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민주노동당 민족해방 계열의 당권파와 그 밖의 비당권파로 갈라져 싸우는 모습은 지난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에 표를 준 유권자들을 실망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진보당 운영위원회는 이날 공동대표단과 비례대표 후보 14명의 총사퇴 권고안을 의결했습니다.
물론 당권파 운영위원은 모두 불참한 채 비당권파 위원들로 투표한 결과입니다.
유시민 공동대표의 얘기를 들어보시죠
▶ 인터뷰 : 유시민 / 통합진보당 공동 대표(5월5일)
- "당으로서 책임을 져야 하고 그렇다면 경선 부문 비례대표 전부가 사퇴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해서 결정했습니다. 저희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 용서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러나 그 긴 회의 끝에 나온 해법을 당권파는 철저히 무시했습니다.
사퇴 권고가 내려진 비례대표 3번 김재연 당선인의 말입니다.
▶ 인터뷰 : 김재연 / 통합진보당 당선인(5월6일)
- "문제투성이 진상조사보고서를 근거로 청년비례 사퇴를 권고한 전국운영위원회 결정은 철회돼야 합니다."
비례대표 2번이자, 당권파의 핵심으로 불리는 이석기 당선인 역시 사퇴를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당권파들은 왜 이토록 외골수적인 버티기를 계속하는 걸까요?
정말 자신들에게 표를 준 민심을 모르는 걸까요?
전국운영위 회의를 주재한 이정희 공동대표에 대한 실망도 도를 넘었다는 말도 들립니다.
이 대표는 회의 내내 '진상조사위 보고서가 편파적이고 잘못됐다', '조사위는 당원을 모욕 줄 권한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재조사와 검증을 요구했습니다.
전날 정치적·도의적 책임을 지겠다는 말과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오늘 아침 이정희 대표가 한 말입니다.
▶ 인터뷰 : 이정희 / 통합진보당 공동대표
- "운영위에서 현장 발의된 지도부와 경쟁부분 비례대표 후보 총사퇴 권고안은 진상조사위가 일방적으로 발표한 보고서에 기초해 만들어진 것으로, 통합진보당에 대한 여론에 맞춘 것입니다."
이 대표는 3년 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검찰 수사 당시 여론의 공세를 비유로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사실이 아닌데도 여론이 뭇매를 때리니까 그에 휩쓸려가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뜻입니다.
지금 당권파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도, 진상조사위 보고서 내용도 모두 근거 없는 여론의 뭇매일 뿐이라고 생각한다는 뜻일까요?
그러나 이 대표의 간절한 호소와는 다르게 진보층 내에서조차 비판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한진중공업 사태 때 고공 크레인 위에서 300일간 농성했던 민주노총 김진숙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은 트위터에 '종파만 독버섯처럼 자란다'고 비판했습니다.
조국 서울대 교수 역시 '정당투표에서 통합진보당 찍은 사람들이 이 꼴 보려고 4번을 택한 게 아니다. 수가 많다고 하여 계파의 이익이 당의 이익을 압도·지배하는 것, 정당 바깥 진보적 대중의 눈을 외면하는 것은 망하는 지름길'이라고 트위터에 썼습니다.
작가 공지영 씨 역시 '표가 아까운 건 처음이다. 평생 처음 조카들에게까지 권했는데… 수준이 한심하다'고 말했습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의 말처럼 지금 가장 분노하는 사람들은 통합진보당을 교섭단체로 만들려고 밤낮으로 SNS에서 활동했던 평범한 지지자들일지 모르겠습니다.
이정희 대표를 비롯한 당권파 역시 이 사실을 알까요?
혹시 이들 지지자가 다 우매하거나 뭔가에 현혹돼서 자신들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고 서운해하는 걸까요?
대중은 바보가 아니라는 누군가의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지지층의 바람을 이처럼 외면한 진보 정당은 찾기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당권파는 그들의 주의 주장을 떠나 당이 이 지경까지 온 것, 그리고 지지층을 이처럼 분노케 한 것 그 두 가지 이유만으로도 당권을 내려놓고 참회의 길을 걸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진보당의 위기는 진보당의 위기로 그치는 게 아닌 듯싶습니다.
지난 총선에서 진보당과 야권연대를 했던, 그리고 다가올 대선에서도 야권연대를 해야 하는 민주통합당으로도 불똥이 튀고 있습니다.
새누리당은 통합진보당과 민주통합당을 싸잡아 비난하고 있습니다.
이상일 대변인의 말입니다.
▶ 인터뷰 : 이상일 / 새누리당 대변인
- "총선 때 통합진보당과 연대한 민주통합당은 '통합진보당이 잘못했다'는 원론적인 얘기만 하지 말고 통합진보당이 책임을 지기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입장을 선명히 밝혀야 한다."
민주통합당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곤란한 처지에 놓인 듯합니다.
새누리당에 맞서 대선에서 승리하려면 범 진보세력과 연대해야 하는데 그 핵심축인 통합진보당이 저러고 있으니 답답해 할 노릇입니다.
야권은 내심 이번 대선에서 다시 정권을 찾아올 것으로 기대했는지 모릅니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실망, 그리고 각종 악재가 꼬리에 꼬리를 문 새누리당의 상황을 감안하면 이런 기대가 헛된 것은 아닌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총선을 앞두고 민주통합당은 스스로 자살골을 넣기에 바빴고, 총선이 끝나고 나서는 통합진보당이 쐐기골까지 넣는 형국입니다.
이제는 야권과 여권의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는 주장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드물 듯합니다.
아직 대선은 7개월이나 남았지만 말입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 김형오 / hokim@mbn.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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