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팀 누가 누가 바뀐다더라, 누구누구는 6월 지방선거에 차출되니 이번에 바뀔 것이라는 갖가지 소문이 떠돌았습니다.
여기다 김 행 청와대 대변인이 갑자기 사표를 냈고, 총리실 1급 간부들이 일괄 사의를 표명한 터라 관가 분위기는 개각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습니다.
특히 여론도 좋지 않았습니다.
문화일보 여론조사를 보면 현직 장관들의 업무 수행에 대한 만족도는 '불만족스럽다'는 답변이 61.7%, '만족스럽다'는 답변은 30.8%에 그쳤습니다.
그 결과 응답자의 75.0%가 개각이 필요하다고 답변했습니다.
심지어 여당에서조차 개각을 요구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입장은 확고했습니다.
어제 갑자기 기자회견을 자청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기자회견을 들어보죠.
▶ 인터뷰 : 김기춘 / 청와대 비서실장(어제)
- "지금은 경제회복의 불씨를 살려서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도모하고 엄중한 안보환경 속에서 국가 안보를 공고히 지켜나가야 하는 중대한 시기입니다. 따라서 내각은 추호도 흔들림이 없이 힘을 모아 국정을 수행해야 할 때입니다. 그러므로 대통령께서는 전혀 개각을 고려하고 있지 않습니다."
사실 이 말 속에 모든 답이 있겠죠.
경제회복의 불씨를 살려야 할 때라는 말 속에는 현 경제팀에 대한 신뢰가, 국가 안보를 지켜나가야 할 때라는 말에는 현 안보팀에 대한 격려가 숨어 있습니다.
현오석 경제팀과 김관진 국방외교팀을 교체할 시기가 아니라는 겁니다.
심지어 박 대통령은 한 언론에 교체 2순위로 거론된 최문기 미래부 장관을 격려하며 언론보도를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는 후문도 있습니다.
장관들에 대한 박 대통령의 신뢰는 여론과는 무관하게 매우 두터운 모양입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오히려 경제 활력을 살리고, 안보를 더 굳건히 할 기회를 놓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인사권은 대통령이 갖고 있으니, 대통령의 결정을 존중해야겠죠.
그런데 이런 인사 문제와 관련해 걱정 어린 시선이 있는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정우택 새누리당 최고위원의 말입니다.
▶ 인터뷰 : 정우택 / 새누리당 최고위원(어제 최고위원회의)
- "제 바람 말씀드리면 박근혜 정부가 소통의 문제에서 결코 다른 말씀이 나오지 않도록 소통 잘 이뤄지는 한 해가 되고 특히 인사문제에서 많은 국민으로부터 신망받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언제부터인가 박 대통령이 원칙을 말할 때면 꼭 '소통'이라는 말이 쌍둥이처럼 따라붙고 있습니다.
원칙과 소통은 정말 양립 불가한 것일까요?
어제 김기춘 비서실장의 기자회견을 놓고도 뒷말이 나옵니다.
박 대통령은 전혀 개각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말을 끝으로 김기춘 실장은 기자회견장을 떠났습니다.
기자들의 일문일답도 없었습니다.
기자들이 미처 예상치 못한 짧은 42초의 시간이었습니다.
지난해 허태열 청와대 비서실장이 인사 문제와 관련해 김행 대변인을 통해 17초 대독 사과문을 발표한 것과 비유되기도 합니다.
▶ 인터뷰 : 김행 / 청와대 대변인(지난해 3월30일)
- "새 정부인사와 관련하여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친 점에 대해서 인사위원장으로서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앞으로 인사검증 체계를 강화하여 빈틈없이 하도록 하겠습니다."
인사 문제는 워낙 예민한 터라 김기춘 비서실장이 기자들 질문에 일일이 답하기 어려웠을 법합니다.
그럼에도, TV로 생중계되는 상황에서 그렇게 짧게 한마디만 하고 자리를 떠나는 모습은 국민에게 어떻게 비쳤을까요?
어쨌든 박 대통령의 원칙은 확고하고, 주변 상황에 따라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게 이번에 또다시 확인된 셈입니다.
일 년마다 장관을 바꾸고, 무슨 일만 있으면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개각하는 과거 정부의 관행을 비정상이라고 보는 걸까요?
개각 문화를 바로 잡는 것도 대통령에게는 비정상의 정상화라고 봐야 하는 걸까요?
박 대통령은 오늘 6일 신년 기자회견을 하기로 했습니다.
여기서 개각과 관련한 분명한 입장을 다시 한 번 밝힐 것 같습니다.
박 대통령의 재신임에 따라 각 부처 장관들은 자신감 있게 일을 추진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런데 얼핏 부작용도 우려됩니다.
박근혜 정부 2기의 초점은 민생과 경제활성화입니다.
여기에 공기업 개혁도 핵심 추진 과제입니다.
공기업 개혁의 핵심은 부채를 줄이는 것인데, 이것이 자칫 서민과 민생에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점을 걱정하게 됩니다.
빚더미에 오른 공기업들이 누구 눈치를 봤는지는 몰라도 새해부터 줄줄이 군사 작전하듯 요금을 올리고 있습니다.
도시가스요금이 새해 첫날부터 서울시 소매기준으로 평균 5.8% 올랐고, LPG는 kg당 99원 올랐습니다.
전기료는 이미 지난해 11월 평균 5.4% 올랐고, 우체국 택배 요금은 2월부터 10~21% 오를 예정입니다.
철도노조 파업 사태를 겪은 코레일도 기차 요금 5%인상을 검토 중입니다.
중앙정부가 공공요금을 올리니 지방 광역단체들도 시내버스와 지하철, 택시 요금을 줄줄이 올리고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한 탓인지, 심지어 초코파이와 과자 값, 콜라 값도 20% 안팎으로 오르고 있습니다.
아무리 지난해 소비자물가가 1.3% 상승하며 낮은 수치를 보였다 해도 이렇게 한꺼번에 올리면 서민들이 배겨낼 재간이 없어집니다.
박 대통령으로부터 재신임을 받은 각 부처 장관들이 산하 공기업 개혁을 더 강도 높게 할 것은 당연지사고, 그 불똥은 어찌어찌해서 서민들에게 갈지도 모를 일입니다.
연말연초가 개각설과 철도노조파업, 공공요금 인상 등으로 어수선합니다.
박 대통령이 6일 취임 후 첫 기자회견을 통해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를 바로잡고 힘차게 2년차 국정운영을 끌고 갈 수 있을까요?
아마도 원칙과 소통이라는 단어는 2014년에도 화두가 될 것 같습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
영상편집 : 신민희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