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입을 자처하는 청와대 대변인은 참으로 막중한 자리입니다.
정보가 극히 제한적인 청와대에서 기자들의 주요 취재원은 대변인일 수밖에 없습니다.
기자들은 대통령에게 묻고 싶은 말을 대변인에게 물어보고, 대변인은 대통령이 국민에게 하고 싶은 말을 기자들을 통해 전달합니다.
그래서 대변인은 보통 대통령의 의중을 잘 아는 인물이 맡기는 게 관행입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 들어 대변인들이 수난사를 겪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뜻과 배치되는 행위를 해서, 때로는 대통령과 민심의 거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또 대통령의 의중을 제대로 읽지 못해서 그런 수난을 겪나 봅니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이 최근 잇따른 말실수로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였습니다.
민 대변인은 지난 24일 일부 기자들과 차를 마시면서 세월호 참사 얘기를 하던 중 '민간 잠수사들이 시신 1구를 수습하는 데 500만 원을 받는 조건으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직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돈 얘기가 나온 적이 없습니다.
보통 큰 사고 뒤 자연스레 제기되는 보상금이나 합의금, 보험금 얘기조차 이번에는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유족이나 실종자, 그리고 관계자들의 마음을 다치게 할까 언론도 그만큼 조심스러워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그 금기시된 돈 얘기를 언론인 출신이자, 그것도 청와대 대변인이 처음 꺼냈다는 게 매우 충격적입니다.
특히 시신 1구당 얼마를 받는다는 조건 자체가 유족과 잠수사들에게 어떻게 들렸을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역풍은 거셌습니다.
민간 잠수사들은 '구체적으로 얼마 돈을 받기로 계약하지도 않았고, 또 돈 때문에 목숨을 걸고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다'라며 격하게 반응했습니다.
정부에서조차 일단은 500만 원에 훨씬 못 미치며, 시신 1구당 얼마씩 받는다는 계약 조건도 없다고 밝혔습니다.
민 대변인은 이런 얘기를 도대체 어디서 들었을까요?
잠수사들은 오늘 기자회견을 통해 입장을 발표하려 했지만, 내부 이견이 있어 미뤄졌다고 합니다.
민 대변인은 자신의 발언이 논란이 되자 '현장에 있는 가족들은 인센티브를 줘서라도 피곤함에 지친 잠수사들을 격려해주기를 희망할 것이라는 개인적 생각을 얘기한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또 '취지야 어찌 됐든 잠수사드의 마음을 상하게 했을까 깊이 우려된다'고 했습니다.
민 대변인이 수난을 겪은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지난달 29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처음 사과한 것을 유족이 거부하자 민 대변인은 '유감스럽고 안타깝다'는 논평을 내놨습니다.
마치 유족들이 대통령의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아 섭섭하다는 뜻으로 들렸을 법합니다.
또 유가족들이 KBS항의 방문에 이어 청와대를 찾아 대통령 면담을 요구했던 지난 9일에는
'순수 유가족분들 요청을 듣는 일이라면…'이라고 해 논란이 됐습니다.
과대해석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순수한 의도를 가지지 않은 일부 유가족이 대통령 면담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는 뜻으로 들렸을 법도 합니다.
서남수 교육부 장관이 진도 실내체육관에서 사발면을 먹던 사진이 여론의 질타를 받았을 때도 민 대변인은 '라면을 끓여 먹거나 계란을 넣은 것도 아닌데…'라며 옹호 발언을 했다가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청와대 대변인은 나랏일에 대해 국민이 오해하거나 잘못 알고 있던 것에 대해 이런 저런 말을 하고 싶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오프를 전제로 기자들에게 개인 생각을 터놓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안이 사안인 만큼 아무리 사적인 자리라도, 오프를 걸었더라도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얘기는 조심 또 조심했어야 할 일입니다.
그만큼 청와대 대변인의 입은 때로는 시원시원해야 하지만, 때로는 아주 무거워야 하는가 봅니다.
행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윤창중 전 대변인의 어처구니 없는 행동이 대통령과 국가에 얼마나 망신을 줬는지 잘 기억합니다.
어떤 해명을 해도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었습니다.
▶ 인터뷰 : 윤창중 / 전 청와대 대변인(13년 5월11일)
- "그 여자 가이드의 허리를 툭 한차례 치면서 앞으로 잘해. 미국에서 열심히 살고 성공해 이렇게 말을 하고 나온 게 전부였습니다."
1년이 지났지만, 윤 전 대변인의 사법처리 여부는 아직도 윤곽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한미 양국 간에 무슨 사정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참여정부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복심'으로 통했던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이 최근 '기록'이라는 책을 내놨습니다.
5년 간 대통령 곁에 머물며 보고 들은 것, 대통령의 말과 생각을 그대로 실었다고 합니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호불호를 떠나 그 책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너럭바위에 올린 사진은 대통령과 대변인의 관계는
더는 청와대 대변인이 수난을 겪지 않았으면 합니다.
대통령의 의중이 국민에게 잘 전달되고, 민심이 대통령에게 잘 전달되는 통로가 대변인을 통해 만들어줬으면 합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
영상편집 : 신민희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