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과 날치기로 점철된 18대 국회에 대한 국민의 실망이 워낙 컸기에 '19대 국회는 좀 다르겠지'라는 기대가 묻어납니다.
MBN이 벌인 여론조사에서도 이런 바람은 잘 드러납니다.
19대 국회가 가장 신경 써야 하는 부분에 대해 국민은 물가 안정과 일자리 창출 등 민생경제 안정을 꼽았습니다.
반면에 정치권에서 민감하게 반응하는 정치개혁이나 개헌, 사회통합은 낮은 순위를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19대 국회 개원 첫날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박근혜 루머'와 '검증'으로 첨예하게 부딪혔습니다.
먼저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말부터 들어보시죠.
▶ 인터뷰 : 이한구 / 새누리당 원내대표
- "이제부터는 루머 만들기보다는 정책 만들기 경쟁을 하자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국민 짜증 나게 경쟁 상대 헐뜯기보다는 국민 희망 찾게 민생 돌보기, 나라 지키기 하는 그런 모습을 같이 보이자고 제안하고 싶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최근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이 저축은행 로비스트 박태규 씨를 만났다는 얘기를 들었다는 주장과 박 전 위원장 뒤에 7인회가 있다는 의혹을 잇달아 제기하고 있습니다.
이한구 원내대표는 이것을 '루머 만들기'로 폄하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면 박지원 원내대표의 얘기도 들어보시죠.
▶ 인터뷰 : 박지원 / 민주통합당 원내대표
- "독재자의 딸로 누가 감히 나를 검증하느냐. 이런 자세다. 우리 민주당 후보들도 언론과 국민이 검증해야 한다. 우리는 야당이기에 박근혜 전 위원장에 대해서 끊임없는 검증을 계속 할 것이다. 누가 감히 나를 검증하느냐 독재자의 딸식 발언은 이제 자기도 하고 있다. 우리는 기억한다. BBK얼마나 혹독하게 검증했나. 모두 이해했으면 한다."
'정당한 검증'을 '루머 만들기', '네거티브'로 폄하하는 것은 박근혜 전 위원장이 독재자의 딸이기에 그러하다는 뜻일까요?
새누리당 일부에서는 대선 후보도 아닌 박지원 원내대표가 왜 박 전 위원장 '검증 의혹'을 제기하느냐는 말도 들립니다.
쉽게 말해 대선 주자가 아닌 박지원 원내대표는 '급이 맞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급이 맞지 않는' 검증은 새누리당 내에도 있는 것 같습니다.
바로 안철수 교수에 대한 검증 의혹입니다.
심재철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종북 주사파에 대해서 안 원장이 무슨 생각을 가졌는지 밝히라고 촉구했습니다.
들어보시죠
▶ 인터뷰 : 심재철 / 새누리당 최고위원(5월29일)
- "과연 안철수 교수는 종북주사파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국민 앞에 당당히 밝혀야한다. 이것이야말로 이것이 대한민국의 안보에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종북주사파라는 바이러스에 대해서 과연 백신은 있는 것인지 분명히 밝혀야 할 것이다."
심재철 최고위원은 안철수 원장과 같은 급일까요?
어쨌든 심재철 의원은 전 세계 대학교수 가운데 대변인을 둔 사람이 없다며 곧바로 정치활동을 하겠다는 것을 드러낸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런 만큼 이제는 비전과 철학을 당당히 밝히고 국민 앞에 검증받으라는 겁니다.
안철수 원장은 오늘 오후 부산대에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이라는 제목으로 특강을 합니다.
2004년 출간한 책 제목이기도 한데, 이 제목만 놓고 보면 안철수 원장의 비전과 정치 철학이 오늘 강연에서 드러날지도 모르겠습니다.
애매한 화법에서 탈피해 분명한 생각과 신념을 밝힐까요?
그러나 오늘 이런 그의 분명한 대선 출마 선언을 기대했다가는 또 실망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MBN 여론조사에서 드러나 안 원장의 지지율만 놓고 보면 현재 야권에서 박근혜 전 위원장을 대적할 맞수로 손색이 없습니다.
이 지지율은 언제까지 이어질까요?
일찍 대선 출마를 하고 일찍 검증이 시작돼 이런저런 흠집이 생겨도 지지율이 이어질까요?
이 때문에 안 원장 측은 굳이 서둘러 대선 출마 선언을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박근혜 전 위원장도, 문재인 고문도 대선 출마를 안 했는데 말입니다.
그러나 정말 대권에 관심이 있다면 국민 검증은 피해갈 수 없습니다.
특히 뒤늦게 정치에 뛰어든 주자라면, 서둘러 대선 출마 선언을 하고 검증을 받는 게 낫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안 원장의 오늘 강연이 궁금해지는 이유입니다.
박근혜 전 위원장과 안철수 원장이 검증 요구를 받는 사이 다른 유력 대선주자인 문재인 고문의 행보도 조금씩 빨라지고 있습니다.
문재인 고문은 19대 개원 첫날인 오늘 여수 엑스포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호사가들은 부산을 중심으로 영남에서 기틀을 잡은 문 고문이 호남 민심을 잡으려고 이렇게 일정을 짠 것 아니냐고 얘기를 합니다.
문 고문 측은 '참여정부 때 여수엑스포를 유치했기 때문에 초청받은 것이다. 특별한 정치적 의미는 없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혹시 문재인 고문 측도 호남 민심을 확인하고 싶어하지는 않았을까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2002년 광주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대선 후보가 됐듯이 문 고문 측도 호남이 자신을 지지하는지 궁금해하지 않을까요?
호남 민심 역시 문재인 고문을 알고 싶어하지 않을까요?
정세균 고문이 있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민주통합당 내 호남을 대표할 만한 마땅한 대선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문재인 고문이 자신들이 지지할 만한 사람인지 알고 싶어하지 않을까요?
이를 '문재인 고문에 대한 호남의 검증'이라고 표현하면 너무 과한 걸까요?
오늘의 호남 방문이 그런 목적의 연장 선상인지는 모르겠지만, 대선 출마 결심을 굳힌 듯한 문 고문으로서는 호남 민심을 얻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듯합니다.
그래서 문 고문의 호남 발길은 앞으로도 잦아질 것 같습니다.
대통령과 최고 권력, 그것은 다가오는 모든 의혹과 검증을 극복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대선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검증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고, 그것은 회피한다고 회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닌 듯합니다.
모든 것을 바쳐야만 얻을 수 있는 만큼 그 과정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해도 어쩔 도리는 없는 듯합니다.
가시밭길에 이제 막 들어선 세 사람이 저 길의 끝자락에서 과연 웃을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입니다. [ 김형오 / hokim@mbn.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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