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 판결에 대한 옹호와 반발이 극명하게 엇갈립니다.
워낙 정치적 파장이 큰 사건이니 그럴 수
밖에요.
사건을 재구성해보겠습니다.
2012년 12월16일 밤 11시.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마지막 TV 토론회가 끝난 직후였습니다.
당시 경찰 수사 발표 내용입니다.
"국정원 직원 김씨의 컴퓨터를 분석한 결과 대선후보 관련 댓글 작성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2012년 12월16일 경찰 중간수사 결과 발표
한 마디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쪽에는 천만다행인 내용이었고, 민주당 쪽에는 충격적인 내용이었습니다.
사흘 뒤 대선이 치러졌고, 치열했던 대선 레이스는 박근혜 후보의 승리로 끝이 났습니다.
훗날 야권은 이날 밤 경찰의 발표로 박빙이었던 승부가 기울어 박 후보에게 결정적 승리를 가져다 줬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이후 경찰의 중간 수사 결과에 대한 신빙성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국정원의 개입이 없었다고 했던 경찰이 스스로 말을 뒤집은 겁니다.
▶ 인터뷰 : 이광석 / 서울 수서경찰서장(2012년 8월16일 중간수사결과 발표 당시)
- "현재까지 특이점 발견 못 하고 있습니다. (결론이 바뀔 가능성이 있습니까?) 저는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 인터뷰 : 서울 수서경찰서 관계자(2013년 1월4일)
- "구글링을 하니까 그 닉네임에 썼던 흔적이 나왔어요. 의심스러운 게 있어서 압수수색영장을 받았었던 거고…."
이후에도 경찰은 스스로 중간 수사 발표를 부정하는 증거를 찾아냈습니다.
"김씨가 대선 관련 글에 99차례 추천·반대의사 표시한 정황을 포착했다."(2013년 1월3일 경찰 발표)
"김씨가 ID 11개로 국내정치 등과 관련된 글 120개 게재한 정황을 포착했다."(2013년 1월31일 경찰 발표)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고, 이후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선거에 개입했다는 증거들이 속출했습니다.
정말 당시 경찰은 국정원의 선거 개입 정황을 알고도 묵살한 걸까요?
김용판 당시 서울경찰청장은 고의적으로 수사 결과를 은폐해 발표하도록 한 걸까요?
국회 국정조사에서 김용판 청장은 외압을 행사한적이 없다고 했고, 당시 수사팀장이었던 권은희 수사과장은 외압이 있었다고 폭로했습니다.
▶ 인터뷰 : 김용판 / 전 서울지방경찰청장(8월16일)
- "(권영세 상황실장하고 상의했습니까? 김용판 증인?) 박원동·권영세 제가 수차례 통화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얼토당토않은 사실무근의 소리입니다."
▶ 인터뷰 : 권은희 /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2013년 8월19일 국회 청문회)
- "당시 김용판 전 서울청장이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하지 말 것을 지시하고 수사에 외압을 행사했다."
무엇이 진실일까요?
어제 1심 재판부는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1심 재판부의 판결 내용입니다.
"피고인(김용판 전 청장)이 수사에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의 증언은, 객관적 사실에 부합하고 상호모순이 없는 다른 경찰들의 진술과 배치된다."
"(댓글 조사) 분석 범위를 한정한 것이 부당하다고 보이지 않는다."
"국정원의 혐의가 불분명한 초기에 발견돼 불명확한 증거였는데, 수사를 종결하고 기소한 현재 관점에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수긍이 가지 않는다."
"보도자료 발표 시기와 내용에 있어서 최선이었는지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김하영이 40개의 아이디와 닉네임을 사용한 게 확인된 이상 수사가 확대될 여지가 있음을 밝히는 등으로 불필요한 오해를 피할 수 있었다."
재판부는 권은희 수사과장의 증언보다는 다른 수사 경찰들의 증언을더 믿어준 것 같습니다.
경찰의 중간 수사 결과 발표가 아쉬움이 남지만, 그렇다고 해서 선거 개입을 할려는 의도에서 그렇게 한 것 같지는 않다고 본 것 같습니다.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과 권은희 수사과장의 말입니다.
▶ 인터뷰 : 김용판 / 전 서울경찰청장 (2월6일)
- "변호인들과 변함없이 저를 믿고 격려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 인터뷰 : 권은희 /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오늘)
- "수사 책임자로서 제기했던 수사 축소나 지연, 그에 따른 법률적 문제에 대한 판단이 없었다."
여야의 반응도 극명하게 엇갈렸습니다.
새누리당은 법원 판결을 환영했고, 민주당은 특검으로 가야 한다며 흥분했습니다.
▶ 인터뷰 : 최경환 / 새누리당 원내대표
- "외압 의혹을 제기한 권은희 과장 주장 신빙성 없고 검찰이 공소사실 충분한 증거 뒷받침하지 못했다고 판결했다. 검찰이 얼마나 무리하고 부실한 수사를 했는지 보여준다. 1년 내내 정쟁을 벌인 민당은 국민께 최소한의 입장표명과 사과를 해야 한다"
▶ 인터뷰 : 김한길 / 민주당 대표
- "어제 김용판 청장 1심 재판 결과를 보면서 진실과 국민이 모욕당했다고 생각한다. 정권 차원의 노골적 수사 방해가 진실을 덮었다. 새누리당은 여야 4자회담 내용 그대로 특검 시기 범위 논하고 결론내야 한다."
문재인 의원도 이번 판결에 대해 '사법사의 큰 오점' '권력의 폭주'라고 강도높게 비판했습니다.
1심 판결이 나왔지만, 패소한 쪽은 흔쾌히 그 결과에 승복할 마음의 준비가 돼 있지 않은 듯합니다.
정국은 시끄러워질 것 같습니다.
설령 2심에서 판결이 다시 뒤집한다고 해도 마찬가지일겁니다.
새누리당 쪽에서 순수히 승복할 것 같지가 않습니다.
2심과 대법원 판결이 어떻게 나오든 박근혜 정부 임기 내내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은 두고 두고 정치권의 분열, 나아가 우리 사회의 분열을 가져올 겁니다.
그 갈라짐을 막을 수 있는 뚜렷한 해법조차 잘 보이지 않으니 참으로 답답할 노릇입니다.
재판부가 공정하게 재판을 했다는 신뢰, 그리고 그 재판부의 결정에 승복할 수 있는 정치권의 성숙함, 그 모든 것이 지금은 조금은 부족해 보입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