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시끄럽지 않은 적이 없긴 하지만 말입니다.
정치란 치밀하면서도 고도의 전략 전술이 필요한 것이기도 하지만, 민심과 주변 사람들의 말을 단순히 잘 듣는 것만으로도 절반의 성공을 거둘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정두언 의원은 이번 대선이 새누리당 후보와 야당 후보의 싸움이라기보다는 '박근혜 대 박근혜의 싸움'이라고 말했습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정 의원 말을 빌자면, 박근혜 후보가 자기 개혁을 하면 상대방 후보가 누구든 대선에서 이길 것이고, 그것을 못하면 상대방 후보가 누구든 어렵다는 겁니다.
이상돈 비대위원 역시 어제 뉴스 M에 출연해 이런 견해에 공감했습니다.
▶ 인터뷰 : 이상돈 / 새누리당 비대위원(5월8일 뉴스 M)
- "저는 상당히 그 내용에 공감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위원장이 굉장히 장점도 많지만, 일각에서 제기하는 어떠한 한계점 같은 것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부친 때문에 겹치는 잔영이 있지요. 이런 것을 극복하는 것. 이런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정두언 의원의 발언은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정두언 의원과 이상돈 비대위원이 말하는 박근혜 위원장의 자기 개혁, 한계점은 무엇일까요?
다른 대선주자들이 한결같이 지적하는 1인 체재,사당화, 소통의 부재, 유신의 잔영 등을 말하는 것일까요?
박 위원장의 주변 사람들은 이런 지적이 깎아내리기 식의 근거 없는 음해라는 말을 한결같이 하고 있습니다.
새누리당 이준석 비대위원의 말입니다.
▶ 인터뷰 : 이준석 / 새누리당 비대위원(4월27일 뉴스 M)
- "박근혜 위원장님 같은 경우에는 어쩌면 참모나 측근이라고 하는 사람들 그분들의 의견을 굉장히 잘 경청하시는 스타일입니다.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한 사람이 박근혜 위원장님에게 정보를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참모들이나 측근들 의견에 경청하고 거기에 따라서 명민한 판단을 내리시는 편인데. 가끔 보면 그 판단을 많이 신뢰하시기 때문에 이번에 예를 들어 문 대성, 김형태 당선자 건에서도 어떤 사실 관계에서 잘못된 정보가 들어간다 하는 경우에는 제 느낌에는 판단이 느리다고 하는 것도 있거든요. 그런데 대체로 보았을 때 굉장히 민주적인 절차로 당내에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박근혜 위원장은 말이 없습니다.
수긍도 부정도 없는 침묵만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궁금해합니다.
정말 박근혜 위원장은 어떤 사람인가? 리더십은 소통형인가, 불통형인가? 유신 망령의 부활인가? 아닌가?
새누리당은 오늘 원내대표를 뽑았고, 조만간 당 대표도 뽑을 예정입니다.
주변에서는 친박계 일색이라는 비판이 있지만, 박 위원장은 역시 아무런 말이 없습니다.
그건 당선자들과 당원, 국민이 뽑는 것이지 자신이 관여할 문제는 아니라고 보는 걸까요?
박 위원장이 개입하지 않는 것이 원칙적으로 보면 맞지만, 정치적으로 보면 틀릴 수도 있다고 정치 평론가들은 말합니다.
친박계가 당권을 모두 장악하면 박 위원장은 '사당화', '1인 체제'라는 거센 비판을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습니다.
설령 박 위원장이 실제로 개입하지 않았는데도 말입니다.
박 위원장이 억울하다고 해도, 정치란 그런 것이라고 평론가들은 말합니다.
박 위원장이 스스로 개혁할 대상은 어쩌면 박 위원장이 강조하는 바로 그 원칙과 소신의 부산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 역시 '이정희 대 이정희'의 싸움을 치르는 듯합니다.
이정희 대표는 비례대표 부정 경선에 대한 진상조사위 보고서가 나온 이래 지금까지 줄곧 일관된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어제 당권파 단독으로 개최한 공청회에서 이정희 대표가 한 말입니다.
▶ 인터뷰 : 이정희 / 통합진보당 공동대표(5월8일)
- "일주일 전에 진상조사 위원회 발표 뒤 통 진당에 대한 기사가 도배됐다. 많은 언론은 그것이 기정사실이라고 생각한다. 여론이 무엇에 근거해 만들어졌는지 돌아보려 않는다. 한번 만들어진 여론은 도저히 바로 잡을 길이 없다."
'일부 실수는 있었지만, 총체적 부정은 아니다, 특정 정파를 겨냥한 표적진상조사다, 당원들을 모독하는 건 참을 수 없다.'
이 대표는 이 세 가지 자기확신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론이 뭐라 하든,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뭐라 하든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그 여론과 그들의 말은 다 잘못된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정희 대표는 민주노동당 시절 최연소 당대표를 지낼 정도로 진보층으로부터 신망과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기존 정치권과는 다른 개혁성과 도덕성 때문입니다.
그런데 보수 언론은 그렇다 치더라도, 왜 그를 사랑했던 진보 진영에서조차 이 대표에게 참담함을 느끼는 걸까요?
이 대표의 말처럼 사소한 실수만 있었을 뿐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 말입니다.
진보 성향 재야 원로들이 모인 원탁회의는 성명을 통해 '국민이 하나를 내려놓는 반성을 요구할 때 진보당 스스로 둘, 셋을 내던지는 희생을 감내하며 국민의 신뢰를 다시 얻어야 한다'고 지적할 정도입니다.
진보 논객인 진중권 교수 역시 '이정희 은퇴, 이석기 김재연 사퇴 없이는 진보 정치의 미래가 없다'며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지금 통합진보당의 사태는 당권파가 죽고 사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진보 진영 전체가 죽고 사느냐의 문제로 확장했습니다.
지난 총선에서 10%를 기록한 통합진보당의 지지율은 5%대로 반 토막이 났습니다.
10%의 지지를 보낸 유권자들은 표가 아깝다며 분노하고 있습니다.
당원이 비례대표를 뽑았지만, 그 비례 대표에게 금배지를 달아 준 사람은 당원만이 아닙니다.
오히려 당원보다 훨씬 더 많은 평범한 유권자들일지 모릅니다.
그래서 비례대표 사퇴 여부를 포함해 모든 것은 당원 뜻에 따라야 한다는 주장은 일면 설득력이 떨어지기도 합니다.
지금 통합진보당에 표를 준 유권자들은 당권파가 비록 억울하다고 해도 진보 진영 전체를 위해 희생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는 듯 합니다.
이정희 대표 자신의 상식과 믿음에 반하긴 하지만 말입니다.
정치인이 된다는 것, 그리고 정치를 한다는 것은 늘 자신의 소신대로만 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정치란 자신의 신념을 지켜야 할 때와 꺾어야 할 때, 그리고 나아가야 할 때와 물러나야 할 때를 잘 판단하는 선택 그 자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 김형오 / hokim@mbn.co.kr ]
MBN 뉴스 M (월~금, 오후 3~5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