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서민의 관심은 온통 메르스와 가뭄입니다.
한달 넘게 이어진 메르스 사태로 인해 식당과 자영업자들은 죽을 맛입니다.
마을 전체가 격리됐다가 해제된 순창 지역의 한 식당은 매출이 90%나 줄었다고 합니다.
관광객으로 북적여야 할 부산 해운대와 주요 관광지는 썰렁하기 그지없습니다.
경기도와 강원도 지역은 계속되는 가뭄으로 농민의 속이 타들어가고 있습니다.
주말에 비가 왔지만, 가뭄을 해갈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이럴 때 정치인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요?
서민과 농민의 마음을 달래고, 조금으라도 돕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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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1일 강화도를 찾아 논에 물을 뿌렸습니다.
여기까지는 좋았지만, 물뿌리는 자세를 놓고 말이 많았습니다.
소방호스로 물을 뿌리면 벼가 쓰러질 수 있기 때문에 호수를 하늘로 향하거나, 논 두렁으로 줘야 합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마치 화재 진압이라도 하듯 벼를 향해 직선으로 호스를 겨눴습니다.
이를 바라보는 농민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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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도와주러 온 것은 고맙지만, 벼가 상하지는 않았을까 걱정했을까요?
야당 의원들은 이를 꼬집었습니다.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아무리 기억을 더듬었지만 논 물대기는 있지만 논에 소방호스로 물 쏘기는 첨 듣는다고 비판했습니다.
박 의원은 "더욱 가관은 대통령께서 떠나자 소방차도 다 철수했다니 이건 단속 대상인 괴담이겠죠”라고 비꼬았습니다.
추미애 의원도 한마디 했습니다.
▶ 인터뷰 : 추미애 /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
- "가뭄 현장 방문한 사진을 보고도 가뭄에 대한 근본 대책은 없고 설정만 보이고 있다. 막 모내기를 한 어린 벼 포기에 소방호스를 이용한 고압살수를 하는, 그런 논에 물대기는 본 적이 없다. 그야말로 설정도 너무 지나치다."
대통령의 행보와 뜻을 전하려는 인위적 설정은 필요합니다.
또 긍정적 효과를 가져옵니다.
하지만 지나친 설정은 되려 역효과를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가뭄에 대한 대통령의 근심을 전하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그 이후는 미처 생각치 못한 겁니다.
그 자리에서 있던 농민이 대통령에게 그렇게 뿌리는 게 아니라고 한 마디 말만 해줬어도 대통령은 바르게 호스를 잡았을 겁니다.
대통령 주변에는 소방관만 보였습니다.
그렇다고 이런 대통령의 실수를 가지고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또한 그다지 동조를 받기 어렵습니다.
뜻과 취지를 이해할 일이지, 약간의 실수를 마치 본말이 전도된 것처럼 부각시킬 필요는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야당은 더 더욱 그렇습니다.
야당은 지금 메르스도 아니고, 가뭄도 아닌 일로 집안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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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사무총장 인선 때문입니다.
문재인 대표는 최재성 의원을 신임 사무총장으로 임명하려 했지만, 이종걸 원내대표가 반대하고 있습니다.
최재성 의원이 범친노계로 분류되기 때문입니다.
지난 21일밤 문 대표와 이 원내대표는 충돌했습니다.
▶ 인터뷰 : 문재인 / 새정치민주연합 대표(21일)
- "이렇게 되면 지도부가 그냥 무기력에 빠질 걸로 보인다. 당 지도부가 허수아비가 되는…걱정하는 부분도 알겠지만 지금 와서 되돌리는 것도 어렵다고 생각한다"
▶ 인터뷰 : 이종걸 /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 "지금 당을 깨자는 거냐. 당을 깨는 결정에 동의 못 한다. (사무총장 인선) 결론을 냈다면 나는 나가겠다. 이 당이 누구 당이냐. 당이 깨지는 수순으로 가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내일 새 사무총장을 선임하기로 했습니다.
문 대표에게 맡기기로 한 것입니다.
문 대표는 예정대로 최재성 의원을 사무총장으로 임명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금와서 최재성 카드를 접는다면 대표로서 위신이 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최재성 의원을 사무총장으로 임명하는 순간 새정치민주연합은 다시 격한 계파 싸움 속으로 들어갈지도 모릅니다.
비노계가 다시 들고 일어설 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런 싸움이 누구를 위한 것일까요?
지금 여권은 메르스와 가뭄, 게다가 경제위기까지 겹쳐 그야말로 지뢰밭을 거닐고 있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가만히만 있어도 지지율이 높아질 판입니다.
그런데 정작 당 지지율은 새누리당이 새정치민주연합보다 높습니다.
국민 눈에는 여당이 아무리 죽을 쒀도 새정치민주연합은
대통령이 소방호수를 잘못 겨눴다고 비판을 받아도, 집안 일로 싸움을 하는 야당보다는 그래도 낫다는 의견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요?
민심을 읽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
영상편집 : 신민희 PD, 이가영 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