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전 대통령이 마침내 추징금 1,672억 원을 모두 내기로 했습니다.
1997년 대법원 확정 판결 이후 꼭 16년이 걸렸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그동안 검찰의 추징 압박과 국민의 따가운 시선에도 돈이 29만 원 밖에 없다거나, 모두 장인의 돈이었다거나 하는 생뚱맞은 변명으로 납부를 거부해왔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지금껏 해온 말을 들어보시죠.
▶ 인터뷰 : 전두환 전 대통령(1988년 11월, 대국민 사과성명)
- "대통령직에 있으면서 축재했다고 단죄를 받는 사람이 더는 재산에 무슨 미련이 있겠습니까. 이 재산은 정부가 국민의 뜻에 따라 처리해주시기를…"
▶ 인터뷰 : 전두환 전 대통령(1995년 12월, 골목길 성명…검찰 수사 거부)
- "현 정국의 정치적 필요에 따른 것이라고 보아, 저는 검찰의 소환 요구 및 여타의 어떠한 조치에도 협조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 인터뷰 : 전두환 전 대통령[1997년 특별사면, 석방]
- "김대중 대통령을 중심으로 해서 밤낮 가리지 않고 뛰면 전화위복의 전기가 될 것이다. 교도소 생활이라는 게 여러분은 교도소 가지 마시오, 그것만 내가 얘기하고 싶습니다."
▶ 인터뷰 : 전두환 전 대통령(2003년 4월)
- "예금이 30여만 원에 불과하고 보유 현금이 하나도 없다.
▶ 인터뷰 : 전두환 전 대통령(2012년 4월)
- "(추징금은?)
그거 뭐 당국에서 알아서 하겠지."
▶ 인터뷰 : 이순자 여사
- "정치자금을 전부 다 뇌물죄로 했기 때문에, 그 돈을 우리가 낼 수가 없어요."
(아들들이나 친척들이 꽤 돈이 많이 있는...)
"그것은 아니죠, 대한민국은 각자 각자인데 그게 연좌제가 아니죠. 그건 아닙니다. 그거는 모두 이해를 하셔야 되요. 각하 것은 성의껏 다 냈어요. 그러니까 그렇게 알고 계세요."
▶ 인터뷰 : 전두환 전 대통령 (2010년 동남아 순방 직후)
- "항상 정치를 하려면 말과 행동이 같아야 하는 거야. 그때그때 필요한 대로 거짓말하고 그러면 안 되지..."
하나같이 국민 정서와는 거리가 먼 말입니다.
그렇게 버티기로 일관해온 전두환 전 대통령도 자식 사랑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나 봅니다.
사실 전두환 전 대통령 측이 백기를 든 것은 처남 이창석 씨 구속에 이어 둘째 아들 재용 씨가 검찰에 잇따라 소환돼 곧 구속될 상황에 부닥쳤기 때문일 것입니다.
재용씨 다음에는 장남 재국씨, 셋째 재만 씨 등이 줄줄이 소환될 처지였습니다.
이번에는 검찰이 적당히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기에 서둘러 자진 납부 계획을 마련한 것임을 세상 사람들은 이미 눈치 챘습니다.
앞서 노태우 전 대통령 역시 추징금을 모두 냈습니다.
동생과 또 전 사돈과 돈 문제로 소송까지 벌였지만, 어쨌든 전두환 전 대통령보다 먼저 추징금을 완납했으니 그 성의는 인정해야 할까요?
육군사관학교 동기생이자 육사 11기 '하나회'의 리더였던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마지막은 이렇게 국민 앞에 백기를 드는 것이었습니다.
한때는 총칼을 앞세워 군을 장악하고, 그 힘으로 국민 민의와는 관계없이 대통령 권좌에 올라 대한민국을 뒤흔들었지만, 지금은 초라하기 그지없는 모습들입니다.
제11대 대통령 취임식 연설을 잠깐 보겠습니다.
▶ 전두환 전 대통령(제11대 대통령 취임식)
- "민주복지국가는 첫째로 우리 정치 풍토에 맞는 민주주의를 기초로 하고, 둘째 진정한 복지사회 이룩하며, 셋째로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고…"
우리 정치 풍토에 맞는 민주주의는 강력한 군사 독재의 정당화를 의미했고, 정의로운 사회란 군사 독재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잡아들이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피로 물들이며 들어선 정권들이었습니다.
이는 잘못된 민주화였고, 잘못된 정의였습니다.
어쩌면 얼마 전까지도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은 그들 만의 정의 속에 갇혀 새로운 세상이 도래했음을 보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추징금을 내라는 국민의 목소리에 대해 '억울하다니', '동네북이라니' 하는 말을 했는지도 모릅니다.
사법적 처벌은 끝났지만, 재임 시절 부도덕한 방법으로 돈을 받고, 이를 축재하고, 퇴임 뒤 자신들 일가에 나눠 준 그 행위에 대한 처벌은 비로소 이제 끝나게 됐습니다.
그들의 잘못된 정의가 바로 잡히는 순간입니다.
그들의 자발적 선택이 아닌 국민의 정의로운 힘으로 말입니다.
이제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을 완전히 용서해야 할지는 국민이 판단할 몫입니다.
전직 대통령 예우에 따라 사후 국립묘지에 안장할지 여부도 어쩌면 국민이 결정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 논쟁은 차치하더라도, 한국 사회가 여전히 건강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결국 정의를 향해 가고 있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은 너무나 다행스럽습니다.
정의를 세운 건 바로 불의에 침묵하지 않는 우리 자신들이었습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
영상편집 : 김희경 이민경 신민희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