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대목은 극장가의 주 관객층인 20~30대가 흥행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40대가 흥행의 핵심에 있다는 겁니다.
예매율도 20~30대보다 높습니다.
한마디로 40대가 흥행을 이끌고, 2030대가 뒤를 받쳐주기 때문에 이런 흥행돌풍이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바쁜 40대, 야성향이 강한 40대가 '명량'에 빠져드는 이유는 뭘까요?
많은 영화평론가들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014년 대한민국이 당시 조선과 같이 위기에 처해있다는 점, 그러나 사심없이 백성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쳐 헌신한 지도자가 없다는 점을 꼽습니다.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난 정부와 국가에 대한 불신, 그리고 이순신 리더십을 갖춘 지도자를 갈망하는 마음이 영화에 투영됐다는 겁니다.
어제 박근혜 대통령도 일부 수석들과 함께 '명랑'을 봤습니다.
박 대통령은 정치인 시절,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존경했다는 이순신 장군의 말을 인용하곤 했습니다.
▶ 인터뷰 : 박근혜 / 당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2012년 4월5일 대구 유세 중)
- "이순신 장군이 12척의 배로 나라를 구하셨듯이, 이 12명의 후보가 대구, 우리나라 새누리당을 발전시키고 구하실 것입니다."
2004년 3월 당시 한나라당이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을 맞았을 때도 전당대회에서 '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배가 남아있다고 한 충무공의 비장한 각오로 이 자리에 섰다'고 했습니다.
2014년 박 대통령은 그런 비장한 각오로 영화 '명량'을 봤을까요?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국가가 위기를 맞았을 때 민관군이 함께 위기를 극복했듯, 경제 활성화와 국가 혁신을 한마음으로 추진하자'는 메시지를 전하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맞습니다.
영화 명랑에는 군인, 조정이 하나로 힘을 합쳐 나라를 구했다는 메시지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영화 흥행의 주 요인은 아닐 겁니다.
민 대변인의 설명이 맞다면, 박 대통령이 보고자 하는 영화의 메시지와 관객들이 보고자 하는 영화의 메시지가 다른 듯합니다.
한국갤럽 여론조사를 보면,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 지지도는 세월호 참사 이후 40%대로 떨어져 석달째 제자리에 머물고 있습니다.
7월 첫째주에는 새누리당 지지율이 41%를 기록하며 박 대통령의 지지율을 처음 앞서기도 했습니다.
잠깐 올라갔던 지지율이 지난주에는 다시 떨어졌습니다.
새누리당 지지자들 가운데 박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뜻일까요?
과거 사례를 보면 대통령의 인기가 떨어지고, 차기 대권주자가 부각되면 대통령 지지율이 여당 지지율보다 떨어지는 현상이 벌어집니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은 묘하게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7.30 재보궐선거 승리 이후 차기 대선 주자 선호도 1위에 오른 상황과 맞물려 있습니다.
지금이 그렇다는 뜻일까요?
'청와대 우위'의 당청관계가 '당 우위'의 당청관계로 바뀌는 변곡점에 있다는 뜻일까요?
김무성 대표가 한민구 국방장관을 불러 대통령 이상으로 호통친 것을 보면 확실히 당정청의 분위기는 과거와 달라진 듯보입니다.
박 대통령이 영화 명량을 보며 잠시 숨고르기를 하는 사이 안철수 전 대표는 측근들과 오찬을 하며 긴 숨고르기에 들어갔습니다.
안철수 전 대표는 최근 측근들과 오찬을 하며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많이 있고, 얼마든지 갈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아직 12척의 배가 있다는 이순신 장군의 말과 비슷한 맥락일까요?
안 전 대표는 이 자리에서 모든 걸 새로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백의종군한 이순신 장군이 다시 시작했듯이 말입니다.
안 전 대표는 재보선 패배 이후 자택에만 머물지 않고 여러 사람들과 계속 접촉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5석만 얻어도 잘한 것'이라는 말을 했지만, 실제로 '5석을 얻었다고 해도 안 전 대표는 이미 사퇴할 생각이었다는 주변인들의 설명도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안철수 전 대표는 이순신 장군과 다른 듯합니다.
이순신 장군은 330척의 왜선을 맞이하면서 두렵긴 했지만, 패배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 두려움을 용기로 바꿔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안철수 전 대표 역시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질것이라는 패배주의보다는 10석 이상 얻을 수 있다는 용기를 보여줬으면 어땠을까요?
선거가 자신감과 말로만 한다고 해서 승리하는 것은 아니지만, 장수답게 좀 더 자신감있게 밀어부쳤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혹 안철수 전 대표가 영화 명량을 보지 않았다면, 보기를 추천합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
영상편집 : 신민희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