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 많은 이들로부터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아련한 가족애와 첫사랑의 두근거림이 사람들을 과거로 빠져들게 하고 있습니다.
최근 야권 상황도 자꾸 사람들을 과거를 떠올리게 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문재인-안철수 두 사람의 대립과 분열을 보며 21012년 대선을 떠올리기도 하고, 1987년 DJ 탈당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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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빅5 |
하지만, 저는 2002년 대선이 떠오릅니다.
노무현 후보는 광주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됐지만, 호남 세력은 그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해 10월 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이 15%대로 주저앉자 당내 반노·비노 의원들은 정몽준 후보와 단일화를 요구했습니다.
노무현 후보는 재벌인 정몽준 후보와 단일화를 죽기보다 싫어했습니다.
정치 색깔도 다르고, 노선도 분명히 다른데 그저 대선에 이기기 위해 야합과 같은 단일화를 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대선 승리에 절박했던 사람들은 노무현 후보를 압박했고, 결국 노 후보는 후보단일화를 이뤄냈습니다.
하지만, 선거 하루 전 날 정몽준 후보는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고, 노무현 후보는 한밤중 정몽준 후보 집을 찾아갔다가 문전박대를 당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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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빅5 |
▶ 인터뷰 : 정몽준 / 노무현 후보와 단일화 선언(2002년)
- "국민통합21의 대통령 후보로서 민주당의 노무현 후보와 후보 단일화하기로 합의를 하고,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여론조사를 해서, 그 여론조사 결과에 흔쾌히 승복한 것에 대해서 저희는 아직도 잘했다고 생각하고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 인터뷰 : 정대철 / 노무현 측_정몽준 후보 집 앞
- "지금 정 대표 집 문 앞에 와 있는데 문도 안 열어주네, 문도 안 열어… 이게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있어야지… 이게 기분 상해서 그럴 리가 있어요?"
▶ 인터뷰 : 김행 / 정몽준 측_정몽준 후보 집 앞
- "정말 안타깝고 국민 여러분께 부끄럽게 생각해요. 정말 안타깝고요. 저희는 처음부터 끝까지 약속을 지키려고 고비 고비마다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정몽준 후보 쪽이 막판 지지를 철회한 것은 노무현 후보 쪽에 대한 서운함 때문이었습니다.
공동 유세를 나갔는데, 노무현 후보가 차기 잠룡으로 정동영, 추미애를 언급하면서 정몽준 후보를 자극했던 겁니다.
그리고, 노무현 후보 진영이 정몽준 사람들을 홀대하고 서운케 했다는 겁니다.
안철수 의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안철수 의원이 대외적으로 탈당의 명분으로 삼은 것은 '혁신 전대'였습니다.
문 대표와 안 의원의 말입니다.
▶ 안철수(9월)
- "혁신안에 대해서는 통과되든 안 되든 저는 관심이 없습니다."
▶문재인(9월, 혁신안 중앙위 통과)
- "오늘 혁신안을 통과시키지 못한다면, 우리는 한걸음도 앞으로 나갈 수 없을 것입니다."
▶문재인(10월, 새정치 재보선 패배)
- "우리당은 많이 부족했습니다.희망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안철수(10월, 새정치 재보선 패배)
- "국민의 신뢰를 받아야 한다는 필요성이 다시 한 번 입증된 선거라고 봅니다."
▶문재인(11월18일, 문안박 연대 제안)
- "(안철수·박원순)두 분과 당 대표의 권한을 함께 공유하고 그럴 용의가 있습니다."
▶안철수(11월30일, 혁신전당대회 제안)
- "제가 생각할 때는 혁신 전당대회가 가장 근본적으로 변화를 이끌수 있는 방법이라고 봅니다."
▶문재인(3일, 기자회견)
- "전당대회는 해법이 안 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안철수(6일, 기자회견)
- "저와 함께 우리 당을 바꿔갈 생각이 없다면 분명하게 말씀해주십시오. 이제 더 이상 어떤 제안도, 요구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문재인(12일)
- "우리 당 차원에서 (안 의원 탈당은)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죠. 서로 힘을 모으고 통합하고 이런 길로 가야 하는데. 탈당 이야기가 나오는 상황이 저로서는 안타깝고 송구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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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빅5 |
▶안철수(어제)
- "새정치연합을 나가겠습니다."
정말 이게 탈당의 이유일까요?
어떤 이들은 탈당의 진짜 이유는 문재인 대표 측에 대한서운함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지난 대선때 안 의원이 대선 후보를 양보했는데도, 문 대표 측이 고마워하기는커녕 걸핏하면 새누리당으로 비유했다는 겁니다.
아군이 아니라 적군으로 치부하며 깎아내렸다는 겁니다.
이게 진짜 이유가 아닐까요?
안철수 의원이 말하는 혁신과 개혁, 새정치는 아직도 모호합니다.
혁신이 가장 중요하다 했지만, 문 대표가 혁신안을 받아들이겠다고 하자 이제는 늦었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문 대표가 혁신을 받아들이는 시기가 아니라, 혁신을 실천할 의지가 있느냐 하는 겁니다.
안 의원은 혁신보다는 자신의 자존심이 더 앞섰는지 모르겠습니다.
자신이 제안했을 때 문 대표가 받았어야지만, 비로소 진정한 혁신이지, 지금 와서 뒤늦게 받는 것은 혁신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표창원 전 교수가 얘기하는 '감정의 문제'입니다.
2002년 정몽준 후보가 그랬듯이, 지금 안 의원은 어쩌면 감정의 문제로 이렇게 탈당했는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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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빅5 |
안 의원은 오늘 탈당계를 팩스로 보냈고, 자신을 애플에서 쫓겨난 스티브 잡스에 비유했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공동창업주인 자신을 문 대표가 쫓아냈다는 겁니다.
그러나 진중권 교수의 말을 빌리면 안 의원은 화투판에서 그저 광을 판 사람에 불과합니다.
광을 팔고 광 값을 받고 나서 다음 판을 기다리면 되는데, 광 값을 넘어 판돈을 아예 먹으려고 하니 판을 뒤집은 거라는 겁니다.
자존심 때문에 말입니다.
안
당장 그를 따라 탈당하는 의원들 숫자가 말해줄 겁니다.
상황은 안 의원에게 썩 우호적이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