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차 이산가족 상봉 1진 행사에 참여한 남과 북의 이산가족들은 20일 오후 3시(이하 평양시간) 금강산 호텔에서 열린 첫 단체상봉에서 다시 만날 것을 예측 못했던 배우자와 아들·딸, 동생과 조카들을 재회했다. 이산가족들은 서로 뺨을 부비고 얼굴을 쓰다듬고 손을 잡으며 지금 이 순간이 꿈이 아닌 생시임을 확인하면서 울고 웃었다. 지난 해 2월 제19차 이산가족 상봉 이후 1년 8개월만에 다시 남과 북의 이산가족들을 맞이한 가을 금강산 역시 상봉단이 가져온 소설같은 사연 속에서 더욱 붉게 물들어갔다.
이날 금강산호텔 2층에 마련된 상봉장에는 우리 측 상봉단 389명이 가족별로 96개의 테이블에 앉아서 노심초사 설레는 마음으로 북녘의 가족들을 기다렸다. 이윽고 양복과 한복을 차려입은 북측 가족들이 줄지어 상봉장에 들어서서 각자 정해진 테이블을 찾아가자 상봉장은 한순간에 거대한 눈물바다로 변했다. 처음에는 눈을 꿈뻑이며 서로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남과 북의 가족들은 이내 서로를 알아보고 격하게 부둥켜 안았다. 이 장면을 지켜보는 남·북측 지원 요원들과 금강산호텔 직원들도 격한 감정을 누르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도 보였다.
우리측 이순규 씨(85)는 6·25전쟁이 일어났던 1950년 6월경 ‘동네사람이 훈련 한 열흘만 받으면 된다고 하더라’며 집을 나선 뒤 돌아오지 않았던 북녘의 남편 오인세 씨(83)를 만나 ‘쇠심줄보다 질긴’ 부부의 인연을 보여줬다. 지난 1949년에 결혼해 충청북도 청원군 가덕리에 신접살림을 차린 이들 부부의 결혼생활은 채 7개월이 지나지 않아 전쟁의 참화 앞에서 무참하게 찢어졌다. 짧은 신혼생활 도중 잉태됐던 아들 오장균 씨(65)는 앞서 “이번에 난생 처음으로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며 “어머니는 ‘아버지 없는 자식’이라고 손가락질을 안 당하게 하려고 나에게 엄하셨던 것 같다”며 소감을 밝혔다. 단 일곱 달을 같이 살다가 65년만에 다시 만난 ‘팔순의 신혼부부’는 헤어진 세월만큼 긴 한숨과 굵은 눈물을 보였다.
이번 1진 북측 상봉단 가운데 최고령자인 북측 채훈식 씨(88)는 이날 금강산에서 동갑내기 부인인 이옥연 씨(88)를 역시 65년 만에 감격적으로 만났다. 남측의 부인 이 씨는 1950년 8월 장정들이 징집돼 전선으로 나가던 시기에 ‘잠깐 안동 훈련소에 다녀오겠다’고 나갔던 남편을 기다리며 65년동안 재혼도 않고 혹여 남편이 찾아올까 이사도 가지 않고 65년 전 터를 잡은 경북 문경에서 ‘망부석’처럼 기다리다 드디어 남편을 만났다. 부인 이 씨는 고령으로 귀가 잘 들리지 않아 65년만에 귀에 담아보는 남편의 목소리를 놓칠새라 연신 귀를 남편에게 가져갔다.
이들 부부의 아들인 채희양 씨는 “아버님 생사가 확인되기 전부터도 아버님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며 “오히려 언제 오실 지 모르니까 저는 (제사지낼 때) 제주가 되어도 아버님을 대신해 술을 따랐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떠났을때 한창 걸음마를 뗐을 예숫 다섯 살 아들은 북녘의 아버지에게 드리기 위해 직접 농사지은 올해 햅쌀을 준비했다.
이산가족들은 첫 단체상봉 후 휴식을 취한 뒤 우리 측이 주최한 환영 만찬에서는 첫 만남때보다는 훨씬 편한 얼굴로 서로에게 술잔을 권하면서 진한 가족애를 나눴다. 한쪽에서는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어 서로의 입에 넣어주는 모습도 보였다. 몇몇 테이블에서는 감격에 겨워 서로 손을 잡고 남과 북이 모두 아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목놓아 부르기도 했다. 한 테이블에서 시작된 노래는 테이블을 건너 수십 명이 함께 부르는 합창으로 커지며 가을 금강산의 밤하늘 속으로 퍼져나갔다. 한쪽에서는 자식이 부모에게 60년 넘게 드리지 못했던 큰 절을 울리다가 바닥에 엎드려 서럽게
[금강산 공동취재단 / 서울 = 김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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