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이 끝난 지 이제 곧 일년이 다 돼가는데 여야가 아직도 그 상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할 노릇입니다.
어제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민주당 김한길 대표를 찾아갔습니다.
화분과 쌀떡을 갖고 말입니다.
명분은 민주당이 새 당사로 이전한 것을 축하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속내는 아마 천막 농성을 끝낸 김 대표에게 '이제 그만 투쟁을 멈추고, 잘해보자'는 의미였겠죠.
그런데, 김 대표의 표정이 밝지 않았습니다.
황 대표와 김 대표의 얘기를 들어보겠습니다.
▶ 인터뷰 : 황우여 / 새누리당 대표
- "김 대표님 그동안 고생 많이 하시고 여당이 잘 함께 일을 해야 하는데 얽힌 것도 있고 그래서…."
▶ 인터뷰 : 김한길 / 민주당 대표
- "떡까지 갖고 오신 건 고맙긴 합니다. 제가 지금 대표님과 나란히 앉아서 웃고 있기에는 마음이 너무나 무겁습니다."
분위기는 이내 냉랭해졌고, 황 대표는 멋쩍은 웃음을 띨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황 대표와 김 대표는 지난 6월에도 만나
콩나물 국밥을 같이 먹은 사이입니다.
뜨거운 여름이었지만, 속풀이 민생 국회를 이끌어 가자며 콩나물 국밥을 시켰던 겁니다.
서로 국밥에 김을 먼저 넣어주는 훈훈한 모습도 보였지만, 말에는 가시가 있었습니다.
<녹취>
- "(촬영기자) 한 숟갈씩 떠 드세요. 촬영합니다."
▶ 인터뷰 : 황우여 / 새누리당 대표
- "민주당과 함께 여러 가지 좋은 쇄신안에 대해서 성큼성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 인터뷰 : 김한길 / 민주당 대표
- "집권 초기의 여야 협력관계의 마감을 선언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것을 황 대표님께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날도 두 사람은 국밥만 먹고 헤어졌습니다.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 때문에 단 한발짝도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5개월 전 '콩나물 국밥 회동'도 그렇고, 어제 '쌀떡 선물'도 그렇고, 어떤 것도 얼어붙은 여야 관계를 녹이지는 못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요?
가장 큰 문제는 김한길 대표가 황우여 대표를 파트너로 보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요?
김한길 대표의 마음 속에는 아마도 황우여 대표가 아닌 박근혜 대통령만 있는 것 같습니다.
어제 김한길 대표의 말입니다.
▶ 인터뷰 : 김한길 / 민주당 대표
- "대통령 결단이 있어야 이 정국을 풀 수 있습니다."
황우여 대표와 마주 하고 있지만, 황 대표는 이 꼬인 정국을 풀 수 없다는 뜻일까요?
황 대표가 국정 전권을 갖고 정국을 바꿀 수 있는 재량권이 없다는 뜻일까요?
150석이 넘는 집권 여당의 대표인데, 그런 힘이 없다는 뜻일까요?
황우여 대표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런 속내가 김한길 대표에게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또 여야대표와 박근혜 대통령의 3자 회동을 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김한길 대표는 황 대표가 아닌 박 대통령을 향해 압박 카드를 쓸 모양입니다.
민주당은 오늘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사건 진상규명과 민주헌정질서 회복을 위한 범야권 연석회의를 열었습니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천호선 정의당 대표, 안철수 무소속 의원 등 야권 지도자와 시민단체, 종교계 지도자들이 참석했습니다.
종북 논란을 불러온 통합진보당만 빠졌습니다.
이들은 박 대통령을 향해 특검 도입과 국정원 개혁 특위 구성을 요구했습니다.
▶ 인터뷰 : 안철수 / 무소속 의원
- "특검은 대립의 끝을 위한 제안이다.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의혹은 민주주의 근본에 대한 문제이기에 여야간 이견이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된다"
새누리당은 신 야합연대라며, 지난 대선때와 마찬가지로 정파적 이익 만을 위한 연대는 실패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 인터뷰 : 최경환 / 새누리당 원내대표
- "새누리당은 신 야합연대가 주장하는 특검은 결코 타협의 여지가 없음을 분명히 한다. 신 야합 연대 특검은 대선불복, 정쟁, 불쏘시개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신 야합연대든, 야권연대든 야권이 대답을 요구하는 상대는 새누리당이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임이 분명합니다.
새누리당이 아무리 대신 답해봐야, 야권은 꿈적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청와대는 국회가 해결해야 할 일이라며, 침묵하고 있습니다.
야권과 새누리당, 그리고 청와대가 제각각 다른 방향을 보고 있으니 대화가 될 리 없겠죠.
아무래도 정국의 매서운 칼바람이 오래 갈 것 같습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
영상편집 : 신민희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