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기 의원 사태도, 전두환 전 대통령 추징금 문제도 이렇게 오랫동안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 사건은 사람들이 흥미를 느낄만한 요소를 모두 갖췄습니다..
막장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출생의 비밀이 기본 줄거리를 구성하고 있고, 그 위에 우리나라 사법기관의 최고 수장과 대통령 권력이 충돌하는 흥미로움까지 더했으니 사람들이 관심이 클 수 밖에 없습니다.
드라마 시청률로 치자면, 50%를 넘는 국민드라마가 될 요소를 모두 갖춘 셈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이 지쳐가고 있습니다.
극의 전개가 지루한 진실 공방으로 이어지다 보니, 점점 막장 드라마로 변질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알고 싶은 진실은 보여주지 않은 채, 끝없는 공방과 추측만이 난무하니 이제 사람들이 떠나고 싶어합니다.
어제 TV 조선과 조선일보는 임 모 씨 집에서 일했다는 가정부의 인터뷰를 내보내 혼외자가 채동욱 전 총장의 아들이 맞다는 주장을 새롭게 제기했습니다.
보도 내용과 채 전 총장 쪽 반박 입장을 차례로 보시죠
<가정부 인터뷰 더빙>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아이를 생후 7개월 때부터 6살 때까지 키웠고 이 사이 수시로 찾아온 채 전 총장을 분명히 기억한다.”
“임씨 모자와 임씨의 어머니 세 사람과 함께 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빠라 불리는 사람이 드나들었고, 그 날은 아주 특별한 날이 됐다. 채 전 총장은 임 여인의 집에 와서 수시로 잠을 자고 갔다"
"채동욱 전 검찰 총장이 아들에게 무등을 태우며 예뻐했다. 아이도 채 전 검찰 총장을 '아빠'라고 불렀다"
“초기에는 oo아빠 들어오면 방안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해서 철저히 (채 전 총장의) 존재를 숨겼다."
“빌려준 돈을 갚으라며 임씨 측에 연락하자 건장한 남성들과 함께 찾아와 겁을 주고, OO이 아빠가 총장이라는 소리를 하지 말라며 각서까지 받아갔다."
"TV조선에서 보도한 가정부 인터뷰 내용은 전혀 사실 무근이다. 관련내용은 엉뚱한 사람과 착각했는지 전혀 사실무근이다."
"임 여인의 편지에 의하면 임 여인이 아이와 가족 주변 친지들에게 채 총장이 아빠라고 말했다는 내용이 들어있는데, 그러다보니까 착각했을지 모르지만 전혀 아니다."
"조선일보에 대해서도 강력히 법적 대응을 하겠다. 저에 관한 사실무근의 의혹을 제기한 특정 언론사는 사실무근의 전문 진술들을 동원해 더 이상 의혹이 진실인 것처럼 포장하지 말기 바란다."
"유전자 검사 후 진행될 강력한 법적조치들을
특정 언론사는 꼭 기억해주시기 바란다."
사람들은 또 흥분했습니다.
하지만, 이 가정부가 임 모씨 집에서 일한 가정부가 맞는지,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닌지, 또 이 가정부가 본 사람이 채 전 총장이 맞는지 알길은 없습니다.
채 전 총장이 줬다는 연하장의 필적이 채 전 총장 필적과 매우 유사하다고 주장했지만, 필적만으로 채 총장과 아이의 관계를 단정하기는 무리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어제 TV 조선의 보도로 진실이 밝혀지지는 않는다는 뜻입니다.
채 전 총장 쪽은 격분했습니다.
보도가 사실이 아니며, 이 가정부가 사람을 착각했을 수 있다고 반박했습니다.
채 전 총장 쪽은 진실이 밝혀진 뒤 조선일보를 상대로 강력한 법정대응을 하겠다고 거듭 경고했습니다.
채 총장이 아니라고 반박하는 한, 조선일보가 더욱 명확한 증거를 내놓지 못하는 한, 이 지루한 공방은 오직 유전자 검사만을 통해 끝날 수 있습니다.
제발 부탁이니, 채 전 총장과 임 모 여인, 그리고 그 아이는 유전자 검사를 하루빨리 받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동안만이라도 우리는 이 문제에서 관심을 끊고 기다려줬으면 합니다.
더는 소모적인 공방에 휘둘려 호기심의 촉수를 세우지 않았으면 합니다.
검찰과 정치권도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여야는 오늘도 긴급 현안 질의를 통해 채 총장 사태를 다뤘지만, 그 역시 실체적 진실과는 먼 정치적 공방뿐이었습니다.
▶ 인터뷰 : 권성동 / 새누리당 의원
- "이번 사태에 대한 민주당의 태도를 보며, 오히려 민주당과 채 전 총장과 모종의 커넥션이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도덕적 흠결 의혹을 받고 있는 검찰총장을 왜 비호하냐. 민주당에 입맛에 맞는 수사를 했기 때문이냐"
▶ 인터뷰 : 신경민 / 민주당 의원
- "곽상도 전 민정수석이 서천호 국정원 제2차장에게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사생활 자료를 요청한 것을 확인했다. 이를 들고 8월 중순에 조선일보 편집국장을 만나 '채동욱은 내가 날린다'고 말했다."
이런 식의 공방은 유전자 검사가 나올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정치권도 이제는 공방을 멈췄으면 합니다.
시민단체의 고발로 검찰은 곽상도 전 수석과 조선일보에 대해 수사에 들어갔습니다.
한 점 의혹없이 나오는 사실을 그대로 밝혔으면 합니다.
정말 찍어내기를 한 것인지, 아니면 정당한 언론의 정보 취득과 취재였는지 밝혔으면 합니다.
이 수사에는 절대 외압이 없었으면 합니다.
그때까지 우리는 막장드라마 장면 하나 하나에 흥분하는 것과 같은 구태스러움이 아니라, 지극히 상식적이고 관조적인 자세로 진실이 밝혀지길 기다렸으면 합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는 우리 의식의 수준을 시험대에 올려놓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
영상편집 : 김희경 이민경 신민희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