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비대위와 통합진보당 비대위 역시 그렇습니다.
새누리당은 오늘 전당대회를 열어 새로운 지도부를 뽑습니다.
5개월 동안 이어져 왔던 박근혜 비대위 체제가 막을 내리는 셈입니다.
박 위원장은 어제 트위터에 '지난 5개월 동안의 일들을 생각하면 감회가 새롭다'고 썼습니다.
비상대책위원회란 말 그대로 당이 심각한 위기를 맞았고, 그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최후의 카드입니다.
돌이켜 보면 박근혜 위원장이 등장하기 전 새누리당은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습니다.
연이은 재보궐 선거 패배,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심판론, 박희태 전 국회의장의 전당대회 돈 봉투 파문, 선관위 디도스 홈페이지 공격 등으로 당은 아수라장이 됐습니다.
도저히 4개월 뒤에 있을 총선에서 승리를 기대할 수 없는 패배주의가 당을 휘감았습니다.
하지만, 박근혜 비대위 체제가 등장하면서 당은 달라졌습니다.
김종인, 이상돈, 이준석과 같은 예상 밖 인물을 비대위원으로 영입했고, 한나라당 당명을 버렸습니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보수를 상징하는 파란색을 버리고, 좌파를 연상시키는 빨간색을 채택했습니다.
공천 과정에서는 이명박 정부 실세 용퇴론을 꺼내며 책임 있는 친이계 의원들을 대거 탈락시켰습니다.
반발도 컸지만, 박근혜 위원장의 무게감을 넘어서지는 못했습니다.
야당의 자충수를 많이 두긴 했지만, 어쨌든 결과는 예상 밖의 대성공이었습니다.
총선에서 많은 이들의 예상을 뒤엎고 152석을 차지했습니다.
이상돈 비대위원의 말입니다.
▶ 인터뷰 : 이상돈 / 새누리당 비대위원(5월8일)
- "제가 보기에는 이번 쇄신과정을 통해서 우리 박근혜 위원장의 정치력, 뿐만 아니라 국민적 지지가 상당히 입증이 되었다고 봅니다."
박근혜 비대위 체제가 끝나는 오늘 통합진보당은 강기갑 비대위 체제가 시작됐습니다.
석고대죄를 한 강기갑 비대위원장의 말을 들어보시죠
▶ 인터뷰 : 강기갑 / 통합진보당 비대위원장
- "비대위원장으로서의 인사보다 국민 여러분께 사죄하는 마음으로 먼저 고개를 숙입니다. 석고대죄를 위하여 만 배 사죄를 한다고 해도 당원 동지들과 국민 여러분의 마음을 풀 길이 없는 현실입니다."
강기갑 위원장이 맞이한 통합 진보당은 박근혜 위원장이 새누리당 당을 맡았던 때만큼이나 벼랑 끝 상황입니다.
돌파구가 보이지 않고, 여기저기서 당이 무너질 것이라는 얘기까지 들립니다.
그 저항의 핵심에는 당권파가 서 있습니다.
박근혜 위원장이 친이계의 거센 저항을 맞았던 것처럼, 강기갑 위원장도 당권파의 거센 저항을 맞을 게 불 보듯 뻔합니다.
강기갑 비대위 체제는 당권파인 비례대표 당선인들의 사퇴를 촉구했지만, 이들은 아직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강기갑 위원장 얘기 계속 들어보시죠
▶ 인터뷰 : 강기갑 / 통합진보당 비대위원장
- "당사자들이 잘 아시고 알아서 하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지금은 중앙위 결정사항과 반하는 것으로 자세를 취할 것이라 예단 안 합니다."
그러나 상황은 그렇게 녹록지 않아 보입니다.
당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중앙위원회가 사퇴를 권고했지만, 법적으로 당권파 당선인들을 사퇴시킬 방법은 없습니다.
오히려 당권파는 중앙위 전자투표는 원천 무효라며 강기갑 비대위 체제와 비례대표 후보들의 사퇴를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당권파인 경기·충북·경북·광주 공동위원장은 어제(14일) 성명을 통해 '당의 사수를 위하여, 당의 새로운 활로를 열기 위하여 이제 우리 당원들이 직접 나서자'고 선동하기도 했습니다.
'당을 사수하자'라는 말은 뭘까요?
아마도 당권파는 소수인 비당권파들이 연합해 다수인 당권파를 몰아내고 있으니, 이에 맞서자는 얘기인 듯싶습니다.
당선인들 역시 이달 말까지 버티기를 통해 금배지를 달겠다는 심산인 듯합니다.
국회 개원준비종합지원실의 말을 들어보면, 당권파 실세로 알려진 이석기 당선인과 김재연 당선인이 이미 국회의원 등록을 마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들은 당권파가 7명이나 되니 원내대표를 맡아 당을 실질적으로 장악하겠다는 심산인 듯합니다.
강기갑 비대위 체제를 무력화시키겠다는 심산인 듯 합니다.
그리고 당 지도부를 새로 뽑는 6월 당원 투표에서 다시 당권을 잡으려 한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시간이 지나면 늘 그렇듯 관심이 멀어지고, 그러면 슬그머니 자신들이 다시 등장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모르는 것이 있는 듯합니다.
국민과 지지자들의 따가운 시선입니다.
중앙위 폭력사태를 계기로 민심과 당심은 당권파와 완전히 멀어졌습니다.
이들이 재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졌습니다.
인터넷에서는 '진보 시즌 2'를 시작하자는 운동이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통합진보당에 가입해 당권파를 몰아내거나 소수파로 전락시키자는 말입니다.
진보정치와 통합진보당은 당권파의 전유물이 아니라 국민의 것이라는 사실을 똑똑히 보여주자는 것입니다.
당권파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동굴 안에 갇혀 우상을 떠받드는 듯한 그들이 언제쯤 동굴 밖으로 나와 넓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까요?
강기갑 비대위는 이처럼 위태위태하게 시작됐습니다.
박근혜 비대위 체제처럼 강기갑 비대위 체제 역시 성공적으로 끝이 날까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박근혜 위원장 역시 성공의 부산물인 '사당화, 1인 체제' 등 여러 비판을 극복해야 하는 숙제가 남았습니다.
진보세력에 큰 숙제가 남았듯 말입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 김형오 / hokim@mb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