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국가정보원 국정조사 청문회가 열리고 있습니다만 원세훈 전 국정원장,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참석은 무산됐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정보원의 개혁이 필요하지 않느냐. 이런 문제의식들은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국가정보원의 전신인 안전기획부장을 역임한 권영해 전 국방부 장관과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십니까.
▶ 국정조사가 지금 진행 중인데요. 보시는 심정이 착잡하시겠습니다.
-그렇습니다.
▶ 증인으로 출석한 사람들이 대개 후배들이실텐데요.
-그 중에 그런 사람도 있고. 벌써 시대가 많이 지났기 때문에 사실 저하고 연고가 별로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죠.
▶ 기관의 장을 지내셔서 그 기관의 직원으로 있는 사람들이 국회에 불려나가서 야단도 맞고 그러잖아요.
-그래서 국정조사와 특검 등등 이 문제 해결을 위해서 진행되면 참 좋을 텐데 과거 그와 같은 국정조사와 특검을 해서 과연 그 결과가 국민들이 보기에 필요했다고 보는냐. 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국정조사가 시작되었고 그 전 단계로 기관보고가 있었죠. 그 기관보고장에서 있었던 일을 잠깐 말씀드리면 기관 보고장에서 어떤 국회의원이 60년생이고 현재 국정원장은 44년생이에요. 무려 16살이나 차이가 있는 국회의원이 국정원장에게 질의를 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얘기입니다. ‘저게 국정원장 맞아?’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이건 완전히 인격모독이죠. 하도 어이없어 쳐다보니까 ‘왜 째려봐’ 옛날에 보면 시장에서 가다가 깡패들이 어깨 부딪치고 지나가서 쳐다보면 ‘왜 째려봐?’ 시비의 근원 아닙니까. 잘잘못을 가리자는 게 아니죠. 그 다음에 무슨 답변을 하니까 ‘교활하게 답변하지 마라’ 이렇게 되면 국정조사의 분위기와 목적이 과연 무언가를 따지고 해결하고 진지하게 논의하려는 자리냐 아니면..
▶ 지금 준비해 오신 자료가 반말체로 되어 있는데 정말 국정 조사장에서 반말한 그대로입니까?
-막말 그대로입니다. 이 현장에 있었던 국회의원에게 확인을 했어요. 이런 얘기가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데 이 워딩 그대로 맞느냐. ‘맞습니다.’
▶ 나이 차이도 차이지만 기관에 출석했으면 설사 자기보다 어리고 직급이 낮더라도 경어 쓰는 것은 기본 아닙니까?
-그렇죠. 이와 같은 분위기에서 진행되는 국정조사에 증인으로 나오라고 하는 자체가. 증인 신청할 때 보면 한정된 일정 중에서 국정조사의 증인 신청이 무려 수십 명씩 오르락내리락 합니다. 그것은 다분히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라기 보다 불러놓고 망신주고 정치적인 또 하나의 투쟁 방법으로 이것을 이용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여당 쪽도 마찬가지라는 거죠. 이것을 어떻게 됐든 간에 파행으로 이끌어가기 위해서 증인출석 등등에 대해서 동의를 안 하는 형태가 되어 버리는 거 아니냐.
▶ 오늘이 국정조사 중에 청문회 날인데 여야가 합의한 핵심증인이 두 사람입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인데 두 사람 다 불참하겠다고 국회에 통보했습니다. 출석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아니면 불참해도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자기들이 당당하면 나와서 증언해야죠. 굳이 왜 안 나오는지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봤을 때 타당한 이유가 별로 없을 것 같다면 당당하게 나와서 야당이나 청문회에서 불렀으니까 나온다가 아니고 국민을 향해 내가 이런 입장이었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 맞죠. 저는 그렇게 봅니다.
▶ 국정원장이나 국정원 직원들이 나올 때 국정원장이야 다 공개된 인물이고 이미 퇴임한 사람이지만 현직 국정원 직원이 나올 수도 있잖아요. 그 경우 증언의 공개여부가 논란이 되던데 그 점은 어떻게 보십니까?
-국정원이라고 하는 정보기관을 사법적인 잣대로 더욱이 국정조사까지 하는 나라는 동서고금에도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첫 번째 어떤 문제가 생기냐면 정보활동을 위해선 많은 국제적인 정보기관과 협력해야 될 거 아닙니까. 대한민국에 있는 국정원과 정보협력을 했다간 나도 거기에 증인으로 불려갈지 모른다. 그렇다면 누가 협력해주겠습니까? 우리는 전 세계정보기관으로부터 완전히 고립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국정조사라고 하는 형태가 그래서 어렵다는 얘기고요.
