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설에 오를까 임기 내내 조심했다고 하지만, 형님의 권력은 곳곳에서 드러났습니다.
권력 주변에는 그 권력을 쫓아 모여든 불나방들이 있기 마련이죠.
대검 산하 저축은행 비리 합동수사단이 다음 달 3일 이상득 전 의원을 소환한다고 밝혔습니다.
임석 솔로몬저축은행 회장으로부터 영업정지를 막아달라는 부탁과 함께 수억 원을 받은 혐의입니다.
임석 회장과 이상득 전 의원은 같은 소망교회 교인으로 친분을 쌓았다고 합니다.
이상득 전 의원은 또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으로부터 금감원 검사 무마 청탁과 함께 현금 14억 원과 금괴, 그림 등을 받은 혐의도 받고 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장롱 속 7억 원 사건, 포스텍이 부산저축은행에 500억 원을 투자하는 과정에 개입한 의혹, 코오롱 그룹에서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 김학인 방송예술진흥원 이사장 2억 원 수수의혹 등도 있습니다.
이상득 전 의원 측은 "문제 될 일을 한 적이 없고, 검찰에 나가서 충분히 설명하면 오해가 풀릴 것'이라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살아있는 권력, 현직 대통령의 형에게 검찰이 공개소환을 통보한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이 전 의원 측의 기대와 달리 단순 소환조사는 아닐 듯합니다.
어느 정도 혐의를 입증하지 못한 상태에서 대통령의 형을 소환할 만큼 검찰이 무모하지는 않을 테니까 말입니다.
그렇다면, 관련자 조사를 끝낸 검찰이 사실상 이상득 전 의원을 형사처벌하는 순서에 들어갔다고 보는 게 타당할 듯싶습니다.
현직 대통령의 형이 구속된다면 청와대가 받는 충격파는 엄청날 듯합니다.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2차관에 이어 형님마저 구속된다면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 축이 무너지는 것과 같을지 모르겠습니다.
핵심 권력 3인방의 말로가 이처럼 비참할 듯 그 누군들 알았겠습니까?
청와대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았습니다.
올 것이 왔다는 말도 들립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연합뉴스 기자를 만나 '이상득 전 의원의 소환은 모양새가 나쁜 것뿐 아니라 보통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여러모로 힘든 시기를 맞았다'고 털어놓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찌해볼 도리가 없습니다.
그냥 검찰 수사를 지켜볼 수밖에요.
일각에서는 형님 문제를 빨리 털고 가는 게 좋다는 의견도 있다고 합니다.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는 그날까지 계속 형님 문제에 발목을 잡히느니, 차라리 지금 모든 걸 터는 게 낫다는 걸까요?
청와대를 짓누르는 것은 형님 문제뿐이 아닙니다.
여야는 원내 개원 협상을 타결 지으면서 불법 민간인 사찰은 국정조사를, 이 대통령 내곡동 사저 의혹은 특검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야권은 민간인 불법 사찰의 몸통으로 이명박 대통령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야권이 이명박 대통령의 개입 여부를 밝혀낼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지만, 국정조사 내내 이 대통령의 이름은 신문과 방송에 연일 등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친박계가 장악한 새누리당 역시 청와대를 보호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하니 청와대는 고립무원인 셈입니다.
내곡동 사저에 대한 특검도 곤혹스럽습니다.
검찰이 관련자를 모두 무혐의 처리했지만, 이를 믿지 못하겠다는 국민 정서가 강한 게 사실입니다.
역시 특검이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지 못한다 하더라도 청와대의 잘못된 처신과 아들 이시형 씨의 이름은 세인들의 머릿속에 강하게 되새겨질 게 뻔합니다.
한일정보보호협정 밀실 체결도 파장이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중요한 이런 문제를 국회에 보고도 없이, 그것도 대통령이 해외에 나가 있는 틈을 타 국무회의에서 은근슬쩍 처리했다는 것이 여야, 그리고 국민의 공분을 산 셈입니다.
이해찬 민주통합당 대표와 김을동 새누리당 의원의 말을 차례로 들어보겠습니다.
▶ 인터뷰 : 이해찬 / 민주통합당 대표
- "저는 이 정부가 무도한 짓 많이 해서 무슨 짓 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그런데 이렇게 대한민국 정보를 일본 자위대에 갖다 바치는 일을 몰래 할지는 예상 못 했다. 이건 식민지로 전락한 1945년 이전에나 있을 수 있는 일들이 벌어진 것이다. 민주통합당이 단호히 막지 않으면 수치스러워서 얼굴 들 수 없다."
▶ 인터뷰 : 김을동 / 새누리당 의원
- "지금이라도 국회에 나와서 한일 군사협정 체결 문제를 국민 앞에서 당당하고 떳떳하게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새누리당 지도부도 정부가 당을 무시하고 국회를 무시한 처사를 쉽게 말고 강력히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청와대로서는 단순히 레임덕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악재가 한꺼번에 터졌고, 어디서부터 수습해야 할지 답도 보이지 않습니다.
다리를 절뚝거리는 오리가 아니라 피를 흘리는 오리, 그러니까 '블러드덕'이라는 씁쓸한 말도 들립니다.
청와대의 불행은 청와대의 불행에서 그치는 게 아니겠죠?
경제 위기로 먹고살기 힘든 국민의 마음은 더 큰 상처를 입겠죠.
정권 말이면 늘 이런 모습을 봐야 하는 게 정말 우리 국민의 숙명인 걸까요?
올 연말 대선에서는 자신과 주변을 잘 다스릴 줄 아는, 그래서 이상한 일로 국민 가슴에 상처를 주지 않을 사람을 뽑아야 할 것 같습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 김형오 / hokim@mb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