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 등록일은 다가오는데, 협상은 언제 다시 재개될지 모르는 살얼음판 같은 상황을 반전시킨 건 문재인 후보 쪽이었습니다.
오전 11시 이해찬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가 전원 사퇴하면서 안 후보 쪽이 요구해 온 '민주당의 혁신과 쇄신 의지'를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문재인 후보가 기자회견을 열어 단일화 방식을 전적으로 안 후보에게 맡긴다는 폭탄선언을 했습니다.
문재인 후보의 말입니다.
▶ 인터뷰 : 문재인 / 민주통합당 후보(11월18일)
- "안 후보 측과 조속한 단일화논의 재개를 촉구합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이미 다양한 단일화 방안의 모색은 시간상 불가능해졌습니다. 여론조사 방식으로 한다고 해도 제대로 된 논의와 실행이 어려운 상황이 됐습니다. 신속한 타결을 위해서 여론조사 방식이든 여론조사 +@ 방식이든 단일화 방안을 안 후보 측이 결정하도록 맡기겠습니다."
민주당 당 지도부의 사퇴가 안 후보 쪽이 원하던 쇄신이든 아니든 민주당 쪽으로서는 당장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는 것을 안 후보 쪽에 보여줬다는 평가입니다.
단일화 방식 역시 전적으로 안 후보 쪽이 결정하라고 던져 준 것은 문 후보의 특유의 '통 큰 양보'입니다.
이쯤 되면, 안 후보 쪽으로서도 화답하지 않을 수 없을 법했습니다.
계속 협상을 보이콧하는게 오히려 부담스러운 상황이 됐을 법합니다.
결국, 안 후보도 문 후보와 당장 만나자는 제안을 던졌습니다.
안 후보의 말입니다.
▶ 인터뷰 : 안철수 / 무소속 후보(11월18일)
- "문재인 후보와 제가 빠른 시일 내에 만나서 실무자에게 맡기지 말고 두 사람이 함께 뜻을 모아 해결하자고 동시에 같은 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광주 일정 끝내고 서울 올라가는 대로 빠른 시간 내에 만나서 해결하겠습니다. 단일화에 대해서는 제 모든 것을 걸고 반드시 이루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두 후보는 어제저녁 8시에 만나 새 정치 선언 합의를 이끌어냈고, 단일화 협상팀도 다시 가동됐습니다.
삐걱 거리는 단일화 협상이 9시간 만에 다시 제자리를 찾은 셈입니다.
정치평론가들과 언론은 누가 얻은 게 더 많은지 계산하느라 분주합니다.
두 후보는 이런 식의 셈법을 좋아하지는 않겠지만 말입니다.
어쨌든, 누가 얻은 게 더 많을까요?
협상 중단 전후에 한 여론조사를 보면 대체로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이 올라가고, 안 후보의 지지율은 떨어졌습니다.
리얼미터가 전국 성인 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17~18일 한 여론조사를 보면(유선전화 및 휴대전화 임의번호걸기(RDD) 자동응답(ARS) 방식,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는 ±2.5%포인트),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는 44.6% 대 36.1%로 문 후보가 앞섭니다.
박근혜 지지층을 제외한 조사에서도 문 후보는 1.8%포인트 상승한 48.4%, 안 후보는 3.2%포인트 하락한 43.1%로 문 후보가 5.3%포인트 우위에 섰습니다.
양자 대결에서도 문 후보는 박근혜 후보를 47.3% 대 45.2%로 앞섰습니다.
눈에 띄는 것은 박근혜-안철수 양자대결입니다.
줄곧 앞서던 안 후보가 박 후보에게 44.9%대 49%로 역전됐습니다.
문재인-안철수 두 후보의 지지율이든, 박 후보와 경쟁력이든 문 후보가 모두 앞선 결과입니다.
이 여론조사 하나만 놓고 의미를 따질 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안 후보 쪽으로서는 썩 달갑지 않은 흐름이 이어져 오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런데 혹시 문재인 후보 쪽도 이런 흐름을 알고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해 단일화 방식을 모두 양보하겠다고 한 것은 아닐까요?
여론조사 방식이든, 여론조사 + 알파든 어떤 방식으로 하더라도 단일 후보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깔려 있었던 것일까요?
그게 사실이라면 문 후보의 통 큰 양보는 계산된 통 큰 양보일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후보 단일화 협상은 다시 시작됐고 이번 주에 방식이 결정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재인 후보 쪽에서는 여전히 '문재인 대통령 - 안철수 총리'의 연합정부, 공동정부에 대한 미련이 많은 것 같습니다.
문 후보는 정권교체 이후 개혁에 대한 비전이나 방향을 제시하는 것과 함께 국정운영을 책임지고 공동으로 해 나가자는 겁니다.
연합 정부에 합의한다면 의외로 단일화 협상은 그들 표현대로 '아름답게' 끝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안 후보 생각은 다른 것 같습니다.
안 후보는 대통령과 총리의 역할 분담에 대해 문 후보와 얘기해 본 적도 없고, 그런 종류의 합의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권력 나눠먹기로 비칠 수도 있으니 연합정부 역시 쉬운 것은 아니겠죠.
대선은 꼭 30일 남았지만, 두 후보의 운명은 일주일 안에 판가름 날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은 아름답게 퇴장해야 하고, 다른 한 사람은 그 사람의 몫까지 뛰어 대선에서 승리해야 하는 부담을 갖게 됩니다.
마지막 주사위는 던져졌고, 그 결과는 어떻게 나올까요?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 MBN 뉴스 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