▶ 비공개로 해야 된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죠. 비공개까지도 안 갔으면 좋겠지만 그래도 비공개로 해야죠.
▶ 그런 말씀이시라면 야권에서 주장하는 대로 국정원장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하는 정보기관이 도대체 어디에 있느냐 하는 문제제기도 있잖아요.
-그건 또 별개니까요. 요원들의 공개, 또는 직접 나타나느냐 안 나타나느냐 그 부분은 영국이 세계적인 정보기관으로서 MI-5와 MI-6를 갖고 있는데 MI-6나 MI-5의 장은 사실 국민들도 누군지 잘 모릅니다. 007 영화에 보면 손만 나오지 사람 얼굴 나오는 거 보셨습니까? 이런 정도로 거기는 사람이 중요한 겁니다. 그런데 청문회에 나온다? 제가 안기부장으로 가서 국장급 이상 모아서 부부동반 하라고 했더니만 20~30년 국정원에 종사했으면서도 부부끼리도 서로 몰라요. 어떻게 이렇게 되었느냐 했더니 ‘우리는 원래 자신의 신분을 가족들에게도 공개하지 않습니다.’ 고등학교 다니는 아이가 대학시험을 치고 대학에 필요한 서류를 작성할 때 ‘아버지가 매번 문화사 그러는데 그런 회사가 없대. 우리 아버지 혹시 간첩 아니야?’ 자기 아이들에게까지 자신의 신분을 속였던 곳인데 이제 국정원 앞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 지 잘 모르실 겁니다. 지금 국정원에 대해 해체시켜야 된다는 사람들이 국정원 앞에서 일주일 이상씩 천막을 치고 앉아서 들어가고 나가는 자동차의 넘버를 적고 있습니다. 국정원이 필요해서 종사하는 사람들이 명함을 찍을 때 위장명칭으로 쓰는 회사를 전부 공개하겠다고 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국정원의 해체를 주장하는 북한의 지령과 여기에 동조하는 사람들의 행위라고 볼 수도 있는 거 아니냐.
▶ 국정원법에 국정원 기관을 보호하기 위한 조항 같은 것은 없습니까?
-국정원에 종사하는 사람들 스스로가 그와 같은 것을 하지 않도록 비밀 준수규정이 있지만 외부에서 하는 일까지 통제하게 되면 국회에서 그 입법이 통과되겠습니까? 그러니까 국정원과 국정원의 장이 이런 지경에 놓여있기 때문에 그런 차원에서 국정원이 어차피 국정조사를 한다고 했으니까 하되 철저하게 그 정신에 입각해서 비밀로 진행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그리고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당당하게 나와서 증언하는 것이 좋다?
-그렇죠.
▶ 그런데 지금 민주당이 장외투쟁을 하고 있잖아요. 남재준 국정원장의 해임을 요구하고 있어요.
-아마 남재준 원장을 해임시키고 박 대통령은 사과하라는 얘기겠죠. 그런데 그 일 자체가 댓글 일들이 전부 전 정권에서 있었던 건데 남 원장이 거기에 대해 책임을 지고 해임까지 되어야 하는 것인지 저는 이해가 잘 안갑니다만 저는 그 기관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개혁되어야 하는 부분들이 많다고 봅니다. 비단 정보기관뿐만 아니라 모든 공직사회와 정치권과 사회에 개혁해야 할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보기관인 국정원이 중앙정보부부터 시작해서 그동안 개혁의 기록을 보면 1980년도에 김재규의 박정희 시해 사건 이후 대대적인 것이 있었습니다.
▶ 전두환 세력이 거의 중정을 무력화시키고 보안사가 그것을 대체하는..
-그렇죠. 그래서 중앙정보부라는 이름도 안전기획부로 바꿨죠. 그런데 내용을 놓고 보면 사실 정보기관의 임무와 기능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국가에서 필요한 정보기관이었기 때문에 별로 큰 변동이 없었고 대부분 보면 인적 청산으로 갔습니다. 두 번째 있었던 것이 1993년 문민정부가 출범하면서 개혁이라고 까진 아니었지만 많은 인적 청산이 있었습니다.
▶ 그때가 안기부의 문민화라고 해서 처음으로 민간인 김덕 교수를 안기부장으로 임명했던 때죠?
-그렇죠. 저는 그 다음으로 갔는데요. 그때 김영삼 대통령이 야당 생활을 오래 하시다가 대통령이 되셨기 때문에 야당 시절에 정보기관이 정치적으로 너무 관여했다. 그래서 정치 관여에 대한 사람을..
