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쟁만 일삼는 한국 정치에서 ‘국회의장 직권상정’은 여야를 막론하고 정부와 집권당이 꺼내들 수 있는 마지막 카드였다.
국회의장 직권상정이 도입된 것은 1973년 시작된 제9대 국회다. 도입되기는 했지만 제11대 국회까지 단 한 번도 사용되지 않은 국회의장 직권상정은 1985년 시작된 제12대 국회에서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1985년 12월 이재영 당시 국회의장은 방송법 등11개 법안을 직권상정을 통해 본회의에서 모두 처리했다. 문민정부 시절인 1996년 김수한 당시 국회의장은 여야가 극한 대치를 이어가고 노동계가 거세게 반발하는 가운데 노동법을 직권상정을 통해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지난 14일 별세한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2000년 동티모르 파병 연장 동의안을 직권상정을 통해 처리했고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에는 종합부동산세법 등 한나리당(현 새누리당)이 거세게 반발했던 법안 20건이 5차례 직권상정을 통해 처리됐다.
역대 국회의장 직권상정 중 국민들 기억에 가장 강렬하게 남은 것은 2011년 한·미 FTA 국회 비준안, 2009년 미디어법이다.
2011년 박희태 당시 국회의장은 한·미 FTA 국회 비준안 직권상정을 결정했다. 그러나 한·미 FTA 국회 비준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됐을 때 박희태 국회의장 대신 당시 국회부의장을 지냈던 정의화 국회의장이 의사봉을 잡았고, 여야 의원들의 치열한 몸싸움 속에서 정 의장은 김선동 전 통합진보당 의원이 뿌린 최루가스를 얼굴에 정통으로 맞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2009년 미디어법이 통과될 때에는 격렬하게 반대하던 야당이 쇠사슬로 국회 본회의장을 봉쇄하면서 국제적 망신을 사기도 했다.
국회의장 직권상정은 2012년 ‘국회 선진화법’이 통과되면서 양상이 바뀌었다. 국회선진화법 이전에는 국회의장이 지정한 심사기간까지 상임위원회가 심사를 마치지 못하면 국회의장이 본회의에 부의할 수 있었는데, 국회선진화법으로 ▲천재지변 ▲국가 비상사태 ▲교섭단체 대표 간 합의가 이뤄졌을 경우에만 직권상정을 할 수 있게 됐다.
국회선진화법 이후 처음으로 직권상정 결정을 내린 주인공이 정 의장이다.
지난 ‘4월 임시국회’ 마지막 날인 5월 6일 정 의장은 박상옥 당시 대법관 후보자 임명안을 본회의에 직권상정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당시 수사검사 경력을 문제삼아 격렬하게 반발했지만 신영철 전 대법관 퇴임 후 78일간 계속됐던 대법관 장기 공백 사태를 ‘사법부 비상사태’로 여긴 정 의장 판단에 따라 직권상정이 이뤄졌다.
지난 2일 본회의에서 쟁점 법안이 통과됐을 때에도 정 의장은 직권상정을 강행했다. ‘숙려 기간’을 이유로 법사위원회가 반발하자 정 의장
‘12월 임시국회’가 열리는 가운데 정 의장은 선거구 획정 문제에 대해서는 직권상정을 강행할 수 있지만 쟁점 법안 처리만큼은 ‘비상 사태’가 아니라고 못박았다.
[정석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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