헌정질서를 지키는 국회의장으로서 해야할 일이 있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고 선을 그었다. 이날 국회법 개정안의 본회의 상정 여부를 결정할 정 의장이 새로운 개정안을 제시함에 따라 국회선진화법 논란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유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