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전 대통령의 급작스런 서거는 검찰 수사의 옳고 그름을 떠나 많은 사람들을 큰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그래서일까요?
탈상인 3년이 다 돼가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의 뇌리에서는 노 전 대통령의 이미지가 쉽게 지워지지 않는 듯합니다.
정치권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요새 부쩍 노무현이라는 이름이 정치권에 자주 등장합니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는 비례대표 부정선거에 대한 진상조사위원회의 보고서를 비판하면 노 전 대통령의 이름을 꺼냈습니다.
들어보시죠.
▶ 인터뷰 : 이정희 / 통합진보당 공동대표(5월7일)
- "3년 전 2009년의 그 시점을 저는 기억합니다. 노무현 대통령님을 바라보는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많은 의혹과 여론의 뭇매를 맞으셨습니다. 쉽게 여론의 뭇매에 동조하면 누구나 어느 정당을 막론하고 그 시점에는 편안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어떤 여론의 공세도 사실로 확인되기 전에는 사실이라고 믿지 않았습니다.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일을 당사자의 소명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것을 여론에 중계 방송하는 검찰이 매우 잘못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진상조사위원회를 노 전 대통령을 수사했던 검찰에 비유했고, 진상조사위원회 보고서 내용은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검찰의 언론 플레이 내용으로 비유한 셈입니다.
'사실'이 아닌 진상조사위 보고서를 토대로 진보당원을 비판하는 것을 3년 전 상황과 묶어 수용 불가 입장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이정희 대표는 왜 갑자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름을 꺼냈을까요?
3년 전 꼭 이맘때 노무현 전 대통령이 억울하게 서거했듯이, 지금 당권파도 너무나 억울하다는 것을 역설하기 위해서일까요?
합당을 이끌었던 동지에서 지금은 반대편에서 당권파를 공격하고 있는 유시민 공동대표를 설득하기 위해서일까요?
유시민 대표는 지난해 7월 한 출판 기념회 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갈라진 마음을 녹여내면, 노무현을 좋아하는 사람과 전태일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울리지 말란 법이 없다."
그로부터 다섯 달 뒤 국민참여당과 민주노동당은 통합을 이뤄냈습니다.
이정희 대표는 아마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름을 꺼내면서 유시민 대표와 당내 친노세력의 지지를 간절히 원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런 이 대표의 의도와는 다르게 반응은 차갑기만 했습니다.
유시민 대표의 말입니다.
▶ 인터뷰 : 유시민 / 통합진보당 공동대표(5월7일)
- "민주주의의 기본규칙과 상식을 파괴하면 우리 당 안에서 발생한 정치적 정통성의 위기를 극복하지 못할 것이다, 당의 운영, 선거 등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있는 그대로 투명하게, 당원과 국민 앞에 최대한 공개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다, 그 말씀을 다시 한 번 드리겠습니다."
유시민 대표는 민주주의 기본 상식과 원칙을 강조하고 있는 듯합니다.
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치인으로 살면서 지키고자 했던 가치입니다.
이정희 대표는 '노무현의 억울함'을 기억해 달라 말하고 있고, 유시민 대표는 '노무현의 가치'를 기억해 달라 말하는 걸까요?
같은 듯 다른 두 사람의 화법에서 파란만장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삶을 보는 듯합니다.
이들과는 다른 의미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말하는 사람들도 물론 있습니다.
임태희 전 청와대 대통령 실장은 오늘(5월8일)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노 전 대통령의 이름을 꺼냈습니다.
직접 들어보시죠
▶ 인터뷰 : 임태희 / 전 청와대 대통령실장(5월8일)
- "박근혜 전 새누리당 대표가 정권을 잡으면 그들(야권)은 공화당 정권이라고 낙인찍고, 유신체제를 떠올리며 몸서리칠 것이고,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대통령이 되면 노무현 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악몽을 생각하고 '잃어버린 10년 시즌 2'를 외칠 것입니다."
임태희 전 실장에게 노무현 대통령은 실패한 대통령이고, 좌파가 집권한 잃어버린 10년은 다시는 반복돼서는 안 되는 과거인 듯합니다.
친노 세력의 반대편에 서 있는 진영에서는 이런 평가는 당연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계승하겠다는 문재인 고문과 민주통합당 내 친노세력을 공격하는데 가장 좋은 수단이 바로노무현 전 대통령인 셈입니다.
그런데 새누리당 내에는 역설적이게도 '노무현의 이미지'를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준석 새누리당 비대위원은 박근혜 위원장이 20~30대 득표력이나 수도권 득표력 부분에서 봐완해야 할 부분이 있다며 노무현 전 대통령을 언급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바보' 이미지가 있었듯이, 또 이명박 대통령에게 '불도저' 이미지가 있었듯이 박근혜 위원장에게도 뭔가 자신만의 키워드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다는 겁니다.
아쉽게도 박 위원장에게는 '박정희의 딸'이라는 키워드 말고는 없다는 겁니다.
박정희와 노무현은 역대 대통령 가운데 국민으로부터 가장 관심을 많이 받는 대통령들입니다.
또 극과 극의 평가가 상존하는 대통령들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적어도 정치권에서는 늘 현존하는 실체인 듯한 착각마저 듭니다.
지금 서울의 어느 곳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3주기 사진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그곳을 다녀간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요?
그들이 보는 노무현은 정치인들이 저마다 바라보는 노무현과 같은 사람일까요? 다른 사람일까요?
시간은 흐르고, 그 흐름만이 평가를 내릴 수 있을 듯합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 김형오 / hokim@mbn.co.kr ]
MBN 뉴스 M (월~금, 오후 3~5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