▶ 그때도 인적청산이었군요?
-그렇죠. 그 다음으로 98년도에 소위 국민의 정부가 출범한 이후엔 완전히 명칭까지 바꾸면서 흔히 말하길 국정원에서 580여명 검찰과 경찰 등등 대공정보수사에 종사했던 사람들 수백 명 내지 수천 명이 인적청산이 되었습니다.
▶ 그 과정에서 대북 휴민트가 무너졌다는 분석들이 나오는 거군요.
-그렇죠. 결국 임무 기능의 변화보다 인적 청산이 주가 되었죠. 2008년에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다음에도 제가 알기론 내부적으로 많은 보직 변경 등으로 인해서 많은 인적 청산이 있었다고 봅니다. 그동안 여러 번 정보기관이 개혁해야 된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임무 기능 자체에 손댄 것은 별로 없습니다. 거의 다 인적 청산이었고 정치에 관여하지 마라, 정치에 관여했던 사람들..
▶ 설명을 쭉 들어보면 역대 정권마다 국정원 개혁한다고 하면서 인적 청산을 하게 된 것이 국정원 직원들이 선거 때마다 자꾸 여기 줄 서고 저기 줄서고 그래서 자업자득인 측면이 혹시 없습니까?
-있죠. 국정원 스스로는 자업자득이 된 결과가 되었고. 인적 청산 하면서 바꾼 사람들에 자기 입맛에 맞는 사람들만 갖다 놓았으니까. 결국 정치권이 우리에게 잘 협력하고 줄서면 다음에 몇 단계 보직도 올라가고, 그렇지 않으면 잘리던가 보직 변동 된다. 이것이 비단 국정원뿐만 아니고 거의 모든 공무원 사회에서 만연해 있습니다. 이제 이 틀을 깨야 된다는 말이죠.
▶ 어떻게 깰 수 있을까요?
-성실하게 근무하는 공무원 사회에서 그들 스스로가 정치적으로 5년마다 바뀌는 정권에서도 내 보직은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제일 원하고요. 그러니까 줄 설 필요가 없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국정원을 포함해서 공직사회도 정치적인 중립을 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에 확실하게 못을 박아야 합니다. 그 대신 정권이 바뀌더라도 정치권에서 낙하산식으로 공무원들의 특채다 도는 공채다 이런 형태로 해서 집어넣지 마라. 그걸 국가 제도적으로 막아야 합니다.
▶ 정비도 하고 제대로 자격을 갖춘 사람들로 재구성해서 정치에 흔들리지 않도록 해야 된다는 말씀이시군요?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외국의 정보기관에서도 정보요원, 사람이 제일 문제입니다. 아무리 그런 유혹이 있더라도 ‘나는 내 임무가 중요하니까 정치권 돌아보지 않겠다.’ 이런 사람들을 뽑아야죠. 공무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첫 번째 조건으로 애국심과 충성심이 투철한 사람들로 뽑아야 합니다. 두 번째로 철두철미한 직업의식에 충실한 사람들이 필요한 거죠. 세 번째로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인내력이 있는 사람, 네 번째로 업무에 대한 전문성입니다. 업무에 대한 전문성보다 앞의 세 가지가 더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 정보요원들의 필수 조건입니다. 그리고 비밀 준수에 관한 문제. 자기가 업무상에 취급했던 비밀은 평상시 정치권 이해를 위해서도 제공하지 말아야 하고 퇴임이후에도 무덤까지 가지고 간다, 하는 생각을 갖는 사람들을 장기적으로 물색해야 합니다. 물색이라는 용어가 저도 그 기관에 가서 상당히 생소했어요. 그런데 물색이라는 용어가 미국 CIA에서부터 나온 얘기랍니다. 정보요원을 선발할 때 각 분야별로 전문 요원들을 미리 고등학교 내지는 대학시절부터 관찰합니다. 그래서 그 대학에서 담당 주임 교수들로부터 추천을 받고.
▶ 장기간에 걸쳐서 찾아내는 군요?
-그렇죠.
▶ 한마디로 국정원 요원들은 국정원이 마지막 직장이라는 생각을 가진다면 큰 문제가 없겠네요.
-그렇죠.
▶ 국정원 끝낸 다음에 국회의원 되겠다, 어디 회사에 가겠다, 이런 생각을 안 하면. 그게 바로 애국심이군요?
-그럼요. 군인들도 그래야 될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모든 공무원들이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 알겠습니다.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지은 인턴기자 (mbnreporter01@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