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과 대처 전 영국 총리, 메르켈 독일 총리.
이 세 지도자가 서로 닮았을까요?
철의 여인으로 불린 '강경 보수주의자'인 대처 전 영국 총리에 이어 화합형 실용주의자인 메르켈 독일 총리도 이번에 3선에 성공했습니다.
우리는 대통령 단임제이다 보니 박 대통령이 3선을 할 수는 없지만, 세 지도자는 닮은 듯 다른 구석이 있습니다.
메르켈 총리는 구 동독 출신으로 시골의 작은 교회 목사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대처 전 총리 역시 식료품 가게 주인의 딸로 자라나 영국 최초 여성 총리에 올랐습니다.
반면 박 대통령은 군인의 딸로 태어났고, 10대와 20대는 대통령 아버지 밑에서 자라며 인생의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물론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비운의 죽음을 맞는 모습을 두 눈으로 지켜보며 큰 충격을 받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인생 과정만큼이나 세 지도자의 정치 철학과 이념도 닮은 듯 다른, 묘한 대비를 이룹니다.
대처 전 총리는 이른바 '대처리즘'으로 대표되는 비타협 보수 강경노선을 걸었습니다.
'영국병'에서 벗어나려고 이전 노동당 정부가 고수해 왔던 각종 복지 정책을 포기했습니다.
광산노동자 파업을 비롯해 노조 활동을 규제했고, 국영기업을 과감하게 민영화했습니다.
덕분에 영국은 인플레이션을 극복하고 오랜 침체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실업은 더 심각해졌고, 양극화도 심화하고, 이혼과 가족 해체도 급격히 늘어 강한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메르켈 독일 총리는 중도 실용주의 노선을 걷고 있습니다.
야당과 연정을 구성하고,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며 필요하면 좌파의 정책을 과감히 받아들이기도 했습니다.
원전 폐기와 어머니 연금제 같은 복지정책을 도입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기보다는 안정적 국정 운영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관리형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그리스 지원을 비롯한 유로존 위기 국면에서 보여줬듯 두둑한 뚝심도 보여줬습니다.
안팎의 비판과 압력에도 '긴축' 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였습니다.
덕분에 다른 유로존 국가들이 재정 위기를 맞을 때도 독일은 통독 이후 최저 실업률을 기록하고, 사상 최대 무역수지 흑자를 냈습니다.
자, 박근혜 대통령은 두 리더십 가운데 어느 쪽에 가까울까요?
비타협 보수 강경노선을 간 대처 전 총리와 가까울까요?
엄마, 그러니까 무티 리더십을 보인 메르켈 총리에 더 가까울까요?
원칙과 신뢰를 강조하는 것을 보면 박 대통령은 사실 대처 전 총리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3자회담에서 야당의 요구에 대해 비타협적 태도를 보인 것도 대처 전 총리와 비슷합니다.
전교조에 대해 해직 교사들을 탈퇴시키지 않으면 노조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한 것도 어떤 맥락에서는 대처 전 총리와 같은 노선입니다.
그러나 확고한 대북 노선을 유지하는 것을 보면 긴축 정책을 밀어붙인 메르켈 총리와 비슷하기도 합니다.
지난 대선에서 기초연금이나 4대 중증질환, 무상 보육 등 복지 정책을 대거 도입한 것도 대처 전 총리보다 메르켈 총리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복지정책이 흔들거리고 있습니다.
당장 만 65세 노인 모두에게 25만 원을 주겠다는 노령 연금 공약이 물거품이 될 것 같습니다.
4대 중증 질환도 후퇴가 불가피하고, 무상 보육 문제는 서울시를 비롯한 지자체와 다투고 있습니다.
이유는 재정이 없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박 대통령이 공약을 지키지 않으려 했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지난 3월18일 박 대통령이 수석 비서관 회의에서 한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 인터뷰 : 박근혜 대통령(3월18일)
- "4대 중증질환 보장이 후퇴한 것처럼 알려지기도 했고, 기초연금 도입안에 대해 국민연금 가입자들의 반발도 있었다. 정책 하나로 예상하지 못한 혼선과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는데, 국민으로서는 상당히 혼란스러울 수 있는 만큼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정책 결정의 모든 과정을 국민께 충분히, 그리고 소상하게 설명할 수 있도록 정책의 내용을 정확하게 알려야 할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박 대통령은 공약 수정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대해 단호하게 '하나도 빠짐없이 공약을 지키라'고 주문했습니다.
그러나 상황은 이제 달라졌습니다.
올 들어 벌써 세수가 7조 원 넘게 줄어드는 상황에서 150조 원이 드는 박근혜식 복지를 추진할 여력이 없어진 겁니다.
복지 공약의 포기일까요?
▶ 인터뷰 : 심재철 / 새누리당 최고위원
- "공약한 그대로 지키면 증세로 그대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재정형편을 국민께 소상히 알리고 이해 구해야 한다. 후세에 막대한 빚더미 넘겨서는 안 된다."
▶ 인터뷰 : 전병헌 / 민주당 원내대표
- "대통령이 공약 지키려는 손톱만큼의 노력과 성의 보이는 게 도리고, 약속 파기한 것에 대한 최소한의 사과를 해야 한다."
혹시나 이로 인해 박근혜 대통령의 '원칙과 신뢰' 이미지도 금이 가는 걸까요?
박 대통령은 오는 26일 직접 이 문제와 관련한 입장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국민은 어떻게
박 대통령이 원한 것이든, 원치 않은 것이든 어쨌든 지금 박 대통령은 메르켈 총리보다는 대처 전 총리와 닮아가는 듯합니다.
남은 4년 6개월은 또 어떤 모습일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말입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
영상편집 : 김희경 이민경 신민희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