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우리는 가야 합니다.
그 이유를 굳이 말하지 않아도, 통일은 우리 민족의 하나됨을 위한 숙명적인 길입니다.
이산가족 상봉은 그 통일로 가는 여정의 첫 디딤발일 겁니다.
어렵사리 이산가족 상봉이 열릴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어제 북한은 내일이나 모레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실무접촉을 갖자고 제안했습니다.
▶ 인터뷰 : 조선중앙TV(어제)
- "북남 적십자 실무 접촉을 2월 5일 또는 6일 남측이 편리한 날짜에 판문점 우리 측 지역 통일각에서 진행할 것을 제의한다고…."
지난달 29일 실무접촉을 갖자는 우리 측 제안에 묵묵부답이던 북한이 마침내 입을 연 것은 참으로 다행입니다.
늦었지만 말입니다.
통일부는 조속한 상봉행사 개최를 위해 내일 실무접촉을 열자고 북측에 답했습니다.
▶ 인터뷰 : 김의도 / 통일부 대변인(어제)
- "이산가족 문제의 시급성을 고려해서 될 수 있으면 제일 빨리, 최대한 빨리 개최할 수 있도록 준비해 나가겠습니다."
남북은 오늘 실무접촉 대표단 명단을 교환할 계획입니다.
정부는 애초 북측에 제안한 2월 17일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연다는 계획입니다.
그럴려면 지금도 사실 늦은 감이 있지만, 빨리 서두르면 못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이산 가족 상봉행사가 열린다고 낙관하기 어렵습니다.
북한이 실무접촉에서 어떻게 나올 지 알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자칫 북한이 이달 말 예정된 키리졸브와 한미합동군사훈련의 중단을 요구한다면 이산가족 상봉행사는 난관에 부딪힐 가능성이 큽니다.
▶ 인터뷰 : 박정진 /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 "(북한이) 한미 군사훈련의 규모나 상황을 고려해서 이산가족 상봉일을 간접적으로 연계할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실제로 현학봉 영국 주재 북한대사는 영국 언론과 인터뷰에서 한미 군사훈련이 실시되는 위험한 상황에서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열릴 수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 정부의 방침은 확고합니다.
한미 군사훈련은 방어적 성격이고 연례적으로 해왔던 것이나 예정대로 한다는 겁니다.
설령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행사의 조건으로 한미 군사 훈련의 중단을 요구해도 이를 들어줄 것 같지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이산가족 행사는 또 다시 물거품이 될 수 있습니다.
과연 북한은 내일 실무접촉에서 어떻게 나올까요?
그렇다고 너무 비관적으로만 볼 필요도 없습니다.
북한은 지난 1월1일 김정은의 신년사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약속하고, 비방과 중상을 중지하자는 '중대 제안'을 적어도 지금까지는 지켜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말과 박근혜 대통령의 얘기를 차례로 들어보죠.
▶ 인터뷰 : 김정은 / 북한 국방위 제1위원장(1월 1일)
- "북남관계 개선을 위한 분위기를 마련해야 합니다. 백해무익한 비방을 끝낼 때가 되었으며 화해와 단합에 저해를 주는 일을 더 이상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 박근혜 / 대통령(신년 기자회견 1월6일)
- "이번에 설 을 맞아 지난 60년을 기다려온 연로하신 이산가족들이 상봉하도록 해서 마음의 상처가 치유될 수 있도록 해주기를 바랍니다."
북한의 중대 제안이 끝까지 지켜지길 바랍니다.
여야 역시 통일에 대해서는 큰 이견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통일로 가는 과정은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새누리당은 북한의 급변사태 가능성과 북한 인권에 천착하고 있습니다.
반면, 민주당은 조금 더 천천히 가는 통일을 원하고 있는 듯합니다.
여야의 얘기입니다.
▶ 인터뷰 : 황우여 / 새누리당 대표
- "이제 통일은 더 이상 이념과 체제의 문제가 아니라 민족의 공동생활체 복원과 개인의 삶을 향상시키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 인터뷰 : 전병헌 / 민주당 원내대표
- "이번에도 상봉 좌절되면 이산가족 가슴에 대못 박는 일이다. 이번엔 반드시 이산가족 상봉이 성사돼야 한다."
그런데 통일은 우리만 관심이 있는 게 아닙니다.
미국과 중국 역시 한반도의 통일을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남한과 북한이 배제된 채 한반도의 통일이 미국과 중국의 이익 논리에 따라 좌우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이 지난 1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 안보회의에서 '중국과 한반도 통일 문제를 논의하겠다'고 밝힌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아시아 재균형' 정책의 일환으로 한반도 통일을 접근하는 겁니다.
북한의 급변사태와 갑작스런 통일 가능성을 염두에 뒀다는 해석도 있지만, 어쨌든 우리의 순수한 통일이 다른 강대국의 이해관계 속에서 좌우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한반도 통일의 주도권을 쥐려면 힘이 있어야 겠죠.
당장 남북이 힘을 합치지는 못할지라도, 서로 으르렁거리며 싸우는 것은 결코 한반도 통일의 주도권을 쥐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
이산가족 상봉은 이제 만남의 의미를 넘어 통일 주도권을 잡기 위한 단초가 될 것입니다.
이번에는 꼭 상봉이 이뤄졌으면 합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
영상편집 : 신민희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