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의원의 제명 얘기가 처음 나온 것은 엄밀히 말해 비례대표 부정 경선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두 의원의 국가관과 사상 문제 때문에 제명해야 한다는 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사태의 본질이 갑자기 이상해졌습니다.
박근혜 새누리당 전 비대위원장은 지난주 언론과 인터뷰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꺼냈습니다.
들어보시죠.
▶ 인터뷰 : 박근혜 / 새누리당 전 비대위원장(6월1일)
- "국회라는 곳이 국가의 안위가 걸린 이런 문제를 다루는 곳인데, 기본적인 국가관을 의심받고 또 국민도 불안하게 느끼는 이런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사퇴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그런 사퇴가 되지 않으면 그렇게(국회 제명) 가야 된다고 봅니다.
박 전 위원장이 국가관을 거론한 것은 보수표를 의식한 것으로 보입니다.
국민 다수가 이석기 김재연 의원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임을 고려하면 손해날 게 없다고 판단한 것일까요?
여기다 통합진보당과 야권연대를 한 민주통합당도 곤혹스러운 처지니, 새누리당으로서는 '국가관'을 거론하면서 일석 이조효과를 노린 셈입니다.
박 전 위원장이 두 사람 문제는 민주통합당도 큰 책임이 있다고 직접 언급한 것도 일종의 대선 전략인 셈입니다.
그런데 이런 전략이 잘 먹혀들까요?
박근혜 전 위원장이 '국가관'을 꺼낸 순간 그것은 부메랑이 되어 박 전 위원장을 해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바로 유신독재, 군사정부의 반공 이데올로기를 떠올린다는 얘기입니다.
강기갑 통합진보당 비대위원장의 얘기입니다.
▶ 인터뷰 : 강기갑 / 통합진보당 비대위원장 (6월1일)
- "우선 새누리당에게는 제 눈의 것 먼저 치워라 종북 색깔 말고 다른 레퍼토리 없나? 30년째 같은 노래 부르시는데 국민 여러분에게 반공이데올로기로 몰고 가지 마십시오."
민주통합당은 박근혜 전 위원장이 2002년 방북해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을 면담하고, 김일성 생가인 만경대를 방문한 것을 꼬집었습니다.
아울러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은 5.16 군사쿠데타도 문제로 삼았습니다.
박용진 민주통합당 대변인의 말입니다.
▶ 인터뷰 : 박용진 / 민주통합당 대변인(6월3일)
- "왜 만경대에 갔고, 왜 주체사상탑에 방문했는지 답해야 할 것 같습니다. 더불어 쿠데타를 고무 찬양하는 것과 관련해서도 명확한 견해를 밝히셔야 할 것 같습니다. 헌법을 지키시겠습니까? 쿠데타를 찬양하시겠습니까?"
박 대변인은 김일성 주석 생가와 주체사상탑에 다녀온 정치인이 국가지도자가 돼서는 안 된다는 게 새누리당과 박근혜 전 위원장의 생각이 아니냐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국가관' 논란에 이어 이번에는 임수경 민주통합당 의원의 발언이 논란입니다.
지난 1일 임수경 의원에게 폭언을 당했다는 한 탈북대학생이페이스북에 공개한 글입니다.
'어디 근본도 없는 탈북자 XX들이 굴러와서 대한민국 국회의원한테 개겨?'
또 임 의원은 과거 학생운동을 함께했던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을 가리켜 '하태경 그 변절자 XX 내 손으로 죽여버릴 거야'라고 말했다는 겁니다.
사실 진위와 배경을 좀 더 따져봐야 하겠지만, 임 의원이 사과글을 올린 것을 보면 백 씨의 주장이 모두 틀린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임수경 의원은 1989년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대표로 북한을 방문했던 인물입니다.
지금 이석기·김재연 의원으로 논란이 되는 NL 민족해방계열에서는 과거 '통일의 꽃'으로 칭송받았습니다.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은 임수경 의원과 마찬가지로 한 때 NL운동권의 핵심이었지만, 이후 북한 3대 세습과 인권 문제를 강하게 비판하는 쪽으로 바뀌었습니다.
둘 다 사면복권돼 국회의원이 됐지만, 서로 다른 길을 걸으면서 마음의 앙금이 남아 있었던 것일까요?
임수경 의원의 말입니다.
▶ 인터뷰 : 임수경 / 민주통합당 의원
- "제 보좌관들에게 "북한에서는 총살감이다" 라는 말 한 것에 대해 감정이 격해 져서 나온 반응이었고, 변절자 였던 발언 역시 학생운동 했던 하태경 의원에 대한 것이고 탈북자 의원은 아니었다. 평소의 저의 소신과 생각이 탈북자 분들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 그런 점을 이해했으면 좋겠고. 북한 이탈 주민 대한민국에서 잘 정착하고 안전하게 살기 바란다는 점은 진심이다."
그러나 하태경 의원은 임 의원이 이중 플레이를 한다며 정식 사과를 요청했습니다.
▶ 인터뷰 : 하태경 / 새누리당 의원(6월4일)
- "왜 탈북자들이 변절자들인지, 탈북자들이 누구를 변절한 것인지 이부분을 사과하고 해명하는게 핵심 내용입니다.이 부분은 빠져 있어요. 자기가 변절자라고 주장한 것은 탈북자가 아니고 하태경만 변절자라고 그랬다 이렇게 말을 돌리고 있어요."
탈북자 단체와 보수 단체들도 임 의원의 사퇴를 요구하며 격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민주통합당은 이번 일로 자칫 통합진보당과 같이 '종북 세력' '주사파'라는 꼬리표가 옮아붙지 않을까 우려하는 눈치가 역력합니다.
민주통합당 내에도 과거 NL계열의 학생운동을 한 인사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정치권이 종북 논란으로 난타전을 벌이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런 종북 논란과 사상 검증이 과연 건강하고, 우리 정치권에 도움이 될까요?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주장을 듣고 있노라면, 대한민국 국회는 이미 종북주의자들에게 점령당했다는 착각마저 듭니다.
이러다가는 정말 1950년대 미 의회에서 공산주의자들을 찾아내 축출하자고 했던 매카시즘이 대한민국 국회에서 다시 재연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국민은 2012년에 살고 있는데, 정치권은 여전히 1950년대 살고 있는 듯합니다.
19대 국회가 시작됐지만, 이런 소모적 논쟁으로 민생 법안을 다룰 원 구성도 하지 못한 채 말입니다.
합리주의와 냉철한 토론 대신 감정적 편 가르기와 낡은 이념 논쟁이 부활하는 듯한 올해 대선.
글쎄요. 국민은 과연 어떤 판단을 하고, 누구를 선택해야 할까요?
그것은 행복한 선택일까요?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 김형오 / hokim@mbn.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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