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시작하려는 사람들 너머에는 언제나 떠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겠죠.
유시민 전 통합진보당 대표가 오늘 정계 은퇴선언을 했습니다.
"너무 늦어버리기 전에, 내가 원하는 삶을 찾고 싶어서 직업으로서 정치를 떠납니다."
그가 트위터에 남긴 말입니다.
이번 4월 재보궐 선거에 출마할 것이라는 소문이 돈 터라 그의 갑작스러운 정계 은퇴 선언은 충격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내고, 경기도지사 선거에도 나갔던 유시민 전 의원이 갑자기 정계를 떠나는 이유는 뭘까요?
주변 사람들 말을 들어보면 그의 정계 은퇴는 갑작스러운 게 아니라고 합니다.
지난해 통합진보당 분당 사태와 야권의 대선 패배 이후 자신의 진로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는 겁니다.
지난해 통합진보당 분당 사태를 겪었을 때 MBN 뉴스 M에 출연했던 유시민 전 대표의 얘기를 들어보겠습니다.
▶ 인터뷰 : 유시민 / 전 의원 (2012년 11월5일)
-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죠. 제가 망했다는 건 객관적인 사실이죠. 왜냐면 선거 나가서 5년 동안 세 번 떨어지고 더 좋은 당을 만들겠다고 합쳤다가 또 우리끼리 문제, 내부의 문제를 민주적으로 처리 못 해서 갈라서고 했는데 망했다는 표현 말고 다른 무엇으로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건 그거고 그럼에도 아주 정치를 그만두지 않는 한 뭐라도 저의 생각에 나라에 보탬이 되고 국민의 행복을 증진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을 해 가면서 반성할 건 해야죠."
'망했다'는 말이 의미심장하게 들립니다.
그의 말대로 유시민 전 의원은 5년 동안 선거에 세 번 출마해 모두 떨어졌고, 통합진보당 창당을 주도했는데, 그 역시 분당 사태로 가슴에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를 버티게 한 대선 승리에 대한 열망도 물거품이 됐습니다.
이제 더는 그를 정치권에 붙잡아 둘 희망은 없었던 걸까요?
정치인 유시민은 없지만, 글을 통해 또 방송을 통해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새누리당 비대위원을 지내고, 박근혜 캠프에서 정치쇄신특위위원을 지냈던 이상돈 중앙대 교수도 정년 4년을 남기고 학교를 떠났습니다.
정치에 참여하는 교수들, 이른바 '폴리페서' 논란이 부담스럽다며 스스로 사직한 것입니다.
이상돈 교수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 인터뷰 : 이상돈 / 중앙대 법대 교수
- "지난 1년 동안 본업이 주객전도 됐습니다. 내가 생각해도 도를 넘었습니다. 교수라는 직업은 현실과는 좀 떨어져 있는 게 맞다고 봅니다. 현실 참여도 떨어져서 하는 게 원칙이죠."
프랑스의 유명한 사회학자인 부르디외는 '학문의 장이 아닌, 정치 참여와 언론을 통해 명성을 쌓는 학자들을 삼류 지식인'이라고 혹평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 정치권에는 상아탑에 있어야 할 학자들이 너무 많이 보입니다.
이번 19대 국회에도 무려 32명의 국회의원이 교수직을 겸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에서 일할 류길재 통일부 장관 내정자,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 내정자, 유민봉 청와대 국정기획수석도 현직 교수들입니다.
이들이 공직과 국회에서 헌신적으로 국가에 봉사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념 편향성을 드러낸 이들이 가치 중립적인 상아탑으로 돌아와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수 있을까요?
정치가 하고 싶다면, 자신의 지식을 현실 정치에 반영시키고 싶다면, 학교를 떠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걸까요?
그들은 학교를, 교수라는 자리를 정치를 끝내고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는 든든한 '보험'으로 생각하는 걸까요?
올해 초 국회에서는 변호사, 교수들의 국회의원 겸직을 금지하는 정치쇄신법안이 제출됐습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흐지부지됐습니다.
심지어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내정된 진 영 인수위 부위원장은 국회의원의 장관 겸직을 꼭 금지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진 의원은 앞서 지난 2009년 국회의원의 장관직 겸직을 금지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와 생각이 바뀐 이유는 뭘까요?
어쨌든, 국회의원이나 정치인, 장관들은 너무 많은 것을 가진 듯합니다.
남들은 하나 갖기도 어려운 변호사와 교수라는 직함을 부수적으로 하나씩은 가진 것 같으니 말입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
영상편집 : 신민희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