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대표는 어제 국회 본회의 연설에서 기초무공천 공약에 대해 사과한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비판했습니다.
▶ 인터뷰 : 안철수 /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어제)
- "왜 대선공약 폐기를 여당 원내대표가 대신 사과하십니까. 충정입니까, 월권입니까."
▶ 인터뷰 : 최경환 / 새누리당 원내대표(어제)
- "너나 잘해!"
충정이냐, 월권이냐는 말은 최경환 원내대표에게는 모욕으로 들렸을 겁니다.
여당 원내대표가 대통령에게 충정을 보이는 것고 모양새가 그렇고, 대통령과 동급으로 비치는 '월권'도 모양새가 그렇습니다.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몹시 화가 날 말'이고, 새정치민주연합 입장에서는 '속 시원한 말'이었을 겁니다.
마찬가지로 최경환 원내대표가 '너나 잘해'라고 응수한 것은 '아주 잘했다'는 평가가 있고, 어떻게 제1야당 대표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고 비판하는 평가도 있습니다.
안철수 대표가 연설하는 내내 여당 자리에서는 '백년 정당 만든다며'라는 고성이 나오기도 했고, 몇몇 의원들은 안 대표 연설에 관심이 없다는 듯 스마트폰을 보기도 하고 심지어 본회의장을 나가기도 했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도 맞고성을 질렀고, 국회는 순간 아수라장이 됐습니다.
과장을 좀 보태자면, 북한 해안포 사격과 우리의 대응사격이 오갔던 서해 NLL 같았다고 해야 할까요?
더구나 그 순간 초등학생들이 국회 본회장을 견학하고 있었습니다.
부끄러웠던 순간이었습니다.
이 부끄러운 자화상은 누구의 잘못일까요?
안철수 대표는 알 듯 모를 듯 묘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연설을 마친 안 대표의 말입니다.
▶ 인터뷰 : 안철수 /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 "언어는 사람의 품격이다. 저도 그 관점에서 원고를 썼다. (연설) 도중에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누리당 의원들의 태도에 불편한 기색을 내비친 겁니다.
하지만, 상호비방을 하지 말자며 '새정치'를 기치로 내걸었던 건 안철수 대표였습니다.
최 원내대표를 꼬집는 말이 정도를 넘어선 것인지 아닌지는 각자 판단이 다르겠지만, 듣는 최 원내대표에게는 '비방'처럼 들렸을 지 않을까요?
새누리당에게는 반작용을 불러일으킨 안철수 대표의 연설은 적어도 당내에서는 긍정적 작용을 가져왔습니다.
안철수 대표의 기초무공천 공약을 비판했던 정청래 의원은 안철수 의원의 연설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어제 MBN 시사마이크에 출연했던 정 의원의 말입니다.
▶ 인터뷰 : 정청래 /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어제 시사마이크)
- "당 대표 연설하는데 새누리당 쪽에서 고성 막말을 해서, 새누리당 돌아보면서 그 말하는 사람들 이름을 호명하면서 하지 말라고 했어요. 제가 오늘 안철수 대표를 상당히 엄호했어요, 연설 끝나고 나와서 '오늘 잘하셨어요'인사를 드렸더니 '정청래 의원이 오늘 굉장히 큰 힘이 됐어요'라고 말하더라고요."
정 의원은 안 대표가 '바보 노무현'을 언급했을 때 노 전 대통령은 자기 희생정신이 있었지만, 안 대표는 자신을 위해 3천여 선거 출마자를 희생시킨다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정 의원이 어제는 안철수 대표를 옹호했으니 안 대표로서는 연설이 나쁜 것만은 아니었을 법합니다.
문재인 의원 역시 트위터에서 안 대표를 지원했습니다.
문 의원은 트위터에 '새누리당 대표 연설과 안철수 대표의 연설을 한 번 비교해 보길 권한다'며 '야당을 비난하고 탓하고 싸우려는 자세와 국가와 국민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자세가 뚜렷하게 대비된다'고 썼습니다.
그리고 "대표 연설을 품격있게 주고받는 모습을 언제나 볼 수 있을까요"'라고 반문했습니다.
안철수 대표를 한껏 추켜 세운 것처럼 들립니다.
공동선대위원장을 맡는 문제를 놓고 불편함이 있었던 문 의원과 안 대표 사이가 연설을 계기로 좀 풀린 걸까요?
안 의원으로서는 어제 연설로 정청래 의원과 문재인 의원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얻었으니 그리 손해 본 연설은 아니었나 봅니다.
하지만 안 대표의 행보에 반작용은 또 있습니다.
안 대표를 도왔던 윤여준 전 의장이 각종 언론 인터뷰에서 안 대표에게 직격탄을 날리고 있습니다.
"신념이 부족한 정치인은 연 눈앞의 이해득실에 매달리게 된다"
"국가 차원에서 깊이 고민해 본 경험이 없는 것 같다"
안철수 대표를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안철수 대표가 민주당과 통합을 결정한 것은 눈앞의 이해득실에 매달린 것이고, 기업 CEO는 했지만, 국가 차원의 고민은 없다는 비판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윤여준 전 의장이 했으니, 안 대표에게 이보다 더 아픈 말이 있을까요?
그런데 안 대표는 이런 아픔과 시련을 '약'으로 받아들이는 모양입니다.
안 대표는 지난 1일 당 소속 의원들과 함께한 사석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세상 물정 모르고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바로 뭐(대통령)가 됐더라면 제대로 못했을 것이다"
"여의도에 와보니 온갖 '잡X'이 많은 걸 처음 알았다"
"세상의 모든 게 섞여 있는 게 정치인 것 같더라. 그런 걸 알게 되면서 제 인생이 풍부해진 것 같다"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이 물리학 뿐 아니라 세상 이치에도 적용된다는 것을 정치인 안철수 대표가 비로소 깨달아가는 걸까요?
긍정적 작용은 확대하고, 부정적 반작용은 최소화하며 '거목'으로 커 갈지, 아니면 그 반대가 될 지는 아직은 좀 더 지켜봐야 하지만 말입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
영상편집 : 신민희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