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국회 몸싸움을 하도 많이 보았기 때문에 이제는 진력이 날 법도 한데, 이날의 폭력사태는 너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깨끗할 것이라 믿었던, 폭력이 아닌 대화와 토론에 익숙한 사람들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지지자들에게 그 허탈함과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한솥밥을 먹었던 당원들이 당 대표들에게 손찌검과 발길질을 하고, 머리채를 잡는 것을 뭐라 설명할 수 있을까요?
당권파인 김선동 의원이 한미 FTA 처리를 막겠다고 국회에서 최루탄을 터뜨렸을 때도, 그리고 관악을에서 이정희 캠프의 문자 메시지 부정이 있었을 때도 설마 설마 했던 일들이 이제 와 돌이켜보면 설마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진보 평론가인 진중권 교수는 '진보는 죽었다'라고 개탄했고, 일부는 '폭력 진보, 수구 좌파의 민낯이 드러났다'고 일갈했습니다.
정말 이정희 대표와 당권파는 어떤 사람들일까요?
이정희 대표는 중앙위 회의 시작 전 대표직에서 사퇴했습니다.
들어보시죠.
▶ 인터뷰 : 이정희 / 통합진보당 공동대표(5월12일)
- "세상에 다시 없는 우리 당원들과 함께여서 어려움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믿고 화합해서 통합진보당을 다시 국민 속에서 세워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공동대표에서 물러납니다.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행복했습니다."
당원들은 세상에 다시 없을 정도로 소중하다는 이정희 대표.
그러면, 당원은 아니지만 통합진보당을 지지한 220만 유권자와 국민은 어떻습니까?
그들은 소중하지 않은가요?
믿고 화합해서 통합진보당을 다시 국민 속에 세워달라고 당부하면서도 그동안 이 대표가 보여준 불신과 갈등은 도대체 뭘까요?
이정희 대표의 사퇴는 그 순수성에서조차 의심받고 있습니다.
이 대표가 사퇴하고 자리를 뜬 것이 당권파와 비당권파의 충돌을 가져왔다는 해석입니다.
심지어 당권파가 계획적으로 폭력 사태를 저질렀고, 이정희 대표를 보호하려고 미리 사퇴시킨 것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정말 이정희 대표는 이런 폭력사태가 일어날 줄 미리 알고 사퇴와 함께 자리를 피한 걸까요?
이 대표는 폭력 사태가 발생하고 나서 트위터에 이렇게 썼습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어제 제가 무릎 꿇지 못한 것이 오늘 모두를 패배시켰습니다. 이 상황까지 오게 한 무능력의 죄에 대해 모든 매를 다 맞겠습니다.'
무릎을 꿇어서라도 비당권파의 중앙위 개최를 막았어야 했다는 뜻일까요?
'무능력의 죄'란 비당권파를 끝내 설득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을 말하는 걸까요?
그러나 지지자들과 많은 국민은 이정희 대표가 무릎을 꿇어서라도 설득해야 할 대상은 오히려 당권파이고, 그들을 설득하지 못한 것이야말로 '무능력의 죄'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합니다.
참으로 큰 인식의 차이입니다.
이런 인식의 차이는 다른 당권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당권파인 우위영 대변인은 '중앙위 파행은 만장일치 합의정신을 최대한 발휘하자고 했던 약속이 무너진 것에 대한 중앙위원들의 정당한 항의를 거부한 결과'라고 말했습니다.
이쯤 되면 이들 당권파가 국민 사랑을 다시 받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왜 이토록 집요하면서도 국민의 따가운 질책에 귀를 막는 걸까요?
정말 당권과 이석기 당선인을 비롯한 몇몇 당선인들의 국회입성을 위해서일까요?
그렇게 금배지를 단들 그들이 과연 정상적인 의정 활동을 하고,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까요?
국민의 지지 없이 나 홀로 국회의원이 되어서 무엇을 하려는 걸까요?
통합진보당 지도부는 오늘 전자투표를 통해 강기갑 원내대표를 비상대책위원장으로 하는 혁신 비대위 구성안을 통과시켰습니다.
또 중앙위 회의를 파행으로 끌고 간 당권파 장원섭 사무총장을 해임했습니다.
장 사무총장은 뜻밖에 해임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퇴임의 변'에서 '분당 때도 지켜졌던 당원 중심의 당 운영이 허물어지고 있다'며 개탄스러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도대체 국민 위에 군림하는 듯한 당원들은 누구일까요?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민주주의 기본 원리조차 무시되는 그 당원들은 도대체 누구일까요?
당권파는 어떤 명분으로도 이제 설 자리가 없어졌습니다.
당권파가 다른 통합세력을 몰아내고 당권을 장악하는 것도 불가능해졌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오히려 통합진보당에서 당권파를 몰아내든가, 아니면 소수 세력으로 전락시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유시민 대표는 '당권파가 나가시는 건 정 나간다면 못 막겠지만, 당 혁신을 추진하는 쪽들이 나갈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말했습니다.
유시민 대표의 말입니다.
▶ 인터뷰 : 유시민 / 통합진보당 공동대표
- "당이 지난 시기의 잘못을 용서받고, 용서받는 데 꼭 필요한 자기 혁신, 반성을 할 수 있도록 평당원으로서 노력해가겠습니다."
당권파는 이제 어떤 선택을 할까요?
사실 이정희 대표와 당권파에게는 명예와 실리를 모두 지킬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정치적 탄압에 불과하다, 당원들이 똘똘 뭉쳐 당을 지켜내야 한다'는 해괴한 논리로 그 기회를 스스로 차버렸습니다.
지금의 상황은 자업자득인 셈입니다.
이정희 대표는 최근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정치인으로서 명예를 모두 버렸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혹시 정치인으로서 명예를 버리면서 국민의 희망, 진보의 희망까지 저버린 것은 아닐까요?
비가 내리는 오늘 이정희 대표는 창밖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 김형오 / hokim@mbn.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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